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반도체기술은 국제 산업계 이끌 한국의 핵심기술
머리카락 5만분의 1 두께에 벌집 모양의 탄소원통…
탄소나노튜브. 나노기술과 연관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용어다. 튜브 모양의 이 탄소 덩어리는 1991년 발견된 이후 나노 분야에서 가장 촉망받은 신소재다. 올해는 탄소나노튜브가 발견된 지 20년째다. 그런데 최근 이 신소재가 누려온 맹주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다이아몬드만큼 강하고 구리처럼 전기가 잘 통하는 특성을 가졌는데도 형태를 조금만 변형해도 전기적 성질이 바뀌는 바람에 길게 늘리는 게 어려워 상용화의 길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극복할 새로운 형태의 물질을 만들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행돼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그래핀과 같은 꿈의 신소재가 속속 등장하면서 뒤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초 탄소나노튜브 실과 기능성 섬유까지 만드는 기술이 개발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할 계기를 마련했다. 탄소나노튜브는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 그 정체는 무엇일까?
숯·흑연·다이아몬드·탄소나노튜브. 이 네 가지 물질의 구조는 모두 다르지만 다 같은 탄소원자들로 이뤄졌다. 이 탄소원자가 육각형 모양으로 결합해 원통 모양을 이루면 탄소나노튜브(CNT:Carbon nanotube)다. 몸통이 원기둥 형태면서 양 끝이 둥그스름한데, 1개의 탄소원자가 3개의 다른 탄소원자와 연속적으로 결합해 겉의 무늬가 마치 육각형 벌집처럼 보인다. 평평한 종이 위에 벌집 무늬를 그린 후 종이를 둥글게 말아놓은 모양을 떠올리면 된다. 또 탄소나노튜브 하나는 속이 비어서 튜브와 같은 모양을 이루는데 그 구멍의 지름이 1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탄소나노튜브라고 불린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늘로 알려진 탄소나노튜브는 마치 요술지팡이 같다. 주변 환경에 따라 도체가 되거나 반도체가 되는 전기적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나노튜브 한 가닥일 때는 금속과 같은 전기적 도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다발이거나 여러 가닥을 밧줄 모양으로 꼬아 모양을 변형시키면, 즉 탄소원자 배열이 달라지면 전기가 좀 덜 통하는 반도체가 된다. 도체가 모여 반도체가 되는 셈이다. 탄소나노튜브가 반도체 소자로 이용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재료로 가장 널리 쓰이는 실리콘이 기억소자나 트랜지스터 등에 이용되려면 반드시 도핑(doping)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순수한 반도체는 전기를 거의 통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P)과 같은 소량의 불순물을 섞어 전기가 어느 정도 통하게 만드는 도핑 처리를 해야 반도체로 쓰인다. 도핑 처리기술은 매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원래 전기적으로 도체인 탄소나노튜브는 일부러 도핑을 하지 않아도 튜브와 튜브가 상호작용하면서 저절로 도핑이 된 듯 전기적 성질이 도체에서 반도체로 변한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자들이 꿈꾸는 단일전자 트랜지스터에 한발 다가선 것이다.
이처럼 신기한 현상을 보이는 탄소나노튜브를 연결해 만일 몇 나노미터 정도 크기의 기억소자나 회로를 만든다면 현재의 반도체보다 1만 배 정도 집적도가 높은 칩을 만들 수 있다. 또 탄소나노튜브는 속이 비어 있어서 가벼울뿐더러 탄소원자 사이의 결합력이 실리콘에 비해 강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반도체로 응용될 가능성 때문에 탄소나노튜브가 꿈의 재료로 일컬어질까? 아니다. 전기가 가장 잘 통하는 구리에 비해 전기전도율이 1000배 정도 높고, 같은 두께의 강철보다 100배 이상 단단하다는 특징도 있다. 그러면서 훨씬 유연하기까지 하다. 기존 마이크로미터 탄소섬유는 1%만 변형돼도 끊어지는 단점이 있는데, 탄소나노튜브는 훨씬 더 유연해 15%의 변형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잘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공정이 매우 쉬워진다는 의미다.
