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우주 항공

[중앙일보] 중력파의 발견

FERRIMAN 2016. 2. 18. 20:44

[시론] 중력파 발견은 인간 지적 탐구의 승리

[중앙일보] 입력 2016.02.17 00:33 수정 2016.02.17 00:54

16개국 과학자 모임이 분석 작업
13억 광년 거리의 블랙홀 발견
중력파 천문학의 시작을 상징
우주의 새로운 모습 상상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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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2015년 9월 14일. 라이고(LIGO) 쌍둥이 중력파 검출기에 거의 동시에 강력한 신호가 잡혔다. 5년이 넘는 성능 개선 작업을 거쳐 새로 가동된 지 사흘째 접어든 때다. 이 신호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6개국 과학자의 모임인 라이고 과학협력단에 의해 즉각적인 분석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2월 12일 0시30분(한국시간). 그 신호가 바로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태양 질량의 30배 정도 되는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낸 중력파에 의한 것이라는 라이고 과학협력단의 공식 발표가 나왔다.

 중력파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시선을 끌었을까. 중력파는 질량이 무거운 물체가 급속하게 가속을 겪을 때 나타나는 중력장의 파동이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곧이어 1916년에는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논문을 냈다. 절대적인 시공간을 가정했던 뉴턴의 중력이론과 달리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이론에서는 물체의 존재가 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한다. 일반상대론에서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중력파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중력파는 악명 높을 정도로 측정하기 어렵다. 감지할 수 있는 효과가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중력파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강력한 중력파를 내는 천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천체로부터 오는 중력파의 강도가 얼마쯤 되는지 살펴보고, 이를 어떤 방법으로 측정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강한 중력파를 내려면 일단 중력이 큰 천체가 필요하다. 중력이 강하려면 질량이 무겁고 크기는 작아야 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가장 이상적인 천체는 블랙홀이고 그다음은 중성자별이다. 이들은 모두 질량이 무거운 별이 진화를 마치고 최후에 남는 것들이다. 블랙홀은 대략 태양 질량의 5배에서 수십 배 정도, 중성자별은 태양 질량의 1.4배에서 2배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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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성자별이 자기장을 가지고 빠르게 회전하면서 주기적으로 전파를 내는 천체를 펄사라 한다. 가장 큰 전파망원경인 아레시보 망원경으로 펄사를 연구하던 테일러와 그의 대학원생 헐스는 74년 두 개의 중성자별이 매우 가까운 궤도를 돌고 있는 ‘펄사 쌍성’을 발견했다. 펄사가 내는 전파의 간격은 시간의 표준으로 사용하는 원자시계에 필적할 정도로 매우 일정하기 때문에 펄스의 미세한 주기 변화를 이용해 정밀한 궤도 측정이 가능하다. 몇 년 동안 펄사 쌍성을 관측하면서 궤도를 추적해 보니 중력파를 방출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변화 양상과 정확히 일치함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중력파는 이미 간접적으로 그 존재가 입증된 셈이다. 약 3억 년 후에는 쌍성 펄사를 이루는 중성자별도 거리가 너무 가까워져 서로 충돌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중력파의 형태로 방출하게 될 것이다. 가장 강력한 중력파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이 충돌할 때 나오는 것이다.

 펄사 쌍성계는 그 후 몇 개 더 발견됐다. 우리 연구단의 김정리 박사는 이들의 궤도 특성을 분석해 은하에서는 대략 5만 년에 한 번 정도의 중성자별 충돌이 일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너무나 드문 일이라서 관측이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50만 개의 은하가 포함된 영역까지 관측할 수 있다면 매년 10개씩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가동에서 라이고가 중성자별 충돌 현상을 볼 수 있었던 최대 거리는 2억 광년 정도 되고 이 안에는 우리 은하와 같은 큰 은하가 약 1만4000개 정도 들어 있다. 아직 중성자별 충돌을 자주 관측하기에는 부족한 성능이지만 라이고는 조정 작업을 거치면서 조만간 50만 개 정도의 은하를 포함하는 반지름 6억 광년의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이다.

 블랙홀은 중성자별보다 무겁기 때문에 충돌할 때 더 강한 중력파를 내게 되고 따라서 더 먼 거리에서도 관측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 쌍성계는 13억 광년 거리에 있었다. 질량이 컸기 때문에 먼 거리에 있어도 강력한 신호를 내서 관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필자는 블랙홀 충돌이 훨씬 자주 검출될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고 학회에서도 여러 차례 이를 강조했다. 일단 블랙홀 충돌이 먼저 관측됨으로써 필자의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한 셈이지만 더 많은 중력파가 관측되어야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중력파를 직접 검출한 것은 우주를 관측하고 연구하는 새로운 창문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이는 중력파 천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과학계와 언론이 환호하는 이유도 중력파 검출이 1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신호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리라. 라이고의 총책임자인 라이체 교수는 “중력파 검출은 400여 년 전 갈릴레오가 작은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을 시작하면서 과학 혁명이 촉발된 것에 필적하는 성과”라고 선언했고, 많은 사람이 이에 공감했다. 인간 지적 탐구의 또 하나의 승리인 중력파 천문학이 앞으로 우주의 어떤 새로운 모습을 가져다줄지 벌써 마음이 설렌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