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과학기술 강국인 이유
유럽 과학관 여행 (2) 독일 뮌헨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
‘합리적인 사고와 실용 문화’, ‘세계 과학기술 산업의 핵심 리더’
‘독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이런 이미지와 독일인의 국민성이 자연스레 잘 녹아있어 ‘가장 독일다운 박물관’으로 알려진 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박물관 중 하나이자 과학기술 및 산업박물관의 롤 모델로 손꼽힌다. 세계대전 패망으로 참혹한 폐허를 떠안았던 독일, 분단국가이기도 했던 이 나라가 세계 과학기술 역사와 흐름에 빼놓을 수 없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비결은 무엇일까. 독일 과학기술의 역사와 현재를 담고 있는 독일박물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독일박물관은 어쩌면 독일 현대 역사의 한 부분과 닮아 있다. 1871년 뒤늦게 통일국가를 형성한 독일은 다른 유럽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해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육성한다. 이 덕분에 독일의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고, 그 동안의 성과를 전시하고 자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903년, 세계 최대 규모의 국립 과학박물관 건립 계획을 수립했다.
이 당시 뮌헨 출신의 엔지니어이자 기업인인 오스카 폰 밀러의 노력으로, 뮌헨이 현재의 박물관 부지를 제공했고, 독일 각지의 과학 문물들이 이곳으로 전달됐다. 드디어 1925년 문을 연 독일박물관은 불행히도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인해 박물관이 손상을 입는 위기도 겪는다.
하지만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 끝에 독일은 독일박물관을 전쟁 이전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독일이 과학기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독일은 세계대전 패배로 인해 건축물 등 많은 하드웨어를 잃었지만, 교육과 과학을 무엇보다 중요시한 사회 분위기와 ‘과학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남아있었기에 다시 강대국으로 쉽게 부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일박물관이 있는 뮌헨은 독일 제3의 도시이자, 바이에른주의 진주로 불릴 만큼, 독일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명차 브랜드의 고향답게 유럽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BMW박물관과 벤츠센터도 뮌헨에 있다. 지도를 펼쳐보자. 뮌헨의 중심 마리엔광장을 지나 이정표를 따라 10여분 걷다보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이자르강에 이른다. 강 한편에는 박물관섬(Museumsinsel)으로 불리는 작은 섬이 있는데, 이곳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독일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첫 번째 포인트, 실물 배와 항공기의 내․외부 감상
독일박물관은 전체 50개 주제의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고, 전체 구조는 지하부터 6층까지로 구성되어 있다. 물리, 화학, 지학, 천문학 등 기초과학 관련 전시는 물론, 해양과학, 항공우주과학, 기계공학, 에너지공학, 첨단과학 등 인류 과학사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없이 자리하고 있는 전시관의 실물과 모형들은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다. 과학관 관계자에 따르면 총 2만여 가지의 전시물이 있고, 관람동선은 거의 20km에 달하기 때문에 모든 전시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추구하려면 하루 8시간 기준으로 한 달 정도 관람해야 한다고 한다.
0층(Ground floor)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면, 실물 크기로 전시된 다양한 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9세기 어선인 마리아, 증기기관으로 추진되는 렌조를 비롯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도라, 잠수함까지 다양하다. 전시관에서 실제 다양한 배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점은 배의 단면을 세로로 잘라 전시함으로써 관람객들이 내․외부를 자세하게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주요 전시물들이 체험형 전시물의 형태로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는 점은, 거대 박물관으로서 독일박물관이 갖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포인트, 라이트형제를 만나다
0층에서 시작해 1층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항공관이 있는데, 이곳에 비행기 역사의 전설인 라이트형제의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다. 인간이 날기 위한 꿈을 꾸기 시작했음을 말해주는 듯한 비행체의 모형에서부터 비행선, 열기구, 각종 항공기들을 비롯해 세계대전에 사용됐던 각종 전투기들까지 총망라해 전시되어 있다. 함께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모형 미니어처 항공기도 놀랍도록 정교하다. 라이트형제 비행기의 인기를 말해주는 듯, 이 주변에서 가이드와 함께 진지한 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단체 관람객들도 보인다. 스웨덴 출신의 한 학생은 라이트형제의 비행기를 보기 위해 독일박물관에 왔다면서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기분이 전염되는 듯 덩달아 행복감이 느껴진다.
이밖에 0층과 1층에서는 철도기술을 비롯해 수력, 석유 및 가스 등 에너지기술 관련 전시와 악기 관련 정보를 다루는 음악관, 독일 출신 유명 과학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전시물 등을 만날 수 있다.
