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그려진 수학자의 모습
과학기술 넘나들기(54)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2001)’는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로서, 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맡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던 천재 수학자 존 내쉬(John Forbes Nash Jr.; 1928-2015)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내성적인 성격의 천재 존 내쉬는 늘 수학문제에 매달려 사는데, 그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들른 술집에서 금발 미녀를 둘러싸고 벌이는 친구들의 경쟁을 지켜보던 중 수학 이론의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이 때 내쉬가 직관으로 밝혀낸 것이 바로 게임이론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 이론으로, 그를 일약 학계의 스타로 떠오르게 하고 훗날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을 수 있게 한 탁월한 업적이다.
이후 MIT 대학의 교수로 수학을 강의하던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던 물리학과 대학원생 알리샤와 사랑에 빠져 행복한 결혼을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정신분열증으로 파멸의 늪에 빠져가고 있었다.
즉 그는 정부의 비밀요원 윌리암 파처를 만나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고, 소련의 스파이가 자신을 미행하여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아내에게까지 비밀을 지키려 하였다. 그러나 아내 알리샤의 헌신적인 사랑과 그의 초인적인 의지로 결국 정신병을 극복하고 1994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다만 영화가 실제와 약간 다른 점도 꽤 있는데, 존 내쉬는 구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가 아닌, 외계의 암호를 찾기 위하여 신문과 라디오에 매달렸다고 한다. 또한 아내 알리샤가 영화에서처럼 한 번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것은 아니고, 1963년에 한때 이혼을 했다가 그의 간청으로 몇 년 후 되돌아왔다고 한다.
존 내쉬의 대표적 업적인 내시 균형 이론은 게임 이론에 있어서, 경쟁자의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고 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 상태를 의미한다. 즉 상대방이 현재의 전략을 유지하게 되면 자신도 지금의 전략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는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인데,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등과도 관련이 있다.
그의 이론은 수학과 경제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세계의 정치, 군사, 경제 전략이나 무역 협상, 노동관계, 생물진화 이론 등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하게 원용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열풍을 몰고 온 암호화폐의 시스템이나 지향점이 과거 내쉬가 주장한 것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견해도 있는데,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으로만 알려진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의 창시자가 바로 존 내쉬 아닌가 하는 추측도 무성하다.
비범하지만 괴짜 인생을 사는 수학자를 주제로 한 또 하나의 영화로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이 있다.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성장 환경 탓에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사는 청년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참다운 스승을 만나서 인생이 변모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감동적이고 훈훈하게 그린 영화로서, 구스 반 산트 감독에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다.
보스턴의 빈민가에 사는 청년인 윌 헌팅은 명문 대학인 MIT에서 청소부로 일하지만, 교수들도 쩔쩔매는 수학 문제를 단숨에 풀어버릴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
램보 교수가 반항적인 윌 헌팅을 세상의 밝은 곳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만 이 천재 청년은 어둡고 불우한 과거로 인하여 방황하고, 램보의 친구인 심리학과 숀 교수가 윌 헌팅을 상담하면서 밀고 당기는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숀은 윌 헌팅의 내면적 아픔에 애정을 지니고 지켜보면서, 그에게 인생을 위한 현명한 태도와 지혜를 가르쳐 주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수학자를 그린 휴먼 드라마 작품으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博士の愛した數式, The Professor And His Beloved Equation; 2005)’이 있는데, 코이즈미 타카시 감독에 테라오 아키라, 후카츠 에리 주연의 일본 영화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숫자를 통해 풀이하는 수학 박사,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80분밖에 기억을 유지하지 못하는 수학 박사, 그가 10번째로 채용한 싱글맘 가정부와 그녀의 아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얘기가 전개되는데, 수식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인생을 매우 아름답게 그린 감동적인 영화이다.
몇 년 전에 개봉되었던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2014)’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암호해독기계 콜로서스(Colossus)를 발명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공헌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1912-1954)에 관한 영화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인공인 앨런 튜링 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튜링은 나중에 동성애 범죄자로 몰려 결국 비극적인 자살로 생애를 마친 바 있다.
여러 영화에서처럼 괴짜였거나 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수학자들이 물론 적지 않다.
20세기 수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방대한 업적을 남겼던 헝가리의 수학자 폴 에르되시(Paul Erdős; 1913-1996)는, 각성제 암페타민을 다량 복용하면서 하루에 4~5시간밖에 자지 않고 오래 연구를 계속한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의 천재성을 비유하면서 언급된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 1887-1920)은 인도의 채식주의자 수학자로서, 비록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직관과 독창적인 방법으로 숱한 업적을 남겨서 지금도 인도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오일러나 가우스에도 비견될만한 천재수학자 라마누잔의 극적인 인생과 그의 수학 세계에 대해 저술한 책 ‘수학이 나를 불렀다’(로버트 카니겔 저)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들이 수학자를 그저 괴짜로만 묘사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여겨지며, 수학이나 수학자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지속시킬 우려도 있을 듯하다.
- 최성우 과학평론가
- 저작권자 2018.03.3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