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우주 항공

[사이언스타임즈] 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오류

FERRIMAN 2015. 1. 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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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오류

SF관광가이드/ 하드SF vs. 소프트SF(13)

SF 관광가이드
 

그 동안 2회에 걸쳐 영화 ‘인터스텔라’의 하드SF로서 부각되는 점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묘사된 부분 못지 않게 오류도 적지 않다. 이는 제작진이 오락성 짙은 볼거리 위주로 상업영화로 만들다보니 극적인 효과를 위해 어느 정도는 리얼리티를 희생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과학자들은 둘째치고라도 과학소설 애호가나 SF영화팬 입장에서는 뭐가 똥이고 뭐가 된장인지 정도는 구분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이번에는 ‘인터스텔라’가 과학적인 논리를 위배했거나 등한시한 부분들을 몇 가지 짚어볼까 한다.

우주탐사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미션의 성공과 안전이다.

SF영화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별다른 사전준비 없이 승무원들이 우주선을 타고 전인미답의 외계행성으로 훌쩍 떠나는 경솔함이다. 하지만 실제의 우주개발 역사를 보면 미국과 소련은 차근차근 돌다리 두드려가듯 한 단계씩 탐사의 수준을 높여나갔고 달에 인간이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사전 실험이 여러 차례 진행되었고 무인 탐사선의 정보수집이 이러한 준비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였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에서는 달이나 화성도 아니고 난생 처음 접하는 웜홀에 무인탐사선이 아니라 대뜸 유인우주선부터 1, 2차로 보낸다. 웜홀을 통과할 수 있을지, 통과해도 몸이 제 형체를 갖추고 있을지 그리고 도착한 항성계에 과연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의 행성들이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귀중한 우주비행 인력 대신 고성능 컴퓨터 내지 인공지능이 장착된 무인탐사선을 보내는 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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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일행이 도착한 외계 행성들 가운데 두 곳은 전혀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사람부터 앞세워 조사시킬 것이 아니라 무인탐사선을 보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단계를 왜 거치지 않은 걸까? (copyright: Legendary Pictures / Syncopy / Lynda Obst Productions)

‘인터스텔라’에서처럼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고는 하나 우주비행사의 안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탐사대를 외계로 보내 희망적인 정보가 있으면 회신하고 없으면 다시 데리러 갈 여력이 되지 않으니 그곳에서 죽으라는 식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될 턱이 없다. (영화에서 만 박사는 죽는 게 두려워서 자신이 착륙한 행성에 생명이 살 수 있다고 거짓 회신을 보낸다.)

왜 중력법칙이 그때그때 다르게 작용하는가?

과학소설이나 SF영화에서 가장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은 물리법칙의 일관된 적용이다. 아무리 극적 흥미를 돋우려는 의도라 하더라도 물리법칙의 보편타당성을 무시하고 그때그때 과학기술의 적용범위가 달라진다면 독자나 관객이 충실하게 감정이입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와 관련하여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우주선 인듀어런스 호의 이착륙 조건이 그때그때 달라진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떠날 때 초속 11km의 벽을 뚫기 위해 우주선은 3단으로 분리되는 새턴로켓을 하단에 장착하고 떠난다. 덕분에 간신히 지구 중력을 헤치고 나왔지만 각 단계의 로켓들은 연료를 다 소모할 때마다 자동으로 떨어져 나가 마지막에는 인듀어런스 호 본체만 남은 상황이다. 여기까지는 아폴로 우주선들의 상황과 똑같다. 문제는 인듀어런스 호가 웜홀을 통과하고 나서부터의 상황이다. 쿠퍼 일행은 먼저 물의 행성에 착륙했다가 그 다음에는 만 박사의 겨울 행성에 내린다. 내리는 것은 그럭저럭 눈감아 줄 수 있다. 대기권에서 타지 않을 만큼의 연료만 아래 방향으로 분사할 수 있다고 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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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날 때는 3단 로켓을 썼던 인듀어런스 호가 어떻게 지구와 엇비슷한 질량의 외계 행성의 중력권을 벗어날 때는 자체 엔진만으로 가능할까? 처음부터 항우 장사처럼 대단한 엔진을 장착한 우주선으로 묘사했다면 모르지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은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copyright: Legendary Pictures / Syncopy / Lynda Obst Productions)

