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일 생활권’ 가능할까?
극초음속기 개발에 글로벌 기업들 속속 참여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던 김 부장은 배웅하는 아내를 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점심 식사를 미국 뉴욕에서 하고 다시 저녁에 서울로 돌아온다는 말이 지금으로서는 꿈만 같은 일이지만, 조만간 꿈이 아닌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극초음속 엔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전 세계가 1일 생활권이 될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첨단기술 전문 매체인 ‘뉴아틀라스(Newatlas)’는 그동안 가능성만 확인했던 극초음속기(hypersonic flight) 개발에 글로벌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하면서, 이들의 참여로 전 세계가 1일 생활권이 될 날이 의외로 빨리 올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든지 4시간 안에 도착 가능
글로벌 기업들이 극초음속기 개발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의 일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굴지의 방위산업체인 BAE시스템즈社가 차세대 항공기 엔진을 개발하고 있는 리액션엔진스(Reaction Engines)社의 주식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보잉이나 록히드마틴 같은 글로벌 방위산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BAE시스템스社가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조그만 규모의 중소기업을 인수한 것에 대해 당시 재계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BAE시스템스社가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바로 이 회사가 개발 중인 차세대 하이브리드 엔진 때문이었다.
BAE시스템스社의 관계자는 “세이버(SABRE)라는 이름의 이 엔진을 비행기에 장착했을 때, 이론적으로만 보면 전 세계 어느 나라든지 4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는 점이 우리를 매료시켰다”라고 설명했다.
극초음속 비행은 지금까지 항공우주 업계가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기술이다.
군사적으로는 초고속 미사일이나 대륙간 탄도탄 등에 이용할 수 있고, 수송 목적으로는 세계 대도시를 불과 몇 시간 만에 방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진력의 한계’라는 기술적 문제가 극초음속 비행의 발전을 가로막아왔다. 추진력의 한계란 속도가 마하2 이상의 고속으로 올라가게 되면, 제트엔진 연소에 필요한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동안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액션엔진스社 외에도 여러 회사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그 중에서도 록히드마틴社의 경우는 흡입 공기를 처리하는 획기적인 방식의 엔진을 개발하여 마하3 이상의 속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하3 이상의 속도에서는 산소 공급이 한층 더 어려워지고, 온도가 올라가는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면서 더 이상 진전이 되지 못했다.
제트 엔진과 로켓 엔진의 장점을 딴 하이브리드 형태
제트엔진의 한계인 산소 공급 문제는 전 세계 항공업체들의 난제였다. 그런데 리액션엔진스社가 세이버 엔진을 개발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하자 글로벌 방위산업체들이 이 회사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리액션엔진스社의 CEO인 ‘팀 헤이터(Tim Hayter)’는 “혁신적 소형 냉각장치인 열교환기 시스템을 통해 제트 엔진과 로켓 엔진의 장점을 딴 하이브리드 형태가 세이버 엔진의 장점”이라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세이버 엔진은 낮은 고도에서는 제트 엔진을 통해 마하 5의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러다가 우주궤도로 진입하게 되면 로켓 엔진으로 작동 방식을 바꿔 마하 25 정도의 속도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트엔진 방식으로 비행할 때는 대기 중의 공기를 흡입한 후, 이를 액화시켜 산소를 추출한 다음 수소와 반응시키는 산소 액화 수소 엔진 형태를 유지하다가 산소가 없는 우주궤도에서는 외부 공기 공급이 필요 없는 로켓 엔진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엔진 전환에 대해 헤이터 CEO는 “핵심은 외부에서 유입된 공기를 100분의 1초 만에 영하 140도로 떨어뜨릴 수 있는 프리쿨러(pre-cooler)라는 열교환기에 달려있다”라고 밝히며 “이렇게 되면 공기 중에서 연소에 필요한 산소를 곧바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별도의 산소 탱크를 실을 필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세기가 제트엔진 및 로켓엔진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세이버 엔진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그동안 리액션엔진스社의 연구에 관심만 기울이고 있던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작회사인 보잉과 세계적인 항공기 엔진회사인 롤스로이스가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이 두 회사는 무려 4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하며 극초음속기 개발 가능성을 한층 높였는데, 그런 영향 때문인지 최근 3년간의 리액션엔진스社 자본금은 약 1500억 원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특히 보잉社 같은 경우는 세이버 엔진을 극초음속기에 장착될 엔진 외에도 인공위성 등을 실어 나를 우주발사체 등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를 마친 보잉社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전 세계를 1일 생활권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보잉의 꿈을 세이버 엔진이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8.04.2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