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의미 수난시대
[중앙일보] 입력 2016.01.09 01:13 수정 2016.01.09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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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우리는 마음속에 작은 불씨를 키우며 산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화려하게 타지만, 대부분 흐린 날 연무 속의 가로등처럼 은은하게 탄다. 개성과 어우러져 사람마다 다른 색으로 타기에 불씨에 붙이는 이름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열정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헌신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인간다움이라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이들은 모두 의미를 향하여 깜박거린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꾸려나가기에 바쁜 일상에서 고개를 들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묻는다.
의미를 성찰하는 모습은 다른 모습과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빛을 발한다. 즐기는 방법을 잊은 채, 툭하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숨 막히는 가치론자의 삶은 윤기가 없어 아무도 부러워하지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순간을 즐기며, 여유롭게 대하는 모습이 어우러질 때 고리타분함을 넘어 더 깊은 진지함으로 익어간다.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유쾌한 모습은 성찰의 태도와 어우러지지 않으면 경박하다. 성찰과 어울릴 때, 경쾌함은 멋을 얻는다. 결국은 균형과 조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 한쪽으로 부는 바람이 거세다. 무한경쟁의 매서운 칼날 아래 내 몸 하나 가누기에 급급해지고 생각까지도 왜소해져 간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은 인간적인 가치의 실현이 아니라, 개인의 쾌락에 있다고 말한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낙은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아니하고 부(富)하고 또 귀함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는 논어의 구절은 그야말로 뜬구름 같은 이야기로 간주될 모양이다. 세태를 비판하며 마음 비우기, 생각 바꾸기를 권하는 이들도 결국은 험한 세상에서 나의 평안을 추구하는 안심입명의 움츠린 개인의 모습에서 별로 멀리 나가 있지 못하다.
몇몇 생물학자들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시켜 준 가치들도 알고 보면 생존과 종족 번식에 기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장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적 가치란 위장된 개인의 탐욕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니 ‘화를 참지 마라’ ‘남의 마음보다 나의 마음에 먼저 주목하라’는 이기적 제언이 부끄러움 없이 지혜의 옷을 입고 나선다. 너도나도 성질부리는 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당장의 스트레스 푸는 것에 몰두하여 이런 결과는 안중에 없다.
물질이 우리네 삶의 목록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고 경쟁이 도를 넘어서는 시절에 의미와 가치를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평가절하하고 해체하여 짐을 덜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의미가 점철된 예술·종교·윤리·문학 없이 살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의미 없이 역사를 이해할 수 없고 역사가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인간의 가치를 과신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힘들여 쌓아온 우리만의 자산을 소홀히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균형과 조화를 다시 생각할 때다. 바람이 거세면 불살은 약해져도 불씨는 깊어진다. 그 불씨가 있기에 폐지를 주워 모은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의 기부금은 저커버그의 52조원만큼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쳐두고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하여 히말라야로 떠나는 산악인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린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시인의 고백과 죽어가는 자들을 위하여 삶을 바치겠다는 젊은 수녀의 맹세와 헌신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귀한 것은 귀하게 여길 때 귀하게 쓰인다. 냉소가 도를 넘어 불씨를 꺼트리지 않도록 불씨들이 모여 훈풍을 만들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김기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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