탄소나노튜브는 또 탄성이 굉장히 좋은 재료다. 예를 들어 터치패널은 여러 번 눌렀다 놨다 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 구조가 변하면 안 된다. 그런데 탄소나노튜브는 힘을 가했다 풀었을 때 탄성 때문에 금방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힘을 받았던 부분 역시 전혀 손상이 되지 않는다. 여러 번 사용해도 전혀 구조가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장점이다. 이러한 좋은 특성 때문에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고, 특히 반도체에서 실리콘을 대체할 물질로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이런 많은 장점에도 탄소나노튜브의 상용화를 더디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비싼 생산단가, 절삭 문제
탄소나노튜브는 1991년 11월 일본의 전자회사 NEC의 연구원인 이지마 수미오(飯島澄男) 박사가 다른 물질을 합성하던 중 발견했다. 그는 흑연 전극에 붙어 있는 미확인 검댕을 발견했는데 이 검댕이 바로 탄소나노튜브였다. 그로부터 20년간 국내외 과학자들은 반도체 소자에서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탄소나노튜브를 다양한 용도에 응용하려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탄소나노튜브는 처음 개발된 이래 최고로 각광받는 나노기술의 귀한 몸이었다. 화학 센서에서 나노 스케일의 컴퓨터 회로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금보다 30배쯤 비싼 가격 탓에 탄소나노튜브의 경제성은 떨어졌다. 그런데 국내 삼성종합기술원이 상온에서 간편하게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생산단가를 현저히 낮출 수 있게 돼 해결의 실마리를 푼 상태다.
또 탄소나노튜브의 도체와 반도체의 특성은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했다. 탄소나노튜브로 반도체 칩을 만들 경우 테라바이트(1조 단위)급 집적도가 가능하다. 반면에 금속성(도체)과 반도체성이 섞인 상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를 완벽히 조절할 수 없는 점이 상용화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지난 20년간 탄소나노튜브의 금속성과 반도체성을 분리하는 연구가 과학기술계의 풀리지 않은 숙제로 여겨져온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기계연구원에서 금속성과 반도체성을 고순도로 분리하는 데 성공해 상용화의 길을 열었다.
상용화의 또 하나 큰 걸림돌은 탄소나노튜브를 일정한 길이로 자르는 일이다. 배관공은 금속 막대를 정확하게 자르는 방법을 알지만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밖에 안 되는 탄소나노튜브를 정확하게 자르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탄소나노튜브를 자르는 기본 개념은 1990년대에 이미 개발돼 알려졌다. 그 기본 원리는 강한 산성 용액 속에 있는 탄소나노튜브의 뒤죽박죽된 묶음에 초음파로 충격을 가하면 부분적인 진공이 형성되는데 이러한 진공에서 공기방울이 발생되고, 그 공기방울이 5000℃라는 초고온에 이르면서 폭발해 나노튜브를 찢는다는 것이다. 즉 공기방울 붕괴에 따라 탄소나노튜브가 무작위적인 길이로 분리되는데 로프가 매우 강하게 양 끝으로 당겨졌을 때 서로 분리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 공정원리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브라운대학의 공과대학 연구팀이 최초로 단일벽 탄소나노튜브를 원하는 크기의 지름으로 정밀하게 자르고, 또한 그 절삭 속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기존의 이론과 다른 양 끝단의 압축력 때문에 탄소나노튜브가 파괴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튜브의 파괴 현상, 즉 탄소나노튜브를 자르는 힘은 마치 오렌지가 압력을 받아 액체 주스가 빠져나오듯, 미세한 공기방울이 붕괴할 때 공기와 액체 사이에 끼여 있던 탄소나노튜브가 길이 방향으로 강하게 압축되면서 탄소원자 일부가 튀어 빠져나가 약해진 부분이 쉽게 산화돼 끊어진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었다. 이 연구로 그동안 어려웠던 절삭 문제 또한 해결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1월 7일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의 나노텍연구소에서 기능성 탄소나노튜브 섬유를 만드는 데 성공해 조만간 상용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탄소나노튜브는 가는 선 모양이라서 옷감을 만들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 수백∼수천 가닥을 일정하게 꼬면 탄소나노튜브 섬유가 만들어진다. 이때 빼곡한 부챗살 형태를 이룬 탄소나노튜브 층 위에 특정 물질을 첨가하면 탄소나노튜브와 첨가물의 특성을 함께 가진 기능성 섬유가 된다.
