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이 만든 세계 1등 제품이 5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중국에 1위 자리를 대거 내줬기 때문이다. 또 힘겹게 1등 지위를 지키고 있는 제품 중 25%는 중국이 턱밑까지 추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12일 발표한 ‘세계 수출시장 1위 품목으로 본 우리 수출의 경쟁력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2015년 전체 5579개의 수출품목 중 1762개 품목(31.6%)에서 세계 수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2014년과 비교하면 세계 1위 품목이 128개나 늘었다.
중국이 세계 1위 품목 최다 보유국 자리를 굳히는 동안 한국은 5년째 게걸음이다. 2010년 71개의 수출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을 보유했던 한국은 2015년 가짓수가 68개로 오히려 줄었다. 순위도 6년째 14~15위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한 마디로 중국 때문이다. 세계 수출시장에서 우위에 있던 한국 제품이 중국과 경쟁하다가 조금씩 밀려났다. 실제로 2014년까지만 해도 세계 1등이었다가 2위로 추락한 한국 제품(17개) 중 47%(8개)가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기타 합성스테이플섬유(13.9%)가 중국(35.5%)에 따라잡혔고, 수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세계 1등이던 눈다랑어(14.2%)도 중국(53%)에 뒤처졌다. 1만kVA를 초과하는 유입식 변압기(15.3%) 같은 기계류나 차량용 고무제품 이너튜브(34.5%) 등 부품류도 미세한 차이로 중국에 역전을 허용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이 세계 1등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68개 중 17개 품목에서 중국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로 치고 올라왔다. 특히 철강제품인 저장조탱크통(용적 300L 초과)이나 합성스테이플섬유 직물(아크릴 함유량 85% 이상)의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 차이가 미미해 사실상 ‘공동 1등’이나 마찬가지다. 김건우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원은 “한국 세계 1등 제품은 화학제품 시장에서 미국과, 철강제품 시장에서 일본·독일과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는 거의 전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한국도 새로운 시장에 진출해 세계 1등 제품을 다수 배출했다. 기술 선진국인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주름잡던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입해 힘겹게 이들을 따라잡았다. 독일이 1등이었던 선박추진용엔진이나 콘크리트펌프, 고무배합제로 쓰이는 폴리이소부틸렌도 지금은 한국이 1등이다. 독일이 선점했던 평판압연제품(두께 1mm 초과) 시장의 경우 이제 한국(36.8%)과 독일(9.3%)의 시장점유율이 꽤 차이가 난다.
문제는 이렇게 한국이 신규로 1등 제품을 발굴하는 동안 중국이 기존 1등 시장을 속속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71개 세계 1등 제품을 보유하고 있던 한국이 그간 매년 십여 개의 세계 1등 제품을 발굴했음에도 1등 제품 총계로 보면 오히려 개수가 줄어든 배경이다.
한국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해석도 나온다. 2013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신흥국 1등 제품 수는 2015년 52.1%까지 늘었다. 하지만 분류상 신흥국에 속하는 한국은 세계 1등 제품이 줄었다. 2013년 5596억 달러(약 643조원)였던 한국의 세계 1등 제품 수출액은 2015년 5269억 달러(약 606조원)로 감소했다.
최용민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수출 품목을 다변화해 중국과 경쟁하는 품목을 줄이는 게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세계시장에서 1등은 아니더라도 2~10등 제품을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2011년 1193개였던 세계 2~10등 제품은 2015년 1346개로 늘었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직접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 중국 소비재 시장을 집중공략하면 1위 제품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문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