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매력에 빠진 로봇개발자
바퀴의 특성을 이용한 수색 로봇 각광
그러나 로봇 디자이너들에게는 흥미로운 존재다. 흥미를 넘어 감탄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대상이다. 이런 특성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 바로 바퀴의 장점들을 이용해 로봇개발을 시도하는 과학자들이다.
좁은 공간을 통과할 때 키를 4분의 1로 압축할 수 있는 특성을 이용해 로봇을 양산하면 수색과 구조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손바닥 크기의 로봇은 바퀴벌레처럼 잽싸게 달리고 키를 절반으로 줄여 좁은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다. 최근 이 징그러운 곤충을 이용한 로봇 개발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진도 ‘점프 바퀴 로봇’ 만들어 화제
지난 6월 한국 공학자들이 만든 바퀴벌레 로봇이 화제가 되었다. 미국 온라인매체 매셔블은 ‘점프 로봇 바퀴벌레(Robot Jumping Roach)’란 제목이 달린 영상을 소개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이 영상 속에는 진짜 바퀴벌레처럼 점프해서 선반을 오르는 로봇의 모습이 담겨 있다.
책상위로 올라간 이 로봇은 점프를 한 뒤에 에너지 충전을 위한 시간을 갖고 스스로 뒤집힌 몸을 바로 잡고 날개를 편 뒤 위로 날아오른다. 이 로봇은 서울대학교 바이오로봇 공학연구소와 UC버클리대의 생체모방연구소가 공동으로 제작했다. 연구팀이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이 작은 로봇은 단지 59.4그램으로 5피트 높이를 이동할 수 있다.
UC버클리의 생체역학 전문가인 폴리페달(PolyPEDAL) 연구실의 로버트 풀(Robert Full) 교수와 하버드대학 로봇공학 연구자 카우시크 자야람(Kaushik Jayaram) 교수도 바퀴벌레의 매력에 푹 빠진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바퀴벌레의 장점을 이용해 새로운 ‘크램(CRAM: Compressible Robot with Articulated Mechanisms)’이라는 로봇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해 대량생산을 앞두고 있다. 크램은 관절 기구를 갖춘 압축 가능한 로봇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품 몇 개를 조합한 골격과 부드러운 소재로 이뤄진 껍질을 평평하게 변형될 수 있도록 해 좁은 틈새를 통과할 수 있다. 이 로봇은 바퀴벌레의 특징적인 움직임이나 충격을 견디는 방식 등에 영감을 얻어 잔해 사이나 좁은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껍질은 주먹 만한 크기이며 소재는 두꺼운 종이와 폴리에스테르로 만들었다.
“바퀴는 못 가는 곳이 없다”는 점에 착안
풀 교수는 “바퀴벌레가 못 가는 곳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그 의문을 풀고 싶었다.”고 연구에 집착하게 된 동기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천장 높이를 2.5㎜까지 낮출 수 있는 이동식 아크릴 터널을 만들어 바퀴벌레가 터널을 빠져 나오는 모습을 고속카메라로 촬영했다.
“바퀴벌레의 특성 중 하나는 몸 크기를 절반으로 압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 상태의 키를 1센트 동전 2개를 쌓은 높이와 비슷하게 4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아주 작은 틈새를 통과할 땐 몸무게의 300배에 이르는 압력을 받고도 견뎌낸다.”
별도의 테스트에서 그들은 바퀴벌레에 무게를 계속 늘리며 압력을 가했다. 몸무게의 약 900배에 이르는 압력에서 그들은 완전히 납작해졌다가 곧바로 원상을 회복했다. 외골격의 단단한 플레이트 사이에 유연한 접철(hinges)이 있기 때문이다.
풀과 자야람 교수는 바퀴벌레의 이동 속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서 있을 때는 다리로 움직인다. 그러나 정상 키의 절반으로 압축되면 다리가 몸에 완전히 붙어 다리 측면으로 몸을 밀어 1초에 몸 길이의 20배를 달릴 수 있다. 만약 인간의 크기라면 1시간에 100㎞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용은 75 달러, 대량 생산의 길 열려
연구자들은 바퀴벌레의 그런 특성을 모방하는 또 다른 로봇을 제작했다. 손바닥 크기로 다리가 6개인 이 로봇은 배터리, 전자 칩과 전선, 판지, 폴리에스테르 판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졌다.
똑바로 섰을 땐 다리로 움직인다. 키가 약 7.5㎝이며 좁은 곳을 통과할 땐 그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키를 줄였을 때는 다리가 몸에 붙어 바퀴벌레처럼 측면을 이용해 이동한다.
현재로선 이 실험실 로봇은 바퀴벌레의 몸 움직임을 연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풀 교수는 이 모델의 활용도가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만드는 데 든 비용이 75달러였다. 대량생산된다면 비용이 훨씬 낮아질 것이다.
풀 교수는 “이 로봇은 수색 구조를 위한 저비용 로봇으로 활용될 수 있다. 토네이도, 지진, 폭발사고 후 이런 로봇을 대량으로 사용해 수색하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재난현장에서 활용되는 로봇은 폭탄 처리용처럼 부피가 크고 무거우며 비쌀 뿐 아니라 잔해의 틈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반면 바퀴벌레를 모방한 로봇은 몸을 변형시킬 수 있으면서도 단단해 수색과 구조 활동에 이상적이다.”
그러나 아직은 개발 단계다. 논문의 주 저자인 자야람 교수는 바퀴벌레 모방 로봇이 실제 상황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센서와 제어장치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그와 풀 교수는 앞으로 나올 모델이 몸을 회전시키고 높은 곳을 올라가고 뛰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공룡보다 이른 3억년 전에 출현, 진화를 거듭
흉측한 바퀴벌레가 우리의 생명을 구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바퀴벌레의 구조 속에 자연이 만든 디자인의 신비가 숨겨져 있다. 이렇게 보면 삼라만상의 모든 미물에게서도 배울 것이 많다.
바퀴벌레는 공룡보다도 훨씬 이른 3억 년 전에 나타났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면서 진화한 곤충이다. 말하자면 엄청난 ‘선배’ 생물체다. 바퀴벌레의 생존 비밀을 밝히고 모방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했듯이 자연은 그야말로 우리의 스승이다.
- 김형근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6.07.1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