2층에는 카메라 역사에 새 장을 연 초창기 라이카 카메라를 비롯해 독일산, 일본산 등 각종 카메라가 전시된 광학관이 있다. 카메라와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밖에 섬유, 제지, 인쇄, 유리 관련 기술을 비롯해 현생 인류가 남긴 스페인의 세계문화유산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복제본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3층에서 5층까지는 각종 천체망원경, 측정기계 등 천문학과 관련된 수많은 전시기기들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또한 전자공학, 광통신, 컴퓨터 등 정밀공학과 관련된 첨단과학물들도 만날 수 있다. 지붕까지 연결되는 최상층에서는 시계탑과 각종 해시계를 볼 수 있으며, 뮌헨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색다른 즐거움도 경험할 수 있다.
세 번째 포인트, 실제 광산보다 더 광산 같은 전시실
이번엔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 보자.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전시이자, 많은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광산갱도가 있다. 900m에 달하는 광산의 갱도 모습과 그 중간 중간에 모형으로 전시해놓은 광부들의 생활상이나 광산 시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탄광 운반도구를 이용해 어린이 관람객의 눈높이를 맞춘 놀이시설도 있다. 실제 존재했던 광산을 상품화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소금광산과 비교해 그 생생함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사실 독일의 광산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1960년대 독일에 온 우리나라의 많은 광부들이 힘들게 생활하면서 외화를 송금해 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을 닦은 일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지하 공간에는 어린이 과학관, 환경, 나노 및 바이오테크놀로지 전시관 등도 운영되고 있다. 특히 어린이 과학관에서는 체험형 과학시설물 위주의 과학관이 늘어나는 유럽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린이 과학관에는 어린이와 함께 할 때만 입장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체험형 과학관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과학관 입구 앞에 놓여있는 수많은 유모차들과 각종 전시물들을 대하는 어린이들의 행복한 표정이 이 전시관의 인기를 대변해주는 듯했다.
네 번째 포인트, 전시 이해도를 높이는 체험 프로그램
독일박물관은 각 층마다 전시물에 대한 수많은 해설형 또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료 또는 유료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들은 요일별, 시간대별, 그룹별, 나이별, 성별, 사전 예약이 필요한 경우, 독일어로만 진행되는 경우 등 매우 다양하다. 관람객들을 배려한 박물관의 노력이 얼마나 세심하고 계획적인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모형 기차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 기차의 작동과 제어 장면을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관련 공장이 아니라면 보기 힘든, 유리 장인의 유리 불기 장면이 직접 눈앞에서 시연된다.
물리학, 화학, 천문학 등 기초과학의 의미와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도 잘 꾸며져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실험도구들을 볼 수 있는 실험실, 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의 실험실, 독일 마그네부르크시의 진공펌프 기압 실험으로 유명한 마그네부르크 반구 등 세계 유명 과학자들의 실험 과정이나 도구들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체험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정보는 독일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고, 프로그램 변경 여부도 정확하게 안내하고 있다.
다섯 번째 포인트, 사전 계획 통한 효율적 관람
일반적으로 대규모의 박물관은 볼거리가 많고 관람 동선이 길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쉽게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독일박물관 역시 그 규모와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사전 계획을 세우지 않을 경우 쉽게 지치거나 수박 겉핥기식의 관람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관람을 위해서는 박물관이 마련한 각종 프로그램의 진행 주제와 시간을 사전에 꼼꼼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반적인 전시물 관람을 비롯해, 선박이나 항공기 내․외부 둘러보기, 광산갱도 체험 등은 시간제한이 없이 언제나 가능하다. 박물관 관람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관심 분야 전시관을 꼽아 그 부분만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독일박물관을 효과적으로 관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홈페이지에는 각 전시관별로 자세한 정보가 안내되어 있으며, 선박항해 전시관 등 일부 전시관에 대해서는 VR(virtual reality) 기술을 이용한 멀티미디어 투어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마치 사용자가 전시실 내부를 걸어 다니고 있는 듯 간접적으로 박물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관람 계획을 수립할 때도 도움이 된다.
독일박물관은 과학기술과 교육에 대한 독일인의 자세가 잘 반영된 곳이자,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의 끈과 희망을 놓지 않아 탄생한 결과물이다. 독일은 이곳 박물관의 각종 전시물과 프로그램들을 통해 과학기술의 과거와 현재를 살피고, 미래의 동력을 찾고 있는 듯하다. 또한 과학기술과 교육이 왜 중요한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과학기술 문화를 어떻게 조성해야 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과제를 사회 전체에 제시하고 있다. 독일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 장미경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원
- 저작권자 2015.01.2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