문제는 다시 우주궤도로 올라가야 할 때다. 중력을 뿌리치고 올라가려면 내려올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추진력이 필요하다. 인듀어런스 호가 내린 행성들은 바닷물을 붙잡아 둘 수 있거나 거대한 협곡을 지닌 지구만한 행성이다. 작은 소행성이나 혜성 위에서라면 인듀어런스 호에 장착된 로켓엔진만으로 몇 번이고 이착륙할 수 있겠지만, 지구에서도 3단 분리방식으로 별도 연료통을 써야 했던 우주선이 어떻게 지구 못지않은 중력을 지닌 다른 행성들 지표에서는 추가적인 연료도움 없이 자체 로켓엔진만으로 손쉽게 우주궤도에 다다를 수 있을까? 웜홀 너머의 우주에서는 행성들의 중력이 갑자기 작아진 것일까? 그랬다면 물의 행성은 바닷물을 전혀 지표에 붙잡아 둘 수 없는 불모의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너무나 눈에 띌 정도로 중력의 법칙을 임의적으로 다루어 관객의 실소를 자아낸다.

블랙홀로 낙하해도 어떻게 우주비행사의 몸이 멀쩡할까?

블랙홀에는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조석력이 크게 작용하여 우주비행사의 발과 머리가 길에 잡아 늘여진다. 우주선 역시 마찬가지여서 곧 끈처럼 실타래가 풀리듯 부서진다. 더구나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가 문제다. 우선 강착원반에 응집해있는 밀도 높은 성간물질들과 부딪치며 타버리거나 가루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거대 초질량 블랙홀은 근접해도 조석력이 세지 않다지만 사상의 지평면에 닿거나 그 안으로 들어갈 때쯤에는 이 가공할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영화에서는 5차원의 외계인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주인공 쿠퍼를 블랙홀의 중력으로부터 지켜준다는 식의 암시를 한다. 5차원에 사는 외계인이 얼마나 신통력이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식의 묘사는 극적 흥미를 위해 너무 과장한 것만은 사실이다.

웜홀을 통한 정보유통의 방향이 왜 갈지자인가?

주인공 쿠퍼의 후발대는 일단 웜홀을 통과해 블랙홀을 공전하는 물의 행성(또는 ‘밀러’의 행성) 상공에 나타난 다음부터는 지구에서 보내오는 전파를 오로지 수신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 속의 설명에 따르면, 지구에서 송출한 전파 메시지는 웜홀을 통해 전달될 수 있지만 그 역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밀러 행성 상공에서 인듀어런스 호의 승무원들은 저마다 가족이 보내온 메시지를 수신만 할 뿐 답장 한통 보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하다. 영화의 앞 장면과 배치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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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이자 우주비행사 쿠퍼는 지구로부터 오는 메시지만 수신할 수 있고 답장은 보낼 수 없지만 임무 완료 후에는 반드시 웜홀을 통해 돌아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구에는 사랑하는 딸 머피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가 일방향인데 몸은 쌍방향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모순은 어떤 물리법칙에 근거한 것인가? (copyright: Legendary Pictures / Syncopy / Lynda Obst Productions)

초반에 제2의 지구 탐사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브랜드 교수는 후발대 우주선의 조종을 쿠퍼에게 부탁하면서 외계탐사 선발대 12명 가운데 세 명으로부터 신호가 왔고 그 세 곳이 공교롭게도 동일한 블랙홀을 공전하고 있는 행성들이라고 일러준다. 그렇다면 이 세 명의 신호는 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지구에 전달되었단 말인가? 만약 이들의 신호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공간 사이를 잇는 유일한 통로인 웜홀을 거쳐 지구에 수신되었다면, 쿠퍼 일행도 가족들의 안부인사에 당연히 답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현대과학은 웜홀이 정보를 삼키기만 하고 일체 뱉어내지 않는지 확언하지 못한다. 크기만 다를 뿐 웜홀은 블랙홀과 닮은 점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거나 웜홀의 실제 물리적 특성과는 별개로 영화가 이야기를 일관성 있게 전개하자면 웜홀과 관련된 묘사 역시 일관성을 유지했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웜홀이 뭐든 한 방향으로만 통과시키는 성질을 지녔다면 쿠퍼의 일행은 (앞서 출발한 12인의 선발대처럼) 출발 당시부터 어차피 귀환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외계행성들을 탐사하는 사이에도 쿠퍼는 동료의 비난과 테러에도 불구하고 틈만 있으면 딸이 있는 지구로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돌아가려는 집념을 버리지 않는다.

