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과 경제

[중앙일보] 기술수준, 중국과 한국의 기술격차, 중국의 수출전망

FERRIMAN 2017. 3. 30. 11:28

철강 0.5년, 로봇 0.7년 격차 … 한국 아차하면 중국이 추월

입력 2017-03-23 00:01:00
수정 2017-03-23 04:27:03
 
중국 AI ‘줴이’ 쇼크
디스플레이 업계는 최근 중국의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 때문에 술렁이고 있다. "중국 샤오미가 하반기 출시하는 스마트폰 ‘홍미프로’에 BOE의 올레드 패널을 탑재한다" "애플이 2018년 신제품에 BOE의 올레드를 장착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지면서다. 올레드 패널은 휘거나 접을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몸값 높은 부품이다. 지금은 삼성디스플레이가 99% 장악하고 있는 이 시장에서 막 발을 들인 BOE가 무서운 속도로 영업망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올레드뿐만 아니다. BOE는 올 1월 기준 대형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점유율 22.3%를 차지하며 절대 강자였던 LG디스플레이를 밀어내고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물량 공세와 가격 경쟁 때문에 한국 업체들은 중국과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선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엄청난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한 추격으로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무섭게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료: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2015년 기준)

자료: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2015년 기준)

   산업통상자원부·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지난해 발간한 ‘2015 산업기술수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더 이상 "중국이 추격해 온다"고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 한·중 기술력은 이미 대부분의 산업에서 비슷한 수준이며 경쟁력을 따지면 한국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산업은 얼마 되지 않는다. 몇몇 산업에서는 "어떻게 중국을 추격할까" 고민해야 할 수준이다.

이 보고서는 2015년 산·학·연 전문가 2만6000여 명을 조사해 완성됐다. 조사 대상이 된 24개 산업 중 17개 산업의 한·중 간 기술 격차는 1년 안으로 좁혀졌다. 철강(0.5년), 임베디드소프트웨어(0.5년), 바이오(0.7년), 로봇(0.7년), 의료기기(0.8년) 등은 잠시만 한눈팔아도 추월될 상황에 놓였다. 반도체 공정(1.2년)이나 디스플레이(1.2년), 조선해양(1.1년) 등 나머지 7개 산업도 격차가 벌어져 봐야 1.3년을 채 넘기지 않는다. 기술 격차란 선발 국가의 기술 수준이 멈춰섰다고 가정할 때 후발 국가가 이를 따라잡는 데 걸리는 기간이다.

이런 추격의 결과로 세계 곳곳에서 중국 기업은 한국 기업을 밀어내고 있다. 철강 산업이 대표적이다. 법정관리 중인 STX조선해양은 지난해 말부터 선박용 철판(후판)을 중국산으로 쓰기 시작했다. 국내 철강사 세아제강은 올해 말까지 대형 쇠파이프의 원료가 되는 도금강판의 15%를 중국산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모두 원래는 국산 제품이 버티던 자리였다. 최근 조선 업계가 겪은 혹독한 구조조정의 배경에도 중국이 있었다. 우리 중소형 조선사의 텃밭이었던 벌크선·탱커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에 완전히 넘어갔다.

중국, 작년 R&D 투자액 전년보다 25% 늘어

자료:산업연구원

자료:산업연구원

무서운 추격은 돈과 시장의 힘에서 나왔다. 핵심 산업에 속한 업체들은 정부의 대규모 지원으로 적자 걱정 없이 기술 경쟁력을 키워왔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유럽연합 산업 연구개발(R&D) 투자 스코어보드 2016’에 따르면 전 세계 R&D 투자 상위 기업의 전체 투자액은 6960억 유로(853조원)였는데, 이 중 중국은 전년 대비 24.7% 늘어난 498억 유로(61조원)에 달했다. 한국(254억 유로·31조원)과 일본(999억 유로·122조원)은 각각 3.7%, 3.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또 13억 인구의 내수시장은 품질이 세계 수준으로 올라설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있는 텃밭이 됐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 제조 2025’ 정책에는 이런 성장 전략에 대한 중국의 자부심과 자신감이 담겨 있다. "2025년까지 제조업 기술력을 독일·일본 수준으로 키우고 2035년에는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그동안은 중국의 부상이 한국 부품산업 등에 적잖은 도움을 주기도 해 윈윈 관계였다"며 "앞으론 우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혁신하고 있는 중국 기업에 우리 기업이 상당 부분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줴이’ 딥러닝 할 때 ‘돌바람’ 개발자는 생계용 SW 개발

