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벽화로 부활한 김광석 … 전통시장도 되살아나다
그 길 속 그 이야기 〈57〉 대구 중구 골목투어 3~4코스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낭만적인 방법은 지도 한 장 들고서 도시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매력적이고, 골목이 복잡할수록 더 설렌다. 얽히고설킨 골목마다 유구한 사연이 배어 있어서다. ‘대구 중구 골목투어’가 꼭 그렇다. 대구 중구청이 관리하는 중구 골목투어는 모두 5코스가 있다. week&은 그 중에서 3코스와 4코스를 묶어 7.6㎞ 길이의 골목길을 걸었다. 세월 속에 묻혀버린 줄 알았던 옛 이야기가 발끝을 타고 스멀스멀 전해졌다.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에는 유난히 ‘청춘’이 많다. 수많은 청춘이 김광석이 그려진 벽화 앞에서 셀카를 찍고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골목으로 재조명한 대구
대구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관광 콘텐트는 대구 중구 골목투어와 방천시장에 있는 김광석 거리다. 골목투어 4코스에 김광석 거리가 있다. 김광석 거리가 막 떠오른 명소라면, 골목투어는 대구 관광의 터줏대감과 같다. 대구를 기반으로 한 시민단체 ‘거리문화시민연대’가 골목투어를 시작한 것이 2002년 3월이니 올해로 14년째다. 거리문화시민연대는 도시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 문화유산을 재조명하는 활동을 벌였다.
“대구 중구는 옛날 읍성이 있던 장소였어요. 조선 중기 이후로 400년 동안 영남의 중심이었지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외곽에 신도시가 생겼고 그러면서 인구가 많이 빠져나갔죠.” 장삼남(49) 문화해설사의 설명이었다.
이상화 고택으로 가는 골목에 그려진 벽화.
중구는 오랜 역사만큼 많은 인사를 배출한 고을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1910~87), 시인 이상화(1901~43), 소설가 현진건(1900~43), 독립운동가 서상돈(1850~1913), 가수 김광석(1964~96), 대우그룹 창업자 김우중(1936~) 등 시대를 풍미한 각계각층의 명사가 대구 중구와 연을 맺었다. 이들의 생가가 보존된 곳도 있고, 터만 덩그러니 남은 곳도 있다. 중구 골목길에는 유명인의 흔적뿐 아니라 이 땅을 일구고 가꿔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중구청이 거리문화시민연대를 이어 골목투어를 맡은 것은 2008년 5월이다. 2008년부터 지난해 11월 말까지 모두 90만 명이 대구 중구 골목투어에 참여했다. 현재 골목투어에 투입된 문화해설사는 모두 75명이다. 이 중에서 영어·일본어·중국어 등 외국어가 가능한 해설사가 18명이나 된다. 중구 골목투어는 대구에서 50년을 살았다는 토박이도, 먼 땅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도 좋아하는 관광 콘텐트다. 골목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대구를 다시 봤다”다. 대구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입을 모은단다.
시장 따라 골목 따라
3코스 패션한방길은 2.65㎞의 길이의 짧은 탐방로다. 이 길의 약 70%가 대구읍성 터를 지난다. 성 동쪽에 난 길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동성로(東城路)에서 시작해 남성로(南城路)를 지나 남성로(西城路) 일부를 걸어 서문시장으로 빠져나온다.
성곽의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길바닥에 옛날에는 성곽이 있었다는 표시를 해뒀다. 성곽이 있었던 위치를 추정해 다른 재질로 바닥을 깐 것이다. 그래서 바닥을 유심히 보며 걸어야 한다. 울퉁불퉁한 화강암 위를 걷고 있다면 바로 그곳이 옛날 성곽이 서 있던 자리다.
동성로는 ‘대구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최고 번화가다. 동성로 초입에 교동 귀금속 거리가 있다. 귀금속 거리가 형성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대구에 자리 잡은 피란민이 미군을 통해 얻은 시계와 부품을 내다 팔면서 귀금속 시장이 생겼다. 1980년대에는 서울 종로보다도 시장이 컸다고 하지만, 지금은 한산한 편이다. 요즘에는 귀금속 거리에서 5분 정도 떨어진 패션주얼리타운에 사람이 더 몰린다.
1902년에 지은 계산성당.