쿠퍼가 영화에서와 같이 이런저런 재난이 겹쳐 블랙홀로 빠지지 않고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웜홀을 경유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기본적으로 웜홀을 매개로 한 정보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우주선이 양방향으로 웜홀을 통과할 수 있다면 어째서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가벼운 전파가 양방향으로 드나들 수 없단 말인가? 한발 더 나아가서, 웜홀을 통해 돌아갈 수 없다면 만 박사는 왜 쿠퍼가 인듀어런스 호로 귀향할까봐 걱정한 나머지 테러를 가하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의문은 대단원에서 딸 머피와 아버지 쿠퍼가 재회하는 장면에서도 제기된다. 아이슈타인의 시간팽창효과 탓에 중년의 쿠퍼가 태양계로 돌아왔을 때, 머피는 거의 임종을 앞둔 할머니다. 할머니 머피는 쿠퍼에게 가르강튀아를 공전하는 세 번째 후보행성으로 간 브랜드(브랜드 교수의 딸이자 쿠퍼의 탐사동료)가 외로울 테니 자기 곁에 머물지 말고 그녀를 찾아가라고 권한다. 팔랑귀인 쿠퍼는 그 말을 듣고 몰래 우주선을 훔쳐 타고 다시 떠난다. 하지만 웜홀 너머에 있는 브랜드의 사정을 이쪽 세계의 머피가 어찌 안단 말인가? 머피는 실은 천리안이었던 것일까?

요약하면, ‘인터스텔라’에서는 웜홀을 통한 정보흐름에서 이래저래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이점에 대해서는 일관성이 있었어야 관객에게 혼란을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이 아직 확정짓지 못한 부분을 추론하는 것은 SF의 영역이다. 문제는 일단 추론의 방향과 기준을 잡으면 그것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물리법칙을 필요한 내용에다 억지로 뜯어 맞추면 마법과 뭐가 다르겠는가.

순환형 연쇄고리(Time Loop)에 빠진 시간여행이 초래하는 인과율의 모순

영화 초반 쿠퍼는 딸 머피의 방에서 미지의 존재가 보낸 신호를 모르스 부호로 해석하여 미항공우주국이 있는 옛 군기지의 좌표 값을 알아낸다. 그러나 엔딩에서 그 신호를 보낸 사람은 정작 웜홀 너머의 우주에서 곤경에 빠진 미래의 쿠퍼 자신이었다.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자신을 구하려 시공간 연속체를 뛰어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정상적인 경로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없다. 영화에서는 5차원 외계인이 개입해 도와준 것으로 처리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이해를 돕기 위해 응용할 수 있는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2차원 공간의 생물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높이가 없는 생물은 입체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라 생각해 달라.) 이에 비해 3차원 공간의 존재인 우리는 높이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전후좌우 방향밖에 인지하지 못하는 2차원 생물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엄밀히 말해 우리는 3차원 공간에 살고 있지만 추가로 1차원의 시간차원에도 종속되어 있다. 우리보다 고차원의 시공간에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러한 존재는 시공간 4차원 존재인 우리의 가로, 세로, 높이에 따른 활동뿐 아니라 그 활동의 궤적(즉 시간경과)를 나란히 늘어놓고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2차원 생물이 보지 못하는 높이를 볼 수 있듯이, 5차원 생물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시간의 연속 스펙트럼(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기까지)을 만화경처럼 펼쳐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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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는 블랙홀에 빠지지만 5차원 외계인들의 도움으로 파괴되지 않고 일종의 역장 안에 보호된다. 그 안에서 쿠퍼는 지나간 사건들을 동시에 병렬로 늘어놓고 조망하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마치 3차원 공간의 인간이 2차원 공간의 인간을 굽어보고 있듯이. (copyright: Legendary Pictures / Syncopy / Lynda Obst Productions)