입력 2017-03-23 00:01:01
수정 2017-03-23 17:55:32
 
중국 AI ‘줴이’ 쇼크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컴퓨터바둑대회. 한국 바둑 인공지능(AI) ‘돌바람’으로 참가한 임재범(46) ‘돌바람네트웍스’ 대표는 외로웠다. "줴이를 내세운 텐센트 쪽에서는 취재진까지 대동해 15명이 참가했습니다. 1인 기업을 하고 있는 저는 당연히 혼자 대회에 나갔지요." 그는 8강에서 줴이와 맞붙어 탈락했다. 2015년엔 준우승까지 했던 돌바람이지만, 임 대표는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알파고 이후에 바둑 AI들도 딥러닝 기술을 빠른 속도로 탑재하기 시작했어요. 저도 이 추세를 따라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난해엔 돌바람 개발 일을 거의 못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교육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느라고요. 다른 나라 AI들이 많이 쫓아왔다는 게 한눈에 보이더군요."

그는 지난해 11월, 생업이던 교육 소프트웨어 사업을 접었다. 돌바람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알파고 신드롬이 온 나라를 들썩였는데, 왜 바둑 AI를 개발하는 그를 지원하는 이가 하나도 없을까. 그는 "정부 관계자를 만나본 적이 있지만 ‘민간 기업을 지원할 순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자료:한국무역협회·유럽연합

자료:한국무역협회·유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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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세계적 수준의 성취를 이뤘지만 점차 기술력이 뒤처지고 있는 바둑 AI 돌바람은 한국 AI 산업의 현주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발 인력도 투자도 턱없이 적고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느리다. 문제는 미래 산업 전반에서 이런 약세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한국은 AI뿐 아니라 자율주행 기술, 친환경에너지 등에서도 세계적 기술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또 다른 보고서인 산업연구원의 ‘한·중 산업 경쟁력 비교 연구’는 5년 뒤 대부분의 산업이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잃을 거라고 전망한다. 이 보고서는 이미 경쟁력이 뒤처진 전통 산업 분야를 이렇게 표현했다. "보강·허베이강철·우한강철 등 중국 10대 철강회사가 내놓는 제품은 한국 제품과 비교해도 품질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싼 가격을 고려하면 중국 제품이 더 경쟁력 있다. 가전 시장도 마찬가지다. 선풍기와 통돌이 세탁기, 소형 냉장고에선 한국의 제품 경쟁력이 중국에 뒤처진다. 5년 뒤에는 고화질 TV와 에어컨, 고급 냉장고에서도 중국 상품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주력 산업인 스마트폰과 자동차도 5년 뒤엔 경쟁우위를 잃을 걸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금 한국은 중저가형 스마트폰이나 버스·트럭 등 상용차 시장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5년 후에는 고급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 자동차 시장에서까지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는 화웨이·오포 같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밀려 아시아·태평양 지역 스마트폰 시장에서 5위를 기록했다. LG전자는 중국 기업에 밀려 세계 스마트폰 시장 통계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 경쟁력은 생산 비용과 입지 조건, 시장 규모, 자본 투자 능력 등을 고려해 분석해야 하는데 이 모든 측면에서 한국이 중국에 열세"라며 "그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제조업들도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쟁력이 엇비슷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자동차도 5년 뒤엔 중국이 추월"

    자료:한국무역협회·유럽연합

    자료:한국무역협회·유럽연합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정보통신기술(ICT)에선 한·중 기술 격차가 더욱 좁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2015년 ICT 기술수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유·무선 네트워크(0.2년), 클라우드 기술(0.3년), 정보 보안 기술(0.6년) 등은 한국과 거의 격차가 없다시피 했다. BYD 등을 앞세운 전기차 산업,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태양광 등 친환경에너지 산업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규모가 자랐다.

    한편에선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으로 한국 제품을 거부하는 배경에 이런 산업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롯데를 포함해 한국 대부분의 기업이 중국 시장에 내놓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없으면 국내에서 대체하면 그만"이라고 평가한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가 대규모 불매운동을 벌이면서도 삼성전자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산업연구부 연구위원은 "메모리반도체처럼 압도적 기술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 대해선 큰소리를 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신성장 산업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되 차별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흥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술개발 과장은 "이달 초부터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산업을 선별해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정책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