남성로로 접어들자 2코스와 가까워졌다. 계산성당과 옛 제일교회, 이상화 고택 등 2코스 명소가 지척에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한약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약령시장은 1600년대에 생겨났다. 전국에서 채취한 약초를 모아놓고 봄 가을마다 진상품을 가려낸 뒤 장을 열었다. 임금의 명령으로 시장이 열려 ‘약령시(藥令市)’라 불렸다. 약재뿐이 아니다. 예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대구에 온갖 물자가 모였고 큰 시장이 형성됐다. 대표적인 곳이 서문시장이다. 김영오(62)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장의 설명을 들었다.
“대구는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중간 도시였어요. 1905년 일본이 철도를 놨을 때도 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물자가 모였고 시장이 발전했습니다.”
지금도 서문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특히 국수 골목과 돼지찜갈비 가게들은 평일 낮인데도 손님이 줄을 섰다. 서문시장은 8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상인회에 등록된 점포만 4622개이고 노점상까지 합하면 5000개가 넘는다.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약전골목.
김광석을 그리다
4코스에 접어들자 도로가 넓어졌다. 경북대 병원부터 방천시장까지는 삼덕동이다. 삼덕동은 일제강점기 관사(官舍)가 모여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 형성된 읍성 안과 달리 길이 반듯했다. 일본식 가옥도 심심찮게 보였다.
왕복 10차선의 달구벌 대로를 건너 대봉동으로 넘어갔다. 대봉동에 방천시장이 있고, 방천시장 안에 김광석 거리가 있다. 방천시장은 광복 이후 생겨나 60년대에 가장 번창했다. 2000년 방천시장 재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쇠락했다. 방치되다시피 했던 방천시장이 변화한 것은 2009년 무렵이었다.
“재개발할 건데 뭣 하러 투자를 하냐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2009년에 중구청이 ‘2011 세계육상경기대회’를 앞두고 갑자기 관심을 보이더라고. 마라톤 코스가 시장 주변을 지나는데, 도저히 그 상태로는 중계 카메라에 못 내보겠다는 거였지.”
평일 낮에도 북적거리는 서문시장.
신범식(68) 방천시장 상인회장이 옛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시장은 확 달라졌다. 미술작가들이 방천시장을 대표하는 인물을 앞세운 시장 부활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찾아낸 인물이 김광석이었다. 64년 대봉동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어릴 적 방천시장 건너편에 살았다.
지금까지 작가 47명이 시장 제방 벽에 김광석을 그려 넣었다. 노래하는 김광석, 계단을 걸어 오르는 뒷모습의 김광석, 떡볶이를 파는 김광석 등 수많은 김광석이 벽화로 다시 태어났다. 350m 길이의 골목 한쪽 벽이 김광석 그림으로 가득 찼다. 골목에는 온종일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온다.
김광석 거리는 전국 명소로 떠올랐고 시장도 되살아났다. 평일 평균 600명, 주말 6000명이 이 골목을 찾는다. 벽화 거리 맞은 편에 커피숍·공방 등이 새로 문을 열었다. 벽화 거리 쪽 땅값은 약 5배가 올랐고 시장 매출도 15% 이상 늘었다.
방천시장을 빠져나온 길은 봉산동으로 이어진다. 대구의 인사동이라 불리는 봉산동에는 골동품 가게와 갤러리가 모여 있다. 기계 소리 요란했던 인쇄소 골목을 지나 대구향교에 다다르자 다시 마음이 차분해졌다. 4코스는 향교에서 600m 떨어진 건들바위에서 끝이 났다.
●길 정보=대구 중구 골목투어는 대구 도심의 문화유산을 방문하는 탐방로다. 모두 5개 코스로, 5개 코스를 다 합쳐도 14.6㎞밖에 안 된다. 가장 긴 코스가 김광석 거리를 지나는 4코스로 4.9㎞이다. 나머지 코스는 2㎞ 안팎이다. 2~3개 코스를 묶어서 걷기를 추천하는 이유다. 매주 토요일 중구청이 해설사와 함께하는 투어를 진행한다. 대구 중구청 문화관광과(jung.daegu.kr/alley) 홈페이지 또는 전화(053-661-2194)로 예약할 수 있다. 오전 10시, 오후 2시에 시작해 2시간 정도 진행된다.
‘이달의 추천 길’ 1월의 주제는 ‘도심투어’다. 두 발로 걸으며 도시 여행을 할 수 있는 트레일 10개가 선정됐다. <표 참조> 이달의 추천 길 상세 내용은 ‘대한민국 걷기여행길 종합안내 포털(koreatrails.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걷기여행길 포털은 전국 540개 트레일 1360여 개 코스의 정보를 구축한 국내 최대의 트레일 포털사이트로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한다.
글=홍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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