아직 경험과학상 검증할 수는 없지만 ‘인터스텔라’의 이러한 전제를 일단 받아들인다고 치자. 문제는 누가 그런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와 상관없이 그러한 설정 자체가 시간여행 패러독스를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처럼 우리보다 훨씬 전능한 능력을 지닌 상위차원의 존재가 블랙홀 안에서 미아가 된 쿠퍼의 눈앞에 후회막급한 과거의 복수(複數) 시간선들(비극적인 운명을 맞을 외계행성 탐사에 자원하기 전후의 사건들)을 평행해서 늘어놓았다고 해보자. 이리되면 쿠퍼가 시간여행 패러독스 중 하나인 돌고 도는 순환형 연쇄고리에 빠져버린다. 대체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당시 농부였던 쿠퍼는 미래 시점에서 블랙홀에 빠진 우주파일럿 쿠퍼가 보낸 위치정보를 받고 옛 군기지에 숨겨진 미항공우주국을 찾아간다. 이후 미래의 쿠퍼는 블랙홀 가르강튀아 속에서 자신이 우주로 출발하기 전의 시공간(자기 집의 딸 방)에 있는 딸 머피에게 ‘Stay(못 떠나게 잡아줘!)’라고 모르스 부호 메시지를 보낸다. 두 사건은 서로 완벽하게 모순 된다. 미래의 쿠퍼는 과거의 쿠퍼 자신에게는 미항공우주국 좌표를 알려주고 딸에게는 자신을 못 떠나게 붙잡으라 한다. 미래의 쿠퍼는 블랙홀 속에서 정신분열을 일으킨 것일까?

이러한 모순을 관객들이 쉽게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감독은 기만적인 해법으로 때운다. 바로 편집이다.

눈앞에 전개되는 화려한 영상과 박진감 넘치는 음악에 압도된 관객은 순간순간 앞뒤 인과관계를 따질 여력이 없다. 감독이 미래의 쿠퍼가 과거의 쿠퍼에게 미항공우주국 좌표를 알려주는 장면은 아예 보여주지 않고 딸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만 관객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관객은 5차원의 외계인이 위치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왜 외계인이 하필이면 블랙홀의 속에 들어가서 미래 시점에서 과거의 쿠퍼에게 알쏭달쏭한 메시지를 보내야 할까? 그들이 쿠퍼를 우주파일럿으로 점찍고 미항공우주국 좌표를 알아내 그것도 인간에게 익숙한 모르스 부호 방식으로 전해준 것일까? 당신은 이 세 가지 우연의 요소를 외계인들이 나서서 일치시켜야 할 이유나 맥락을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요약하면, 과거의 쿠퍼는 미래의 자신이 주는 좌표를 받고 미항공우주국으로 갔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전후맥락상 쿠퍼에게 좌표를 준 것은 쿠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외계로 떠나기는커녕 무슨 일이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쿠퍼에게 외계로 떠날 수 있는 힌트를 준다는 것은, 타임머신을 발명하려 머리를 싸매고 있는 과학자에게 이미 타임머신을 발명한 미래의 자신이 찾아와 “이렇게 하면 만들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과학자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없다면 쿠퍼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렇게 편의적인 플롯은 시간여행의 본질에 다가서기보다는 오히려 제논의 역설처럼 본질을 오도하여 머리만 아프게 한다.

시공간의 장벽을 중력은 넘나든다

‘인터스텔라’는 주인공의 과거 자아와 미래 자아가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끝없이 순환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인과율의 위배라는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 (source: Warner Bros.)

현실성 있는 대안이 있다면 왜 굳이 무모한 성간탐사를 무릅썼을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쿠퍼는 웜홀 너머의 우주에서 인간이 온전히 숨쉬고 살 수 있는 (테라포밍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낙심한 채 태양계로 돌아온다. (쿠퍼는 탐사동료였던 브랜드 교수의 딸이 세 번째 행성에서 희망을 싹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 전에 블랙홀 경계면에서 그녀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지구에서는 이십여 년이 흐르고 인류의 상당수는 우주공간에 인공거주구(space habitat)를 만들어 거주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대도시만한 인공건축물을 만들어 살 수 있는 과학기술력이 있었다면 왜 웜홀을 뚫고 100억 광년이 넘는 우주의 끝자락까지 가서 생명거주 행성을 찾느라 인명을 희생해가며 유난을 떨어야 했을까? 그보다는 인공거주구를 수천, 수만 개 만들어 거기에 거주하면서 화성과 유로파, 엔셀라두스 등 태양계 내의 테라포밍 가능한 천체들을 재개발(!) 하는 편이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을까? 굳이 무모한 성간여행을 떠날 것 없이 살 방도가 있었다면 왜 미항공우주국의 이주 프로젝트 총책임자인 브랜드 교수는 반중력 엔진 개발 어쩌고 하며 거짓말로 사기 쳐서까지 탐험대를 등 떠밀어 보내야 했을까?

