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활동

[중앙일보] 겨울 제주도-한라산

FERRIMAN 2015. 1. 28. 07:26

입력 2015.01.23 00:01 / 수정 2015.01.24 09:10

뽀드득~하얀 융단 깔렸네요, 융프라우 안 부럽네요

한라산 영실~돈내코 코스 눈꽃 트레킹

















영실 등산로를 따라 한라산에 오르면, 윗세오름과 백록담 화구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눈꽃 트레킹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겨울 등산 준비물만 갖춘 뒤 수준에 맞는 코스를 골라 걸으면 된다. 굳이 정상까지 오를 필요도 없다. 오히려 정상 문턱의 윗세오름(1740m) 주변 풍경이 겨울에 더 눈부시다. 눈꽃 틔운 구상나무와 하얗게 빛나는 드넓은 평원, 검은 바위 틈틈이 눈을 쟁인 백록담 분화벽(噴火壁)까지 그림 같은 절경이 이어진다. 한라산 등산로는 모두 5개다. 이 중에서 기암괴석의 위용을 감상하고 설원을 만끽할 수 있는 영실 코스로 올라 돈내코 코스로 내려왔다.


해발 1700m 그림 같은 눈마당

오전 6시. 한라산 고사리를 넣어 끓인 육개장으로 배를 채우고 한라산 기슭 영실 휴게소(1280m)로 향했다. 사위는 여전히 어둑했다. 아이젠을 차고 등산로에 진입했다. 1월 들어 날이 풀리면서 눈이 많이 녹았다지만 나무계단 위로 1m 이상 두터운 융단이 쌓여 있었다. 영실 휴게소를 지나 30분쯤 걸으니 오른편 능선에 삐죽삐죽 솟은 바위가 줄지어 있었다. 오백나한이라 부르는 기암괴석이다. 등 뒤로는 봉긋 솟은 오름들 섬 제주의 남동쪽 바다가 훤히 펼쳐졌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옷 벗은 진달래와 철쭉 나무가 지천이었다. 해발 1400m부터는 완만한 능선 길이었다. 구상나무 군락지가 펼쳐졌다. 빽빽한 숲도 아니고 사람 키만한 나무인데도 군락지 안쪽은 바람 한 점 없어 포근했다. 구상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과 식물로 눈이 오거나 바람이 강한 날이면 두툼한 흰옷 입은 눈사람으로 변신한다.

선작지왓에서 썰매를 타는 등산객들. 어린아이처럼 신났다.



등산을 시작한 지 약 3시간. 구상나무 군락지를 벗어나니 거짓말처럼 너른 평원 ‘선작지왓’이 펼쳐졌다. 등산로를 벗어나는 것은 금지됐지만 눈이 많이 쌓여 길의 경계가 사라졌다. 그냥 너른 눈마당이었다. 얕은 오름에서 비료 포대로 썰매를 타는 중년들도 있었다. 동쪽에는 거대한 화구벽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스위스 알프스의 융프라우(4158m) 못지 않은 장관이었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라면을 먹고 하산 채비를 했다. 제주도 남쪽으로 난 돈내코 코스로 향했다. 예부터 멧돼지가 와서 물을 마셨다는 돈내코는 이름처럼 물이 많은 계곡이다.

남벽 분기점부터 평궤 대피소까지는 화구벽을 왼쪽에 끼고 완만한 길을 걸었다. 평궤 대피소를 지난 뒤부터는 우거진 숲이었다. 금강송과 조릿대, 굴거리나무가 빽빽했다. 숲에서는 노루가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코스 입구에는 노루 시체가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원시림에 어울리는 원시적인 풍경이었다.

돈내코 코스에 있는 방아오름샘. 멀리 화구벽이 흐릿하게 보인다.
 


백록담 보려면 성판악∼관음사 코스

한라산 등반은 어느 코스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코스에 따라 난이도도 다르다.

wekk&이 고른 영실 코스는 영실 휴게소부터 시작하면 윗세오름까지 3.7㎞로 가장 짧다. 돈내코 코스는 7㎞로, 1994년부터 15년 동안 길을 막았다가 2009년 12월에 개방했다. 등산로 입구부터 윗세오름까지 4.7㎞에 이르는 어리목 코스는 사계절 인기 있다. 어리목계곡에서 사제비 동산에 이르는 2.4㎞ 구간이 가파르지만 만세동산부터 완만하다. week&은 2010년 1월 돈내코 코스를 오른 뒤로 이번에야 다시 한라산을 찾았다.

week&이 추천하는 눈꽃 트레킹 코스는 돈내코로 올라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다. 돈내코 코스는 길다. 탐방 안내소에서 평궤 대피소까지 5.3㎞ 구간이 다소 지루하다. 이 길을 천천히 오르다가 압도적인 풍광의 화구벽을 만나고 선작지왓에 이르면, 힘들게 걸었던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을 받는다. 메인 요리를 나중에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 등반에서 반대 방향을 택한 건 순전히 사진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 한라산의 남쪽 하늘은 너무 흐렸다.

등산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 노루.



겨울에도 백록담에 오를 수 있다. 물론 만만치는 않다. 한라산은 관음사 쪽 입구를 제외하고 야영이 금지돼 있어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하루 만에 약 20㎞를 걸어야 한다. 겨울에는 윗세오름 쪽보다 볼거리도 부족하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으로 들어가는 길은 자주 폐쇄된다. 그래도 백록담 풍광만큼은 압도적이다.

백록담을 볼 수 있는 등산로는 2개다. 성판악 코스(9.6㎞)로 오른 뒤 관음사 코스(8.7㎞)로 내려오는 게 일반적이다. 성판악에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약 3시간, 진달래대피소에서 백록담까지 1시간30분, 백록담에서 관음사까지 3시간30분 걸린다. 성판악 코스를 왕복하면 지루하긴 하지만 부담은 적다. 관음사 코스는 등산과 하산 모두 만만치 않다. 한라산 등산로 중 최고 난이도로 꼽힌다. 해외 원정을 준비하는 산악인이 여기서 훈련한다.




●여행정보=한라산 겨울 산행은 날씨가 관건이다. 눈이 많이 내리면 입산이 통제된다. 한라산 국립공원에서 통제하는 입산·하산 시간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홈페이지(hallasan.go.kr)에서 통제 시간과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064-713-9950. 겨울 산행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방한복·스패츠·아이젠을 챙기고, 물과 간식도 충분히 가져가야 한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컵라면과 커피·과자 등을 판다. 여행사 여행박사(tourbaksa.com)가 가이드가 함께하는 한라산 눈꽃 트레킹 상품을 판매한다. 이달 27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매주 화·토요일, 서울·부산에서 출발한다. 2박3일 30만6000원. 서울 070-7017-2408, 부산 070-7017-9735.


글=최승표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