![](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74000/image/0000073322_001.jpg) |
▲ 오늘날 넥타이는 남성 정장차림의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다. ⓒ위키피디아 | 아내가 제일 이름답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일까? 자손을 잉태하여 아버지가 된다는 기분이 들 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종족보존이라는 생물학적 본능 때문이다. 그런 거 말고 다른 경우는 뭐가 있을까?
출근하는 남편에게 양복 윗도리를 입혀주고 넥타이를 손수 매어줄 때 남자는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회사로 출근한다. 아내와 가정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겨울은 스카프의 계절이다. 여자에게 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스카프는 추운 겨울 가장 추위를 잘 타는 목을 보호하는 사각형의 천이다.
그러나 이제는 멋을 내기 위한 패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매는 방법만도 25가지가 넘는다. 목도리, 머플러 등도 같은 차원이다.
30년전쟁 당시 파견된 크로아티아 병사의 머플러가 기원
스카프는 넥타이와 기원을 같이 한다. 전후를 따지자면 넥타이가 먼저다. 넥타이 기원은 고대 로마시대의 군인이 사용한 포칼(focal: 울 목도리)이 시초라고 한다. 그러나 17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크라바트(cravat: 옛 남자용 목도리)라는 설이 유력하다.
유럽의 30년전쟁(1618∼1648)은 독일을 무대로 신교(프로테스탄트)와 구교(가톨릭) 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이다. 유럽의 크고 작은 전쟁들은 대부분 종교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 이후 종교전쟁은 더 이상 일어나자 않아 최대이자 최후의 종교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유럽인들이 겪게 된 최초의 세계대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만큼 유럽 전역이 이 전쟁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이 전쟁으로 인한 결과 또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은 완전히 황폐화됐다.
당시 프랑스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파리로 파견된 크로아티아의 병사들은 모두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있었다. 이 스카프는 병사들의 아내나 연인이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감아준 것이었다. 오늘날 출근하는 남편에게 매주는 넥타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들은 군복 셔츠의 목 부분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이러한 일종의 스카프를 맸다. 그것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신호도 됐다. 이 독특한 패션은 당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다.
루이 14세, 목에 두른 천에 깊은 호기심 가져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74000/image/0000073322_002.jpg) |
▲ 30년 전쟁 당시 크로티아 병사들은 아내가 목에 감아준 크라바트를 하고 있었다. ⓒ위키피디아 | 프랑스의 절대왕정을 상징하는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는 스카프를 맨 크로아티아 병사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스카프에 호기심을 느낀 그는 “저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시종장(왕을 곁에서 모시고 심부름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은 질문의 뜻을 모른 채 그만 “크라바트(크로아티아의 병사라는 의미)입니다”라고 대답해 버렸다.
크라바트의 어원은 크로아트(Croate, 크로아티아의 기마병) 장병의 목에 감은 선명한 빛깔의 천을 본뜬 것으로, 17세기 중기부터 프랑스 상류사회에 등장하여 1660년대부터 유럽 남성복에 일반화되었다.
이로부터 남자들의 목에 맨 스카프가 크라바트가 되었고, 지금도 넥타이를 프랑스어로는 크라바트라고 부른다. 목에 천을 매는 크라바트 스타일은 18세기까지 군대의 복장으로 유행했으며 점차 일반인에게도 확산됐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무렵까지 일반 남성들의 정장으로도 활용되던 중, 19세기 후반 들어 영국에서 크라바트의 매듭 부분을 따로 강조하는 유행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나비넥타이이다. 또 경마장에 모일 때만 착용하는 애스컷(Ascot) 타이가 등장한 것도 서로 비슷한 시기이다.
애스콧은 원래 영국 버크셔 주의 마을 이름으로 이 지방의 전통적으로 유명한 애스콧 경마장에 모인 신사들이 맸던 넥타이에서 유래되었다. 모닝 코트나 프록 코트에 쓰이는 폭이 넓은 스카프 모양의 넥타이로 앞목을 가득하게 넥타이 핀으로 고정시켰다.
오늘날의 긴 넥타이, 주먹이 4개의 길이인 ‘포인핸드’
이어서 오늘날 주류를 이루는 기다란 형태의 ‘포인핸드(Four in Hand)’ 넥타이가 나타났다. ‘포인핸드’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의미한다. 마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넥타이가 대중에게로 확산된 것이다. 결국 ‘크라바트’와 ‘포 인 핸드’의 발생을 볼 때 넥타이에는 ‘동질감 표시’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넥타이의 종류는 △애스컷(Ascot) △보 타이(bow tie) △클립온 타이(clip-on tie) △포인핸드 △크라바트가 있다.
애스컷은 19세기 말 영국의 애스컷 히드(Ascot Heath) 종족이 착용한 데서 붙은 목 장식용 타이이다. 폭이 넓은 타이로서 앞을 핀으로 고정한다. 보 타이는 남자용의 작은 타이로 끝이 네모진 것과 마름모꼴, 나비 모양으로 매는 넥타이이다. 최근에는 정장차림에 많이 쓰인다.
