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 ⑧ 인공지능(AI)
검은 바탕 한가운데에 바둑판이 놓여 있다. 뇌를 자극한다는 BDSS란 뮤지션의 음악이 흐른다. 흰돌이 놓이고 3~4초, 검은돌이 망설임 없이 착수(着手)한다. 길어야 6~7초다. 대국시간은 단 24분. 지난 10월 공개된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 제로와 알파고 마스터의 대국 장면이다. 인간의 대국 시간(2~3시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의 최신 버전, 알파고 마스터는 세계 바둑의 정상인 중국의 커제 9단을 상대로 3전 전승을 기록했던 알파고 최근 버전이다.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 마스터와 100번을 싸워 89번을 이겼다. 말 그대로 압승(壓勝).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예측을 불허하듯 낯설고도 현란한 묘수(妙手)들을 쏟아냈다. 그간 익숙한 기풍과 약간의 악수(惡手)로 사람 냄새를 풍기던 기존 알파고와는 달랐다. 유튜브로 대국 영상을 보던 해외 네티즌들은 "터미네이터 대 터미네이터2였다" "신이여, 당신인가(God, is that you?)" 등의 반응을 남겼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구글 딥마인드의 수퍼컴퓨터 알파고 제로가 40일 만에 3000년 역사의 인간 지식을 익히다’는 제목으로 대국을 보도했다. 같은 달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딥마인드가 발표한 ‘인간 지식 없이 바둑 통달하기’란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인공지능이 현란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알파고는 21세기 인공지능 발전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처에 따르면 알파고 제로는 바둑을 익힌 지 40일 만에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100전 100승을 기록했다. 비결은 인간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해 원리를 체득한 뒤 문제 해결 알고리즘을 만드는 비(非)지도학습. 바둑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독학에 나섰고 약 2900만 판의 실전 경험 끝에 바둑의 정수를 짚어냈다. 알파고가 수개월간 유명 바둑기사들의 기보를 달달 외우거나 직접 ‘과외(대국)’까지 받는 지도학습 과정을 거친 데서 진일보했다. 제로(Zero)라는 이름 그대로 무(無)에서 시작해 유(有)를 만들었다.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개리 코트렐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알파고 제로는 최근 수십 년간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놀라웠던 성과"라고 단언했다. 과거 인공지능이 인간의 예측 범위 안에서만 발전했다면 앞으로는 인간 지식의 한계를 넘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획기적 성과라는 것이다. 학계는 알파고 제로의 학습법이 바둑을 넘어 빅데이터 확보가 어려운 다양한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는 데 주목한다. 지금껏 인공지능이 학습할 데이터, 즉 인간 지식 확보가 어려워 인공지능 활용이 제한적이던 분야도 데이터 의존 없이 개척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한 신약 개발과 같은 난제에 이런 알고리즘을 적용해 도전해 볼 수 있다. 암을 유발하는 단백질 3차 구조의 비밀을 풀고 신소재를 설계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기대돼서다. 실제로 구글은 인공지능을 노화 연구와 난치병 진단·치료에 활용해 인간 수명을 500살까지 연장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IBM과 마이크로소프트, 일본 소프트뱅크 같은 글로벌 프런티어들이 자율주행자동차나 로봇 등 다방면에서 시도 중인 인공지능 혁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알파고 제로의 사례에서 나타났듯 학계와 산업계는 인공지능 학습법 개선을 난제 극복의 실마리로 보고 초점을 두고 있다. 인공지능의 비지도학습을 연구하는 임재환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인간은 활발한 상호작용과 관찰·질문을 통해 평생에 걸쳐 직접 진리를 탐구해 가면서 진화했다"며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학습해야 지적 수준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발전 속도에 일각에선 인공지능이 약 30년 안에 인류를 위협하는 과학소설(SF) 영화 ‘아이, 로봇’ 속 로봇처럼 진화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인공지능은 북한보다 큰 위협" "안전한 인공지능을 만들 확률은 5~10%뿐"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만든 비영리 연구단체 오픈인공지능의 필립 아이솔라 연구원은 "인공지능은 매년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했다.
반대로 영화 ‘아이언 맨’처럼 인간이 뇌를 인공지능과 결합해 지금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닌 증강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레이 커즈와일과 같은 미래학자는 2030년께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2045년께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 총합을 넘어선다는 ‘특이점’ 예측으로 화제가 됐다.
석학들은 이보다 다소 늦어도 35~50년 안엔 특이점이 올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코트렐 교수는 "지금의 발전 속도로 봤을 때 50년 후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능가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며 "100년 후엔 100%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공신경망 연구 대가인 크리스토프 폰 데어 말스버그 독일 프랑크푸르트 고등연구소(FIAS) 교수도 지난달 한국에서 기자와 만나 "기술적 장벽을 뚫는 데 5년, 나머지 문제 해결에 30년, 총 35년 후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똑똑해질 것"이라며 "결국 인간처럼 스스로의 의지도 갖게 될 텐데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악한 면모를 닮지 못하도록 가르치려는 국제적 합의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