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과 창업] 갔다온 사람 절반이 재기 성공 … ‘죽도 캠프’에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2016.04.07 00:17 수정 2016.04.07 00:36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일 것이다.” 미국의 시인 새뮤얼 울먼(1840~1924)의 시 ‘청춘’의 한 구절이다. 지난 2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 졸업식 축사에서 인용했고,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더글라스 맥아더(1880~1964) 장군이 즐겨 암송했던 시로도 알려져 있다.
술·담배 금지, 매일 산행·일기쓰기
실패한 사업가들 4주간 심신다져
무료 교육…4년간 347명 다녀가
하지만 이 시가 경상남도 통영 인근의 외딴 섬 죽도에서 읊어진다면 그 맥락은 사뭇 다르다. 이곳에서는 연 4회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의 ‘힐링 캠프’가 열린다. 실패한 사업가들이 재기를 다짐하며 마인드컨트롤과 자아성찰을 하는 캠프다.
지난 1일 경남 죽도에서는 평균 연령 50세의 중년들이 모인 졸업식이 열렸다. 지난달 6일~이달 1일 진행된 4주간의 합숙 교육을 마친 재기중소기업개발원 17기 수료생들이다. 매일 2시간 산행은 기본이고 저녁 식사가 없는 절식(1일 2식), 술·담배 금지, 매일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 등을 진행했다. 수료식이 열리는 이날에도 17기 20명은 새벽 4시50분에 일어나 ‘청춘’을 암송하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이 캠프는 설립자이자 부산의 기업가인 전원태(68) MS코프 회장의 사재와 정부 지원금 등으로 운영돼 참여자들에겐 전액 무료다. 외부 심리·경영·중소기업 전문가 20여명이 재능기부 강의로 참여한다. 캠프를 수료하면 각종 재창업자 지원 사업 심사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평가를 받는다. 이날 수료식에 참석한 성녹영 중소기업청 재도전성장과장은 “힐링 캠프 수료자들은 열의와 집요함으로 재기를 잘 하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재창업자들끼리 정보공유를 하는 것은 물론, 수료자 커뮤니티인 ‘허밀청원(虛密淸圓·비워야 맑고 둥근 마음을 채운다)’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창업 팁을 주고 받는다.
지난 2011년 8월 창립한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죽도 캠프에는 그동안 347명의 수료생이 거쳐갔다. 수료생 중 약 53%가 창업에 성공했다. 이번 수료식에도 재기에 성공한 선배 20여 명도 참석했다. 실패한 후배 사업가들에게 귀감이 되겠다는 수료 선배들의 뜻이 전통이 됐다. 장상식(59)씨도 그 중 하나다. 지난 2013년 5기 캠프를 수료한 장씨는 경남 김해에서 월 매출 3000만~4000만원을 내는 고춧가루 공장 ‘농민촌’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5년 운영하던 주물공장을 폐업한 뒤 주차장 관리인 등을 전전하다가 지난 2012년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힘든 주물일을 할 직원이 없어서 불법체류 외국인을 썼던 것이 패착이었다. 한국인 직원들과의 갈등은 물론, 법무부에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을 거쳐간 뒤 창업에 성공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재도약지원자금’ 융자 1억원을 받고,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재창업 아이디어 신제품 개발사업’ 지원금 4900만원(자부담 2100만원 별도 부담)을 받아 ‘멍게 고추장’을 개발했다. 장씨의 성공에는 부인의 도움도 한 몫 했다. 그의 부인은 장씨가 방황하던 2010년대 초 고춧가루 제조 기술을 연수받아 기술적인 기반을 만들었다. 정영철(64)씨도 장씨의 5기 동기생이다. 그는 아직 재기까지는 못했다. 창업 후 사업 시작 단계다.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한 보일러 열 분배기를 개발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입소한 교육생의 상당수는 “자신감에만 빠져 시장 트렌드를 냉정하게 읽지 못했다”는 말을 달고 산다. 고정경(56·여)씨 역시 그렇다. 고씨는 한때 40억 매출을 올리던 석면제거 업체 대표였다. 하지만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와 경쟁 업체의 난립으로 결국 폐업했다. 그는 “지인의 권유로 석면 제거 사업을 시작했는데, 금세 성공을 하니 안이하게 사업을 했다”고 후회했다. 지금은 메밀차와 메밀초콜릿을 새 아이템으로 잡아 재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윤덕중(60)씨도 손잡이에 있는 튜브를 짜면 염색약이 나오는 빗을 개발했지만 가격 경쟁에서 밀려 실패했다. 지금은 마스크팩처럼 붙이면 턱선을 당겨주는 제품을 개발, 중기청 재창업지원금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 캠프의 멘토를 맡고 있는 김선호 동의대 산학협력단장(메카트로니스공학과 교수)는 실패 사업가의 주요 특성으로 ▶끊임없는 변명 ▶타인에 대한 분노 ▶과거 성공 집착 ▶한 아이템 고수 ▶철 지난 아이디어 등 5가지를 꼽았다.
재기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할 수 있다는 마음, 철저한 시장분석
"안되는 사업 과감히 끊는 것도 중요"
반면 재기에 성공하는 ‘리스타트업(re-startup·재창업회사)’은 ▶마음을 비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철저한 시장분석 등의 공통점이 있었다. 김 단장은 “사업을 하면 부침이 있고, 누구나 작거나 큰 실패를 하기 마련”이라며 “안 되는 사업 아이템을 붙들고 있기보다는, 과감히 끊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스마트 실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원태 회장은 “대박을 내는 사업가를 기대하기 보다는 가정을 꾸리고 건전하게 사회에 복귀하는 가장들을 육성한다”면서 “수료생 20명 중 2~3명만 꾸준히 사업을 하더라도 가족과 친지 등 20~30명이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캠프(18기)는 다음달 22일 시작된다.
죽도(통영)=이현택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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