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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타임즈] 일본 노벨 물리학상, 청색 LED

FERRIMAN 2018. 11. 2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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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시대 연 삼류 과학자의 분노

노벨상 오디세이 (66)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은 이례적으로 기초과학 분야가 아닌 실용기술 분야에서 나왔다. 청색 LED를 개발한 일본인 3명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그들의 연구성과에 대해 횃불과 백열전구, 형광등에 이은 인류의 램프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백열전구는 전체 에너지의 95%를 낭비해 에너지 효율이 단 5%밖에 되지 않는다는 단점을 지닌다. 형광등 역시 수은과 형광물질을 사용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LED는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매우 높아 백열등과 형광등에 비해 최고 90%까지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작고 무게가 가볍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벽걸이 TV 시대를 연 것도 LED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스마트폰, 전광판, 램프, 가로등 등 빛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LED는 빠른 속도로 기존 조명을 대체하는 중이다.

청색 LED를 개발한 공로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나카무라 슈지 교수. ⓒ 위키미디어(Ladislav Markuš)

청색 LED를 개발한 공로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나카무라 슈지 교수. ⓒ 위키미디어(Ladislav Markuš)

미국 GE 사가 적색 LED를 개발한 것은 1960년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녹색 LED까지 개발됐다. 마지막 과제는 청색 LED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적색, 녹색, 청색이 빛의 3원색이므로 순수한 백색광을 만들기 위해선 청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가장 강한 청색 LED의 개발은 1990년대까지 난공불락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나고야대학의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와 아마노 히로시 교수, 그리고 미국 UC샌타바버라의 나카무라 슈지 교수가 1993년에 그 숙제를 해결했다.

사제지간인 아카사키와 아마노 교수팀은 질화갈륨으로 청색 LED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밝혀내는 한편 1992년에 최초의 청색 LED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공 역할을 하는 마그네슘의 불순물 문제로 산업화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노벨상 연구의 원동력은 ‘분노’

그 문제를 해결한 이가 나카무라 슈지 교수다. 그는 질화갈륨으로 훌륭한 박막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후 고온으로 열처리를 해 마그네슘 불순문도 소자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마침내 알아냈다.

그런데 2014년 10월 7일 노벨 수상자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카무라 교수는 연구의 원동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분노다. 그것이 내게 모든 동기부여를 했다.”

그가 이처럼 의외의 대답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속칭 삼류대학 출신에다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의 평범한 연구원이었다. 일본 도쿠시마대학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후 지역 기업인 니치아화학공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청색 LED의 개발 성과를 낸 것이다.

TV 브라운관 등에 쓰이는 형광체를 제조하는 니치아화학공업은 당시 직원 200명에 매출 300억원 규모의 작은 회사였다. 연구비 지원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이 회사에서마저 그는 이런저런 이유로 괄시를 받는 처지였다.

삼류 연구자로서 괄시 받는 자신의 처지를 더욱 적나라하게 깨닫게 된 계기는 입사 9년 만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플로리다주립대학에서였다. 거기서 한 실험실의 연구원으로 배속된 그는 단지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설움을 겪었다. 자신보다 젊은 동료 연구원들의 지시를 받아서 하는 허드렛일을 해야 했으며, 연봉도 훨씬 적게 받았다.

1년간의 미국 생활 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박사학위를 인생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마침 당시 일본에는 유명 학술지에 5개 이상 논문을 게재할 경우 박사학위를 주는 제도가 있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박사학위를 받아야 하는 그에게는 안성맞춤인 제도였다.

그는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찾다가 질화갈륨으로 정했다. 원래 자신의 주 연구분야는 셀렌화아연이었지만, 이미 많은 연구가 되어 있어 논문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질화갈륨은 다루기가 어려워 연구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가 질화갈륨을 연구한다는 소문이 돌자 주변 사람들은 미친 짓을 한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결함이 많아 LED 소재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질화갈륨 방식에서 의외로 그는 청색 LED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회사 상대로 발명보상금 소송 제기

1년 후 니치아화학공업은 그 방법으로 청색 LED를 상용화했으며, 졸지에 지방의 무명 중소기업에서 세계적인 LED 회사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나카무라에게 보너스로 준 돈은 고작 2만엔이었다. 사원의 발명품은 회사 소유라는 일본 기업의 관행 탓이었다.

1999년 니치아화학공업에 연구소가 설립되면서 나카무라는 소장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그는 45세의 나이에 사직서를 내고 미국행을 택했다.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그에게 니치아화학공업은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나카무라가 영업 비밀을 누설했다는 명목으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낸 것. 그러자 나카무라도 회사를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 측이 자신의 특허로 얻은 막대한 이익을 자신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소송이었다. 결국 나카무라는 일본 법원의 중재로 8억4400만엔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이력 탓에 나카무라 슈지는 종종 반골 기질이 강한 과학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보잘것없던 자신의 이력을 오히려 노벨상 연구 기회의 장점으로 꼽곤 했다. 대기업에 근무했으면 새로운 연구를 시작할 때마다 상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 비해 중소기업의 경우 연구 조건은 열악하지만 자신처럼 엉뚱한 연구를 하기엔 더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다.

또한 그는 니치아화학공업과 소송까지 가는 싸움을 벌였지만 청색 LED를 연구할 때 많은 지원을 하고 미국 연수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창업자 오가와 노부오 사장에 대해서만은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 이성규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18.11.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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