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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타임즈] 한국 최초의 컴퓨터

FERRIMAN 2016. 3. 2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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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영 교수와 ‘한국 최초 컴퓨터’

한양대 박물관에서 전시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1967년 6월 24일 정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던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1층에서는 국내 도입 1호 컴퓨터의 시동식이 개최됐다. 박정희 대통령까지 참석한 이 시동식의 주인공은 ‘IBM 1401’이라는 명칭의 컴퓨터였다.

조사통계국은 이 컴퓨터를 도입하기 전 일본 도쿄에 있던 IBM 교육장에 직원 5명을 파견해 미리 연수 교육을 시켰으며, 카드에 구멍을 뚫어 집계하는 펀치카드 작업을 위해 300명가량의 임시직 여직원을 동원해야 했다. 또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IBM이 한국에 투자, 한국IBM을 설립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조사통계국이 이처럼 어렵게 IBM 1401을 도입한 이유는 인구조사 통계를 위해서였다. 1966년 인구 센서스를 실시할 때 예전의 주판과 카드 작업만으로는 통계를 낼 수 없을 만큼 경제규모가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경제 각료들이 미국 주간지 ‘타임’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 IBM에 주문한 이 컴퓨터는 크기가 교실 한 칸 정도여서 설치하는 데만 무려 3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IBM 1401의 기억용량은 고작 16KB(킬로바이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 컴퓨터는 당시 전 세계에 1만4000대나 팔릴 만큼 인기 기종이었으며, 가격은 40만 달러였다. 조사통계국은 IBM에 매월 9000달러의 사용료를 내는 임차 형식으로 이 컴퓨터를 들여왔다.

어쨌든 IBM 1401은 한국에서도 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컴퓨터의 도입 이후 ‘컴퓨터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각 기관 및 대학에서의 특강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로 컴퓨터를 제작한 이만영 박사와 그가 1964년에 만든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 한양대 박물관 제공

한국 최초로 컴퓨터를 제작한 이만영 박사와 그가 1964년에 만든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 ⓒ 한양대 박물관 제공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컴퓨터를 최초로 만들어낸 것은 과연 언제였을까. 놀랍게도 그것은 IBM 1401이 도입되기 5년 전인 1962년이다. 한양대 전기공학과 이만영 교수(2013년 작고)가 일일이 청계천을 돌면서 구한 부품으로 진공관을 사용한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1호기’를 제작한 것. 당시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최초의 전자계산기 완성’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듬해인 1963년에는 2호기까지 완성했으나, 그해 11월 한양대 본관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두 컴퓨터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이만영 교수는 다시 심혈을 기울여 1964년 5월 국내 최대 규모의 제3호 전자계산기를 완성했다.

이 교수가 만든 컴퓨터는 선형 및 편미분방정식 계산에 사용됐다. 하지만 이 컴퓨터는 상업화나 양산화 단계까지 가지 못했으며, 그해 이 교수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국내 컴퓨터 개발의 명맥도 끊겼다. 당시 컴퓨터가 사용될 수 있는 최적의 분야는 항공기, 레이더, 유도탄 등과 같은 군수품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은 그런 무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만한 역량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상업화되지 못하고 컴퓨터 개발 명맥 끊겨

많은 발명품의 탄생이 그렇듯 컴퓨터 역시 전쟁을 위해 만들어졌다. 공식적인 세계 최초 컴퓨터인 에니악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육군의 탄도표 작성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군산학 복합체의 산물이며, 그보다 앞선 영국의 콜로서스 1호는 독일군의 암호 해독용이었다. 일반인은 커녕 학계나 산업계에서도 컴퓨터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 상업적으로 사용된 국산화 1호 컴퓨터인 ‘세종 1호’가 등장한 것은 1973년이다. 미국 데이터제너럴(DG)의 미니컴퓨터 ‘노바 01’을 개량해서 한국 최초의 국산 디지털컴퓨터를 만든 까닭은 정치 목적 때문이었다. 당시 7․4 남북공동성명을 전후로 한 중요한 정치적 상황에서 청와대와 중앙정보부를 잇는 핫라인에 통신비밀의 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만영 교수는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대를 수료하고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콜로라도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공대 교수, 한양대 교수, 경희대 석좌교수 등을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다.

1972년 서강대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할 당시 유일한 전자공학과 여학생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 미국에서 영구 귀국해 국방과학연구소 초대 부소장, 한국전자통신 초대 사장, 삼성반도체통신 초대 사장, 한국정보보호학회 초대 회장,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재직 시 지대지유도탄 개발에 참여했으며, 한국전자통신에서는 전화 전자교환기 개발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양대 박물관에서는 국내 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한 이 교수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기 위해 3월 18일부터 12월 21일까지 ‘이만영 박사와 한국 최초의 컴퓨터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컴퓨터인 ‘아날로그 전자계산기 3호기’도 공개된다.

등록문화재 558호인 이 컴퓨터는 사용한 진공관이 610여 개이며 부속품은 총 4만 개에 이른다. 비록 고차원 수학 문제를 푸는 정도의 아날로그 컴퓨터였지만 만약 이만영 박사의 이 컴퓨터가 모두의 관심 속에 상업화 과정을 밟았다면, 한국의 IT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 이성규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6.03.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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