수수께끼의 5차원 외계인은 무엇 때문에 인류를 돕는 것일까?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나서야 상대를 납득시킬 수 있을 리 없다. ‘인터스텔라’에서 소위 5차원 외계인으로 불리는 미지의 세력은 결정적인 위기마다 주요한 역할을 하지만 좀체 그 의도를 알 수 없다. 이들이 인공 웜홀을 태양계에 만들어준 덕에 인류의 탐사대가 100억 광년 떨어진 가르강튀아의 행성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또한 5차원 외계인들은 주인공 쿠퍼가 블랙홀로 떨어졌을 때 산산조각 나지 않게 보호 역장(力場)을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블랙홀 안에서 복수의 시간대를 한데 늘어놓아 그가 자신의 딸 머피에서 반중력 이론을 완성할 수 있는 힌트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이 외계인들이 이렇게까지 인류를 신경 써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외계인들이 가공한 중력이 지배하는 블랙홀 안에까지 따라가 쿠퍼를 구해주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2001년 우주 오디세이’에서도 고도의 외계문명이 지구에서 온 우주비행사 데이비드 보먼을 알뜰살뜰 챙기지만 이 경우에는 그럴만한 동기가 있었다. 300만 년 전 자신들이 진화에 관여한 지구의 인류가 드디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 보고 싶었고 유사시 보먼을 자신들을 대리해 인류와 이야기하게 할 대사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스텔라’에서 5차원 외계인들은 시종일관 공짜로 재능기부만 할 뿐 무슨 목적이나 의도가 있는지 일체 밝혀지지 않는다. 행동의 동기가 없는 외계인이라니 상상이 가는가? 그것도 평범한 것이 아니라 한 생물 종의 명운이 오가는 선택에 관여하는 행동이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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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우주 오디세이’의 데이비드 보먼(왼쪽)과 ‘인터스텔라’의 쿠퍼(오른쪽)는 둘 다 고도문명의 외계지성이 돌봐주는 우주비행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전자는 돌봐주는 목적이 분명한데 비해 후자는 무슨 의도인지가 아리송하다. (Credit: Warner Bros./Salon)

하지만 이런 식으로 헐뜯기 시작하면 SF영화를 볼 생각하지 말고 공학논문이나 읽어야 한다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오히려 공학논문에 필적할 만치 과학적인 고증이 엄정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해서 대중이 감탄하기는커녕 객석에서 코를 골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러나 위와 같은 과학적인 오류를 일일이 지적한 것은 영화비평적인 관점에서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SF적인 상상과 현실과학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보기 위함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극적 전개를 위해 과학적 현실성을 떠나 어떤 부분은 생략하고 어떤 부분은 유달리 강조하는 화법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얘기를 억지로 지어내거나 과학법칙이나 공학기술상의 현실을 무시하고 엉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좋은 주장을 대중 앞에 마음대로 떠들어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과학에 휘둘려 이야기를 지루하고 장황하게 나열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과학적 설정을 임의대로 마음껏 뜯어고치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지 않은가. ‘인터스텔라’의 경우에는 앞서 비교해서 보여주었듯이 하드SF로서 충실한 면과 오히려 그렇지 못한 면이 공존한다. 전자의 비중이 더 튼실해지는 영화가 널리 사랑받기 위해서는 제작진의 노력 못지않게 일반대중의 과학에 대한 이해수준과 관심이 한층 더 깊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질수록 흥행을 고려하는 제작진은 더 세련된 SF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 고장원 SF 칼럼니스트sfko@naver.com
  • 저작권자 2015.01.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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