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역사의 자동차 산업과 160년 역사의 석유산업이 10여 년 후 붕괴(collapse)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싱크탱크 리싱크엑스가 15일 발간한 ‘2020~2030년 운송수단을 재고하다’ 보고서에서다. 보고서의 결론은 ‘내연기관 자동차가 2020년을 정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2030년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미국 유명 시장조사 전문기관 IHS 오토모티브 소속 전문가들도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전기·전자공학 분야 가장 유력한 학술지를 발간하는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 운영 공학 매체(IEEE 스펙트럼)도 이 보고서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2030년 경이면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전기자동차가 전체 자동차 판매 대수의 60%를 점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행 거리를 기준으로는 도로에 다니는 자동차의 95%는 자율주행 전기차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크게 달라지는 기점은 2021년이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토니 세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페이스북·스마트폰 보급 등의 예에서 보면, 기술 변화가 특정 시점을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시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일상에 확산한다"며 자율주행차의 경우 이 시점을 2021년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자동차기술학회(SAE)가 규정한 ‘레벨5(Level 5)급 자율주행차’ 구현이 가능한 시점이 2021년이기 때문이다. 레벨5급 자율주행차란 주행 시 운전자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100%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의 자율주행차를 뜻한다.
이 시점이 되면 보고서는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사라진다고 봤다. 차량을 소유하는 비용과 비교할 때, 카셰어링(carsharing)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금융 비용을 90% 줄일 수 있고 ▶차량 유지비용을 80% 절약하고 ▶자동차보험료를 90% 덜 내고 ▶연료비를 70%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가 개막하면 현재 자동차 산업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보고서는 2억4700만대(2020년 기준)의 미국 자동차 등록대수가 10년 만에 4400만대(2030년)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신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카셰어링 업체가 쥔다. 4400만대의 차량이 효율적으로 거의 24시간 움직이면서, 차량 1대의 연간 이동거리는 현재 1만6000㎞~3만2000㎞에서 16만㎞로 최대 10배 증가한다. 보고서는 이때가 되면 자동차 제조사들이 카셰어링업체에 차량을 납품하는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예측도 곁들였다.
이렇게 되면 유관 산업에도 파장이 크다. 직접적으로는 석유 수요가 2020년의 70% 수준으로 줄어들어 석유산업이 타격을 입는다. 부동산 가격과 공간 활용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브레드 탬플턴 미국 싱귤레러티대학 교수는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땅은 도심재생에 활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 관계자는 보고서에서 "손해보험사는 그들의 자동차보험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사고가 크게 줄어들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종합적으로 이런 변화는 미국 경제 발전에 긍정적이라고 본다. 개인 자동차 보유·운송 비용이 줄어들면 가구당 가처분소득이 5600달러(628만원) 늘어나고, 내수 소비 증가로 이어져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연간 1조달러(1121조원) 상승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 보고서 공동저자인 제임스 아르빕 리싱크엑스 공동설립자는 "보고서의 결론은 2020년대 초기 완전자율주행 시대가 열린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며 "2021년 이런 시대가 열리지 않는다면 보고서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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