이를테면 탄소나노튜브 층 위에 배터리 재료인 리튬을 섞으면 리튬이온 전지의 특성을 가진 기능성 섬유가 만들어지는데, 이 섬유로 옷을 해 입으면 전기 저장이 가능해져 입는 배터리가 되는 식이다. 이것은 주로 미래형 군복 옷감으로 쓰인다. 또 스스로 정화하는 ‘자가 세정’ 옷도 가능해지는데 탄소나노튜브 층에 이산화티타늄을 섞으면 된다.
그동안의 단점들을 보완한 이러한 연구로 탄소나노튜브는 이제 날개를 달았다. 탄소나노튜브의 원천기술을 확보한 미국·일본 등은 양산기술 개발에 주력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 소재를 활용하는 응용기술 개발에 힘을 쏟았다. 올해는 특히 탄소반도체기술이 국제 산업계를 이끌어갈 핵심기술로 부상하여 생활 속까지 파고들 전망이다. 기존의 반도체 기술은 70나노·60나노·40나노로 원래 굵기를 점점 가늘게 만들어왔다. 그런데 탄소나노튜브는 이 개념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1나노미터에서 시작한다. 다만 실처럼 돼 있어 일부러 배열을 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
생활 속에 파고든 탄소나노튜브
탄소나노튜브가 개발된 지 20년째인 올해는 연구나 상용화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기능성 탄소나노튜브 섬유 개발 덕분에 우리는 머지않아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옷을 입게 될지 모른다. 여름에 입는 시원한 옷, 겨울에 입는 따뜻한 옷, 고온에 견디는 탄소나노튜브 옷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에어컨이나 히터가 필요 없어 그만큼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
또 탄소나노튜브 트랜지스터를 모아 뭉치면 아주 튼튼한 섬유가 되기 때문에 옷감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같은 곳에도 활용할 수 있어 옷의 일부가 화면이 되고 트랜지스터가 돼서 필요할 때 TV처럼 볼 수도 있다. 더구나 탄소나노튜브를 원하는 길이로 자를 수도 있어서 초고밀도 반도체나 의약품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향상된 새로운 기술은 자동차·에너지·광학 등 많은 다른 분야에서 더욱 매력적인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우리가 꿈꾸는 우주여행에도 접목된다. 지구와 우주정거장은 케이블로 연결되고, 케이블 위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주엘리베이터가 완성되면 어려운 훈련 과정 없이 누구나 관광 목적으로 우주기지를 방문해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그 우주엘리베이터 소재로 가장 유력한 후보가 탄소나노튜브다. 탄소나노튜브는 인장력에 매우 강해 이론적으로는 우주엘리베이터를 만들기에 충분하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응용 분야 말고 실용화된 탄소나노튜브 제품은 없을까? 이미 다양한 제품이 나왔다. 그중 대표적인 게 탄소나노튜브 투명전극필름이다. 탄소나노튜브의 전기적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 탄소나노튜브를 용액화해 만든 제품이다. 주로 터치패널용으로 쓰인다. 터치패널과 같은 장치에 적용하면 반복적인 물리적 압력에도 모양이나 특성이 전혀 변하지 않아 좋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플라스틱 제품들. 이 플라스틱에도 전기가 통하게 할 수 있을까? 탄소나노튜브라면 그것도 가능하다. 고온에 녹인 플라스틱에 탄소나노튜브를 균일하게 섞어 탄소나노튜브 복합체를 만든다. 그 복합체를 플라스틱 칩 형태로 만들면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이 된다. 탄소나노튜브 플라스틱의 역할은 아직 정전기 방지에 국한돼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가장 대표적인 쓰임새는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다. 소재가 가벼울 뿐만 아니라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어 플라스틱으로 만든 전기자동차의 실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
또 보기엔 별반 다르지 않은 일반 음식점 바닥에는 탄소나노튜브로 만든 발열필름이 들어 있다. 이 발열필름은 전기를 아끼려고 꺼놓은 상태에서도 5분 만에 찬 바닥을 금방 따뜻하게 데워주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자연히 에너지 절감은 물론 환경오염 문제까지 해결된다.
