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우주 항공

[중앙일보] 민간 우주산업의 미래

FERRIMAN 2014. 12. 11. 21:36

입력 2014.11.21 00:43 / 수정 2014.11.21 01:30
 

[똑똑한 금요일] 민간 우주산업의 미래

우주선은 폭발했지만 … 수퍼 리치, 꿈은 멈추지 않는다

흰색 우주선 꼬리가 불탔다. 로켓 화염이 아니었다. 긴 불길이었다. 우주선은 힘을 잃고 곤두박질했다. 지난달 말 미국 모하비사막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문제의 우주선은 ‘스페이스십 2’였다. 민간 우주선이다. 세계 최초 민간우주여행사인 버진 갤럭틱이 개발했다.

 이날 미국 폭스TV는 “한 기이한 비즈니스 리더의 ‘수천만 달러짜리 취미’가 실패로 끝났다”고 묘사했다. 바로 리처드 브랜슨(64)이다. 영국 항공사 버진그룹 창업자다. 지금의 셈법으론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는 ‘우주여행 비즈니스’ 선두주자다. 그는 사고 직후 “다시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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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은 그의 호기로움과는 거리가 좀 있다. 브랜슨만 실패한 게 아니다. 스페이스십2 추락 사흘 전에도 사고는 있었다. 민간 우주비즈니스 회사인 미국 오비탈사이언스의 화물 우주선이 버지니아 월롭스기지에서 발사된 뒤 6초 만에 폭발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주문을 받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물건을 실어 나르던 화물 우주선이었다.

 잇따른 사고에 수퍼 리치(Super Rich)의 ‘우주 열풍’이 주춤하고 있다. 영국 컨설팅업체 나이트 프랭크의 리엄 베일리 수석연구원은 “상업 우주선에 투자하는 일이 수퍼 리치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말했다. 수퍼 리치 70여 명이 상업 우주여행 사업에 1750억 달러 정도를 투자했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엘런 머스크 테슬러 최고경영자(CEO)와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 등이다.

 이들 가운데 선두 주자가 브랜슨과 미국 엑스코에어로스페이스의 제프 그린슨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세기 미국이 주도하던 우주개발이 부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할 정도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로켓 개발과 우주 탐험은 정부가 아닌 민간 벤처의 몫이었다. ‘우주과학의 아버지’인 미국 리처드 고더드(1882~1945)나 ‘로켓 천재’ 베르너 폰 브라운(1912~77) 등이 초기엔 민간 부문에서 활동했다. 과학 채널 디스커버리는 “브라운 등은 1930년대까지 부호의 지원 또는 투자를 받아 로켓실험을 했지만 한 사건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고 설명했다.

 운명의 제2차 세계대전이다. 전쟁은 브라운 등의 순수한 열망에 죽음의 색채를 덧칠했다. 브라운은 악마의 무기인 V2로켓을 만들었다. 영국 런던 등을 무차별 공격했던 아돌프 히틀러의 무기다.

 전쟁에 이은 동서 냉전이 로켓과 우주를 체제 선전의 도구로 바꿔놓았다. 옛 소련과 미국이 막대한 돈과 자원을 우주 경쟁에 쏟아부었다. 디스커버리는 “달 착륙은 냉전 시대 체제 경쟁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고 했다. 이런 열기는 중국과 인도 등 몇몇 신흥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민간 우주 비즈니스는 선진국의 재정 불안이 낳은 현상이기도 하다. 냉전 이후 국가적 자존심 고양과 군사적 목적이란 논리도 힘을 잃었다. 정부의 곳간 사정도 나빠졌다. 투자 여력이 줄었다. 우주 개발 예산은 쪼그라들었다. FT는 “아폴로호의 달 탐사 이후 미 연방 재정의 4%가 넘던 NASA의 예산은 최근 0.5% 이하로 떨어졌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2011년 7월 발사한 애틀랜티스호의 퇴역 비행을 마지막으로 유인 우주탐사계획을 중단했다.

 국가가 떠난 자리를 억만장자가 채웠다. 우주 프로젝트가 2차대전 이후 국가 전유물이었다가 다시 민간 영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머스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스페이스X를 설립했을 때 우주 운송수단과 로켓 기술 개발 분야는 얼어붙어 있었다. 러시아는 소련이 무너졌을 때 쓰던 로켓을 그대로 사용했고 미국과 록히드마틴·보잉 등의 로켓도 예전에 설계한 그대로였다. 우주 항공 분야의 신기술 개발은 신규 진입자의 몫”이라고 했다.

 미국의 억만장자 데니스 티토의 우주 여행은 수요를 부추겼다. 티토는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2001년 4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관광에 나섰다. ISS를 방문한 뒤 지구로 귀환했다. 이후 7명이 우주여행에 성공했다. 부자를 겨냥한 우주여행 사업이 궤도에 오른 것이다. 버진 갤럭틱은 2015년을 목표로 준궤도비행 우주여행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고도 100㎞까지 올라가 저중력 체험 등을 하는 패키지다. 비용은 25만 달러(약 2억7000만원). 이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앤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배우 등 700여 명이 계약서에 서명했다.

 베조스와 머스크의 우주전도 시작됐다. 베조스의 블루오리진은 9월 유나이티드 런치 얼라이언스(ULA)와 손잡고 로켓 엔진을 개발하기로 했다. ULA는 군수업체 록히드마틴과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이 세운 합작회사로 미국의 모든 군사위성 발사를 책임지고 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보잉과 함께 NASA가 추진하는 유인왕복선 사업인 ‘우주 택시’ 사업자로 선정됐다. NASA는 보잉과 스페이스X에 각각 42억 달러와 26억 달러를 투자한다.

 LA타임스는 “브랜슨의 실패가 우주 비즈니스란 벤처에 찬물을 끼얹었지만 거친 풍랑과 침몰이 서양의 초기 대양 탐험을 막지 못했듯이 민간의 우주 여행 시도도 계속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NASA나 러시아의 우주 탐사 관련 기관도 경쟁에 뛰어들 개연성이 커 우주 비즈니스가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다. 예산이 줄어든 NASA 등이 우주탐험을 계속하기 위해 우주관광 상품을 내놓을 가능성도 크다. 이미 러시아 측은 물꼬를 터 놓았다. 디스커버리는 “앞으로 몇 년 뒤면 NASA 등 각국 우주항공 당국과 민간 회사가 우주관광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남규·하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