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세라믹,그리고 Ferrite

[중앙일보] 배터리 이야기

FERRIMAN 2017. 12. 26. 14:13

[분수대] 배터리 게이트

입력 2017-12-26 01:59:15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배터리의 역사는 2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1932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남서쪽 호야트럽퍼 유적에서 발굴된 항아리가 역사상 최초의 배터리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150년께 만들어진 높이 14㎝, 지름 8㎝짜리 이 항아리엔 전극 역할을 하는 구리판과 철 막대, 전해질 역할을 하는 포도 식초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대적 배터리는 1800년 이탈리아 물리학자 볼타가 개발하고 프랑스 화학자 르클라셰, 독일 과학자 카를 가스너 등이 발전시켰다. 구리와 아연, 아연과 이산화망간, 니켈과 철 같은 다양한 금속들이 전극으로 사용됐지만 한 번 쓰면 버려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1차 전지의 한계를 넘어 충전이 가능해진 전지가 2차 전지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에 사용하는 납 축전지다. 효율적이고 값이 싸지만 무겁고 황산을 담고 있어 위험한 게 단점이다. 그래서 1990년대 등장한 휴대전화는 새로운 2차 전지를 필요로 했다. 초기엔 니켈-카드뮴 전지를 많이 썼지만 완전히 방전시키지 않으면 제대로 충전이 안 되는 ‘메모리 효과’ 때문에 불편이 컸다. 일본 소니가 91년 상용화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런 불편을 없앴다. 부피가 작고 가벼운 데다 강력해 모바일 시대를 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만큼 화재나 폭발 위험이 컸다. 2010년 두바이 공항에서 UPS 소속 보잉 747기가 화물칸에 탑재한 리튬이온 배터리 발화로 추락하기도 했다.

현재 배터리 기술을 주도하는 건 휴대전화 제조사들이다. 휴대전화의 성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다 강하면서도 안전한 배터리를 개발하려 애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 7’ 사태도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다 사달이 난 경우다. 좁은 공간에 고용량 배터리를 집어넣었다가 출시 뒤 화재·폭발 사고가 잇따라 결국 단종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이를 고소해 했을 애플이 이번엔 거꾸로 배터리 게이트에 빠졌다. 일부러 구형 아이폰의 속도를 늦추는 운영체제(OS)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서다. "추운 곳이나 충전량이 적을 때 갑자기 기기가 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며 배터리 탓을 하지만 새 스마트폰을 팔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혁신의 상징이던 애플이 꼼수의 상징이 될지 모르겠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