현재 탄소나노튜브는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고무처럼 질긴 것에 이르기까지 기존보다 더 뛰어난 소재가 만들어진다. 이는 앞으로 탄소나노튜브가 우리 생활을 얼마나 변화시킬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탄소나노튜브, 절대로 그래핀에 기죽을 일 아니다.
지금은 나노소재의 춘추전국시대다. 그만큼 다양한 신소재들이 개발되기 때문이다. 유전자와 금속나노입자를 결합해 만든 유전자(DNA)나노입자, 분자 한 가닥으로 만든 나노선 등 많은 신소재 가운데 원자 한 층으로 이뤄진 ‘탄소 3형제’ 풀러렌·탄소나노튜브·그래핀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뜨고 있는 나노소재는 ‘탄소 3형제’
1985년에 발견된 풀러렌(fullerene)은 가장 맏형이다. 그리고 1991년에 발견된 탄소나노튜브가 둘째고, 2004년에 개발된 그래핀이 막내다. 이 중 탄소나노튜브 연구만 아직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는데도 말이다.
풀러렌은 탄소원자 60개가 축구공처럼 결합돼 있는 분자로, 미국 라이스대학 화학과 리처드 스몰리 교수팀이 발견했다. 그는 이 업적으로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풀러렌은 부분적으로 산화나 환원을 시키면 전기가 통할 뿐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는 초전도성까지 보여줘 과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분자세계의 축구공인 풀러렌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보통 축구공의 지름이 0.3m고 풀러렌이 0.7nm므로, 풀러렌은 축구공을 1억 배쯤 축소했다고 보면 된다. 기존 축구공보다 1억 배 작으면서 탄소원자로만 이뤄진 분자 축구공은 정말 자연의 신비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구조다. 축구공이 무수히 많은 발길질에도 끄떡없듯, 이 합성물도 대단히 높은 온도와 압력을 견뎌낼 정도로 매우 안정된 구조다. 너무 안정된 구조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지만 신물질로서 가능성이 높다.
풀러렌은 발견된 지 25년이 넘은 요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풀러렌이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스포츠용품이다. 속이 빈 풀러렌은 구조적인 특징 때문에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다. 야구배트·골프채·테니스라켓에 딱 맞는 구조다. 빠르게 휘둘리고 공과 부딪쳐도 변형이 적어 효율적으로 힘이 전달된다.
