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교육과 정책

[사이언스타임즈] 노벨상

FERRIMAN 2018. 4. 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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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과학과 21세기 과학

노벨상 수상자 연령대로 본 차이

노벨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경계해야겠지만, 노벨상 수상이 하나의 유의미한 지표 구실을 할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과학 분야 노벨상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을 잘 살펴보면, 과거와 현재에 걸쳐 이루어진 변화로부터 여러 흥미로운 결론을 유추할 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연령대이다.

노벨상이 제도화된 지 얼마 안 된 지난 20세기 전반기에는 30, 40대의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30대 초의 젊은 나이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하이젠베르크. ⓒ Free photo

30대 초의 젊은 나이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하이젠베르크. ⓒ Free photo

즉 양자역학 정립의 공헌으로 1932년도와 1933년도 노벨물리학상을 각각 받은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와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은 당시 30세를 갓 넘긴 젊은이들이었다.

오늘날의 생명과학 시대를 연 장본인 중 하나인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1928- ) 역시 불과 25세에 DNA 이중나선 구조 발견이라는 대업적을 남겨 30대인 1962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이들 이외에도 과학교과서에 소개되는 저명 과학자들의 상당수가 40대 이하의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상당히 흥미로운 점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에서 특히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인데,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노벨화학상이나 노벨생리의학상은 물리학상에 비해 수상자의 연령대가 비교적 높아 보였다.

즉 이론과 실험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숱한 업적을 낸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 물질파 이론을 정립한 드브로이(Louis Victor Pierre Raymond de Broglie, 1892-1987), 남편과 함께 첫 번째 노벨상을 받은 퀴리부인(Marie Curie; 1867-1934) 등도 30대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버지와 함께 1915년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렌스 브래그(William Lawrence Bragg; 1890-1971)는 당시 나이 25세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로는 역대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중력파를 관측한 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소. ⓒ Free photo

일찍이 아인슈타인이 예언한 중력파를 관측한 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소. ⓒ Free photo

이들보다는 다소 늦은 연령대였지만 20세기 최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파동방정식으로 양자역학에 크게 기여한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 파울리 배타원리로 유명한 파울리(Wolfgang Ernst Pauli, 1900-1958), 중성자를 발견한 채드윅(James Chadwick; 1891-1974) 등도 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반면에 교과서에 나올만한 저명한 과학자 중에서 30대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인물로는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와 이렌 퀴리(Irène Curie; 1897-1956) 정도가 떠오른다.

더구나 이들은 원자핵과 방사선 관련 연구가 주요 업적이었으므로 물리학상을 받았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도리어 물리학상이 더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다.

20세기 전반기는 오늘날과 달리 당시는 과학의 여러 분야가 혁명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던 시기였기에 이처럼 새파랗게 젊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배출이 가능하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연령대가 크게 높아졌고, 21세기 들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물론 오늘날에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가 없지는 않지만, 그나마 스승과 함께 노벨상을 받은 경우 등에 한정되곤 한다.

2017년도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은 모두 최소 60대 후반서 80대 중반에 이르는 원로들이었다. 예전에 숱한 30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던 물리학 분야마저 마찬가지로 무척 고령층이었다.

중력파 관측 관련 업적으로 2017년도 노벨물리학을 받은 킵손. ⓒ Free photo

중력파 관측 관련 업적으로 2017년도 노벨물리학을 받은 킵손. ⓒ Free photo

즉 ‘아인슈타인이 예측한 이후 100년 만에 입증된’ 중력파의 관측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킵 손(Kip Thorne; 1940- ), 라이너 바이스(Rainer Weiss; 1932- ), 배리 배리시(Barry Barish; 1936- ) 모두 70, 80대의 원로 물리학자들이다.

레이저간섭중력파관측장치(LIGO)의 개발에 결정적 공헌을 해서 당초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이 유력시되었던 로널드 드레버(Ronald William Prest Drever; 1931-2017) 교수는 고령과 중증의 치매로 그해 3월에 세상을 떠나서 결국 노벨상을 받지 못하였다. 노벨상은 생존자에게만 수여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난 20세기에 비해 금세기 들어서 갈수록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과학의 성격과 내용이 상당히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근래에도 물론 젊은 나이에 업적을 내는 과학자들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이 확실하게 입증되고 인정받는 데에는 무척 오랜 시일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언해서 2013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피터 힉스(Peter Higgs; 1929-) 교수가 이 가설을 처음 논문으로 낸 시기는 1964년이었다.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의 가동 등 실험을 통하여 이론을 입증하는 데에 무려 5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저명한 과학사학자 쿤(Thomas S. Kuhn Kuhn; 1922-1996)의 용어를 빌린다면, 이제 지난 세기와 같은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의 시대는 가고 수수께끼 풀이식의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시대가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업적을 누적적으로 쌓은 원로 과학자들이 당연히 노벨상 수상에 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면 과거와 같은 20-30대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질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에는 항상 의외성이 따르기 때문에 장래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그런 경향을 앞으로도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 최성우 과학평론가
  • 저작권자 2018.04.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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