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을까?
과학기술 넘나들기(77)
또한 유명한 SF 시리즈물 ‘스타트렉(Star Trek)’에서는 물질과 반물질의 반응을 이용한 초광속 엔진을 장착한 우주 전함이 등장한다.
반물질이라는 명칭은 매우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적인 대상으로 들리기 쉬우나, 이미 존재가 명확히 확인된 물리적 대상이다. 반물질의 실체와 그 활용 가능성 등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반물질을 처음으로 예견한 물리학자는 코펜하겐 학파의 일원으로서 양자역학의 완성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디랙(Paul A. M. Dirac; 1902-1984)이다.
1928년에 그가 세운 전자방정식에서, 전자의 에너지를 나타내는 양과 음의 해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양전자의 존재를 가정하게 되었다.
그 후 미국의 물리학자 앤더슨(Carl David Anderson; 1905~1991)은 1932년에 우주선의 궤적을 촬영하던 중 양전자를 발견하게 되었고, 퀴리부인의 큰딸과 사위인 이렌(Irène Joliot-Curie; 1897-1956)과 졸리오(Jean Frédéric Joliot-Curie; 1900-1958) 퀴리부부가 인공 방사선 생성 실험 등을 통해 양전자의 방출을 확인하면서 반입자의 실체가 더욱 명확히 알려지게 되었다.
양성자와 질량은 같지만 음의 전하를 지니는 반양성자,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하는 반대인 양전자 등이 바로 반물질을 이루는 반입자들이며, 중성자에 대응하는 반입자로서 전하가 없는 반중성자도 있다.
영화 천사와 악마의 첫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나 미국 페르미연구소와 같은 거대한 충돌형 입자가속기 시설에는 반입자를 만들어내고 저장하는 장치와 방법이 마련돼 있다.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가속된 고에너지의 입자들이 충돌할 경우, 많은 종류의 입자들이 생성된다.
물론 그 중에는 반양성자, 반중성자, 양전자 등 반입자들도 있다.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에 대응하는 반입자가 모두 있으므로, 이들로 구성된 반원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반원자들이 모인 것이 바로 반물질이라 할 수 있다. CERN에서는 실제로 반양성자와 양전자들로 구성된 수소 반원자를 만든 적이 있다.
또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반물질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큰 병원에서 뇌질환의 진단 등에 주로 쓰이는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장치(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는 반입자의 하나인 양전자를 이용한 것이다.
즉 여러 기본 대사물질에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표시하여 인체에 투여한 후, 양전자와 물질간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방사선 검출하여 단층촬영 영상을 구현하는 원리이다.
PET는 인체의 생화학적 변화를 영상화할 수 있으므로, 뇌신경계 질환과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 악성 종양 등을 진단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반물질을 이용해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거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개발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순수하게 이론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먼 장래에는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이나 다른 여건 등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그럴 필요성도 찾기 어렵다.
반양성자나 양전자 등 반입자들은 물질의 입자와 반응하면 감마선 등 높은 에너지의 빛(광자)을 내면서 없어진다. 이른바 ‘쌍소멸(Pair annihilation)’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이 경우 여기서 결손 된 이들의 질량과 생성된 에너지 사이에는 아인슈타인이 밝힌 유명한 질량 에너지 등가 공식, 즉 E=mc2의 관계가 적용된다.
띠라서 만약에 반물질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잘 관리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현재의 핵폭탄보다 훨씬 위력이 크고 효율이 높은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은 핵분열 혹은 핵융합의 과정에서 질량 결손에 의한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것이므로, 동일한 질량 에너지 등가 공식을 따르지만,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은 매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입자와 반입자가 쌍소멸을 통해 에너지로 바뀌는 비율은 거의 100%라고 볼 수 있으므로, 동일한 양의 원료라면 반물질을 이용한 폭탄이 훨씬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원자력 에너지 및 핵폭탄의 원료인 우라늄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반면, 반물질은 자연 상태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 대량으로 확보하기가 극히 어렵다.
게다가 반물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많이 들고, 보관과 관리도 대단히 까다롭다.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기만 하면 곧바로 반응하여 쌍소멸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물질을 보관하는 좋은 방법은 토카막 장치와 유사하게, 진공 상태에서 강력한 자기장으로 반입자들을 띄워서 물질과의 반응을 차단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것도 전하를 지닌 양전자나 반양성자만 가능하고, 전하가 없는 반중성자는 이런 방식도 쓸 수 없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처럼, 휴대가 가능할 정도의 크기의 용기 안에 다량의 반입자나 반물질을 보관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너무도 꿈같은 이야기이다.
현 기술 수준으로는 물질과 반물질의 반응을 이용해 전구 한 개를 밝히는 데 드는 비용이 미국 정부의 1년 예산보다 많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우주 공간에 반물질이 매우 풍부해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호와 같은 반물질 반응 엔진의 우주선을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주에는 반물질이 그리 많지 않다.
천문학자들은 혹시 우주 어딘가에 반물질로만 이루어진 은하계 등이 있는지 관측하려 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그 증거가 발견된 적이 없다.
현재의 우주에 반물질보다 물질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수수께끼의 하나이다.
태초에 빛, 즉 광자가 있어서 쌍생성을 통하여 물질이 만들어졌다면, 우주에는 입자와 같은 양의 반입자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대폭발 이론에 의하면 현재 와 같은 정도의 반입자가 존재하려면, 물질이 만들어지던 당시에 입자와 반입자 10억 개 당 입자가 한 개 정도 높은 비율로 생성되었어야 한다고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른바 ‘CP 대칭성 깨짐 현상’ 등에 의해 그 원인을 설명한다.
반물질은 현대 물리학에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지만, 이를 새로운 무기나 에너지원으로 응용하기에는 요원할 듯하고, 그보다는 우주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을 듯하다.
- 최성우 과학평론가
- 저작권자 2018.09.0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