또한 풀러렌은 기계가 잘 움직이도록 돕는 고체 윤활제로 쓰이고, 미백 화장품에도 쓰인다. 속이 빈 풀러렌은 활성산소를 잡아 가둔다. 활성산소는 피부를 산화시켜 노화를 일으키거나 피부를 어둡게 만드는 멜라닌 색소를 만든다. 이 밖에도 공업용 촉매제, 초전도체, 축전지, 약품 전달 매체 등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탄소 3형제’에게는 이 말이 안 통한다. 막내이긴 하지만 그래핀(graphene)은 형들보다 훨씬 더 막강한 특성을 보인다. 그래핀은 연필심에 쓰이는 흑연의 구성물질이다. 연필심을 확대해보면 켜켜이 쌓인 얇은 판이 관찰된다. 탄소원자들이 무수히 연결돼 육각형의 벌집 모양으로 수없이 쌓아올린 3차원 구조다. 그래핀은 여기서 가장 얇게 한 겹을 떼어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즉 탄소나노튜브가 입체적인 튜브 형태인 데 비해 그래핀은 탄소원자들이 천처럼 펼쳐져 있는 평면 형태의 얇은 막 구조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이다.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학 물리학과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흑연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해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세계 과학자들은 그래핀에 열광한다. 그 이유는 탄소나노튜브는 형태가 조금만 바뀌어도 전기적 성질이 바뀌지만 그래핀은 늘리거나 접어도 전기전도성을 잃지 않으므로 전기를 흐르게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우수한 특징 때문이다. 또 빛이 진공에서 초속 30만km의 속도로 이동하듯, 그래핀에서는 전자가 초당 1000km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특이한 현상을 나타낸다.
이뿐만 아니라 양자세계에서만 나타나는 터널링 현상(입자가 벽을 뚫고 지나가는 현상)을 보이는데, 마치 벽이 가로막고 있지 않은 듯 쉽게 지나간다. 이 말은 곧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나 두루마리컴퓨터, 접어서 들고 다니는 전자종이 등에 적용될 수 있음을 뜻한다.
예를 들어 대형 TV를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거나 말아서 들고 다니다가 캠핑 텐트 안에서 집에서와 똑같은 화질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응용 가능성은 어찌나 무궁무진한지 그래핀을 직접 연구해 노벨상까지 받은 과학자들조차 그래핀이 보여줄 미래 모습을 다 예상하지 못할 정도다. 세계가 기존 반도체를 그래핀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용화에는 혁신적 기업가정신 필요
그렇다면 이러한 꿈의 나노소재들이 발견되고 나서 상용화 수준까지 개발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전문가들은 대개 20년이 넘어야 상용화의 길에 들어선다고 말한다. 물론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생각보다 제품화하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린다. 상용화의 어려움은 주위 환경이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지속성 부족 때문이다.
이를테면 기술을 개발하고 양산화하는 과정에서 연구기관이 개발한 기술을 기업에서 이전받으면 이를 제품화할 인력이 기업에 없다는 게 문제다. 기업이나 정부과제를 포함해 시장이 없으면 열어야 하고 또 그러한 시장이 만들어져야 제품이 팔릴 텐데 실제 상황은 제품만 만들어지면 손을 놓아버리기 때문에 기술 개발 후 3~4년이 지나면 바로 경쟁력을 잃고 만다. 따라서 출연연구소에서 기업으로, 다시 기업에서 출연연구소로 인력이 자유롭게 이동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은 창조된 가치의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진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산업과 기술을 이어주는 혁신적 기업가정신이 없으면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기 어렵다.
지금 세계의 기업들은 나노소재의 본격적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상용화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나날이 치솟는 기존 반도체 소재의 가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노기술을 선점해 시장을 장악하는 나라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산업의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상용화에 나서려면 무엇보다 대량으로 신소재를 생산하는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미 그래핀이나 탄소나노튜브 등을 대량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크기로 만들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그 또한 걱정 없다. 이전에는 지름이 1~10㎛(마이크로미터, 나노미터의 1000배) 정도에 불과했던 데 비해 10cm가량의 필름으로 만드는 일들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10㎛에 비하면 지름 10cm는 엄청난 크기다. 앞으로 상용화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을 갖게 된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이조원 테라급나노소자연구단장은 “최근의 연구 흐름은 전자의 움직임이 아니라 빛과 스핀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고 있다”며 “여러 가지 나노소재도 결국 이러한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한두 가지 소재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반도체의 최강국이다. 특히 나노반도체의 상용화 수준은 이미 세계 정상권이다. 앞으로 전자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신소재의 상용화에 가장 먼저 성공해 세계 제일의 반도체국의 위상을 지키고,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핵심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자료 : 월간중앙(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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