클립온 타이는 포인핸드형의 넥타이나 금속의 핀이 부착되어 쉽게 와이셔츠에 고정시킬 수 있다. 포인핸드는 1890년대 이후 비즈니스맨이나 일반 남성들이 착용하는 스타일의 넥타이로, 매었을 때 맨 곳에서 아래까지의 길이가 주먹의 약 4배 정도라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
그동안 네크클로스(neckcloth)라는 말은 네크웨어의 총칭으로서 존재하였다. 그러나 남성복 유행의 주도권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바뀐 19세기에는 크라바트 대신 네크클로스라는 말이 일반화되었고 1830년경부터 넥타이라는 말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초기의 넥타이는 현재의 것과 같은 것은 아니고 크라바트의 형식이 어느 정도 담겨 있었다. 당시의 애스컷 타이는 스카프 모양의 넥타이에서 띠 모양의 넥타이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의 것으로 그 모양은 두 타이의 요소가 합쳐진 것이었다.
이것이 시대와 더불어 점차 띠 모양으로 변화되면서 너비와 길이가 다양해지고 새로운 소재가 사용되어 1890년에는 더비 타이(Derby tie)와 포인핸드(four-in-hand)라고 하는 현대적 넥타이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띠 모양의 넥타이가 남성용 타이의 주류를 차지하고, 장식요소가 적은 남성복에서 중요한 액세서리 역할을 한다. 또한 스카프 모양의 것은 스포츠용과 부녀자 및 어린이용 등에 많이 사용된다.
넥타이와 스카프, 기원은 같아
그러면 넥타이와 비슷한 목적의 스카프의 기원은 무엇일까? 어원은 프랑스어 에스카르프(escarpe)에서 발전한 에샤르프(écharpe)이다. 기원은 북방민족이 방한용으로 사용한 포제(布製)의 목도리라고 하나 연대는 불명하다.
시대와 더불어 의미의 범위도 차차 변용되었다. 서구에 보급된 것은 엘리자베스 1세 때 햇빛 방지와 장식을 위해서 술 장식이 달린 어깨걸이가 사용된 것이 처음이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는 스톨이나 네커치프 등도 스카프에 포함시킬 수 있다.
나비넥타이의 아이콘은 링컨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74000/image/0000073322_003.jpg) |
▲ 링컨은 나비 넥타이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그는 나비 넥타이를 즐겨 맸다. ⓒ위키피디아 |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의 공통점은 둘 다 천재라는 것과 나비넥타이를 애용했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도 나비넥타이를 자주 매고 다녔다. 프랑스 문호 발자크 역시 나비넥타이 예찬론자다. 평범함과 천재를 구별하는 것이 나비넥타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도 주로 나비넥타이를 맸다.
나비넥타이의 기원 역시 크로아티아 병사들에서부터 유래했다. 나비넥타이가 유럽과 미 대륙에 본격적으로 퍼진 건 19세기 들어서다. 당시 나비넥타이의 아이콘은 링컨이었다. 링컨은 변호사 시절부터 연미복에 수염을 하고 나비넥타이를 즐겨 맸다. 일반 미국인의 모습인 엉클 샘도 높은 모자에 턱수염, 그리고 나비넥타이를 맸다.
나비넥타이의 황금시기는 20세기 초다. 나비넥타이를 매는 것이 운을 불러들인다는 루머까지 있었다. 무엇보다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가 매면서 나비넥타이는 선풍적 인기를 끌게 됐다. 영국의 처칠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나비넥타이 사랑도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1950년대 정치권에서 나비넥타이가 유행했다. 해공 신익희나 장면 총리는 줄곧 나비넥타이를 착용한 신사로 통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나비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으로 국민 앞에 서곤 했다.
비즈니스 매거진 ‘석세스’의 설립자인 클레멘트 스톤은 “나비넥타이는 에너지와 정력적 활동을 상징한다”며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패션”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나비넥타이, 국내에서는 ‘튄다’는 이유로 잘 사용하지 않아
고려대 안암병원 의사들이 나비넥타이를 맨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긴 넥타이는 진료할 때도 불편한 데다 병원균을 옮기는 주범으로 지목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 정부가 2008년 의사들에게 넥타이를 제한한 것을 예로 든다.
남자의사 200명 중 30~40% 가량이 나비넥타이를 매고 진료하고 있다고 한다. 멋보다는 현실적 이유에서다. 물론 커피를 마실 때도 일반 넥타이보다 나비넥타이가 훨씬 낫다. 커피를 쏟아 넥타이를 버릴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비넥타이는 아직 국내에서는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 너무 돋보여 사람들로부터 ‘튄다’는 소리를 들을까 염려돼 매지 않는 것 같다. 독특하게 보이는 것을 싫어하는 국민정서 때문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