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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멘토 자료, 인공지능

FERRIMAN 2019. 2. 4. 13:49

[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사람을 살리는 인공지능

입력 2019-01-30 00:24:51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얼마 전 독감 치료약을 먹은 한 중학생이 환각 증세를 보이다 아파트 고층에서 추락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부모가 의사나 약사로부터 치료약의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부모가 부작용에 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다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정말 마음 아픈 사건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해서 이러한 사고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의사도 사람인만큼 실수를 전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의사 한 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맡게 되면, 환자마다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기 어렵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담당의의 컨디션이 나쁜 날도 있을 것이다. 대학병원의 수련의들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의사들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의사들은 근무시간이 있지만, 환자들의 병세는 주말이나 밤을 가리지 않고 언제라도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규 근무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척도에서 의료 서비스의 수준은 낮아지게 된다.

의료 인공지능은 이 지점에 주목한다. 인공지능은 잠을 잘 필요 없이 24시간 지치지 않고 환자 상태를 살필 수 있다. 전날 한국 축구팀이 패배하더라도 감정의 기복이 없다. 그래서 인간 의사가 근무하지 않는 시각이나 업무 과중 등으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틈을 인공지능이 메운다.

인공지능 1/30

인공지능 1/30

의료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면 의료 서비스의 수준도 한층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작년 한 학술지에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패혈증 환자의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인공지능은 패혈증 환자 치료 기록을 학습하여 치료법을 추천해 줌으로써 의사들이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마치 프로 기사가 알파고를 옆에 두고 함께 협동하여 바둑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인간 의사와 인공지능 의사의 협진이다. 인공지능 의사는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보조하며, 의료 영상을 판독하고, 진단이나 수술을 돕는 등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을 "사람을 살리는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사람을 살리는 인공지능 기술은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좋은 소식은 많은 의료인과 공학자들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작년에는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가 출범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앞으로 큰 활약이 기대된다. 이러한 활동을 국가적, 제도적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충분한 의료 빅데이터를 마련하고, 연구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다. 해외에는 의료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다양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MIT 연구소는 중환자실 환자 수만 명의 전자의료기록을 연구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자료는 의료 인공지능 개발에 긴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제약이 적지 않다. 일례로 우리는 병원을 옮길 때마다 검사 결과를 CD-ROM에 저장한 다음, 새 병원에 가져다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분명히 개선이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인공지능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러한 기술은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실수 없이 환자들을 더 잘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의료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여 안타까운 사고가 계속되지 않는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