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인공지능, 반도체

[중앙일보] 자율주행자동차

FERRIMAN 2017. 12. 28. 17:54

[인사이트] 15명 탄 버스냐 행인 2명이냐···2년 뒤 '로보 택시' 선택은

입력 2017-12-28 01:11:25
수정 2017-12-28 15:41:00
 
 
[인사이트] 15명 탄 버스냐, 행인 2명이냐 … 자율주행차 ‘트롤리 딜레마’
지난달 30일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투자자 설명회를 열었다.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나 투자자가 몰려 있는 뉴욕이 아닌 이곳을 택한 이유는 자율주행차가 이날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댄 애먼 GM 사장은 "2019년 미국 내 몇몇 도시에서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로보 택시(robo-taxi)’를 출시해 차량 공유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자동차 제조업체 가운데 구체적인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 계획을 발표한 것은 GM이 처음이다.

웨이모의 자율주행차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주행 시험장 안에서 달리고 있다. 지난달 웨이모는 운전석을 비운 자율주행 시험에 성공했다(위 사진). [애트워터 AP=연합뉴스]

웨이모의 자율주행차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주행 시험장 안에서 달리고 있다. 지난달 웨이모는 운전석을 비운 자율주행 시험에 성공했다(위 사진). [애트워터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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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 택시는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차량 공유 서비스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차가 상용화하면 소유보다는 로보 택시를 통한 공유 형태가 보편화될 것으로 본다. 2019년은 자율주행차가 일상으로 들어오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차량 공유업체 우버도 이즈음부터 자율주행차를 서비스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미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볼보로부터 차량 2만4000대를 사들여 우버의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할 계획을 짰다.

구글에서 분사한 자율주행차 개발 스타트업 웨이모는 지난달 운전석을 비운 도로 주행 시험을 통과했다. 도요타자동차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시작한다. 최근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2021년 자율주행차가 영국 도로 위를 달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다임러의 자율주행 콘셉트카(위). 모스크바에서 시험 주행한 자율주행 택시. [AP·타스=연합뉴스]

지난 9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선보인 다임러의 자율주행 콘셉트카(위). 모스크바에서 시험 주행한 자율주행 택시. [AP·타스=연합뉴스]

포드는 2021년 자율주행차를 출시하고, 르노닛산은 2022년 자율주행차를 이용한 차량 공유 서비스를 출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이면 세계 곳곳에서 자율주행차가 운행될 전망이다. 애먼 사장은 "현재 속도로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 2019년까지 자율주행차 상용화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도 만만찮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동차 회사 소속 자율주행 기술 전문가들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모든 상황에서 운행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무인자동차는 수십 년 후에나 실현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전했다. GM 자율주행차에 시범 탑승해 본 한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10점 만점에 5.5점 수준"이라며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가 출시돼 공용 도로 위를 달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기술적 완성도다. 현재 기술로는 눈·비가 세차게 내리거나 주위가 어두우면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하는 레이저 센서가 사물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다. 뉴욕타임스는 "구글이 캘리포니아주에 제출한 도로 주행 시험 자료에 따르면 눈·비 등 기상 여건이 자율주행 시스템 실패의 주요 요인"이라고 전했다.

물웅덩이와 싱크홀을 구분하지 못해 지나가야 할 때와 서야 할 때를 혼동하기도 한다. 고가도로 아래 그림자를 자율주행차가 대형 장애물로 오인해 급정거하기도 한다. 지도와 실제 위치가 다르거나 3차원(3D) 초정밀 지도로 표현되지 않은 곳, 공사 현장 및 우회도로, 신호 또는 통행 방식이 변경된 경우에도 자율주행차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은 6단계로 나뉜다. 자동차엔지니어협회(SAE)는 기술이 전혀 없는 ‘레벨 0’부터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상태인 ‘레벨 5’까지로 분류한다. 현재 일부 자동차 회사들은 ‘레벨 3’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레벨 4’ 개발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레벨 3은 운전자가 주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영화를 볼 수 있고, 차량이 ‘수동 운전 전환’ 신호를 보낼 때 개입하면 된다. 레벨 4는 운전자가 운전석을 비우고 잠을 자도 되며, 극히 예외적으로 개입하는 단계다.

자동차업계의 관심은 기술 완성도에 맞춰져 있지만, 제도적·윤리적 문제까지 인식해야 자율주행차 논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는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자율주행 기술을 이끄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하게 다뤄지는 문제는 윤리적 딜레마다. USA투데이는 "사람이 운전할 때는 위험한 상황을 접하면 찰나의 순간에 판단하고 대처하지만 자율주행차는 사전에 프로그래밍한 알고리즘에 의해 행동이 결정된다"고 전했다. 자율주행차의 알고리즘은 위급한 상황에서 누구의 생명이 우선되는지를 사전에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 문제와 직결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15명이 탑승한 스쿨버스와 충돌할 위기에 있다. 인도에는 행인이 2명 서 있다. 자율주행차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스쿨버스와 충돌할 것인가, 행인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인가, 길가 전신주를 들이받을것인가. 윤리학에서 대표적인 실험으로 꼽히는 ‘트롤리(trolley) 딜레마’다. 포브스는 "이 같은 질문과 선택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자율주행차가 출시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자율주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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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초창기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서배스천 트런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자율주행차는 기본적으로 사고를 회피하도록 설계돼 있다. 하지만 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더 작은 사고를 내는 쪽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작은 사고’에 어린이나 노약자가 포함돼 있다면 상황이 달라져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지난해 다임러의 한 임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자율주행차에 탑승한 승객의 생명이 행인이나 다른 차 탑승자보다 우선될 것"이라고 말해 비판받았다. 회사는 "인용이 잘못됐다. 특정인의 생명을 다른 사람보다 우대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법"이라고 해명했다.

아짐 샤리프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들은 사고를 피할 수 없을 경우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 희생자가 자신이나 가족일 경우에는 자율주행차를 사지 않겠다는 의견이 확 늘었다. 패트릭 린 캘리포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 교수는 "자율주행차가 센서를 통해 무엇을 ‘볼까(see)’를 선택하는 단계부터 사실은 윤리적 판단에 따른 결정을 하는 것인데도 자동차 제조업체는 윤리적 선택을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자동차 회사가 출판사 지분 인수한 까닭은「 로보 택시가 도입되면 생활 전반이 달라진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차량 소유가 확 줄고, 주차난이 사라지고,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원거리 이동에 대한 부담이 줄면 부동산 시장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로보 택시 안에서 두 손과 눈이 자유로워지면 콘텐츠 분야도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영화를 보거나 신문과 책을 읽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최근 자동차 회사 르노가 경제주간지 ‘챌린지’를 발행하는 출판사 페르드리엘 그룹 지분 40%를 인수한 까닭이다. 르노는 "유럽 통근자들은 매일 2시간씩 차에서 보낸다. 자율주행차가 개발되면 이들이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다양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 ◆트롤리(trolley) 딜레마「 윤리학 분야의 대표적인 사고(思考) 실험. 통제를 잃은 카트가 5명이 묶여 있는 선로를 따라 돌진한다. 선로 전환기를 돌리면 카트가 궤적을 바꾸는데, 그곳에는 한 명이 묶여 있다. 원래 선로에 있는 5명을 죽이느냐, 선로를 전환해 한 명을 죽이느냐 중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이 윤리적 선택인가를 묻는다. 1900년대 초반부터 미국 대학에서 윤리 문제 강의에 사용됐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차 프로그램 설계의 윤리적 논의에 활용된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