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에너지

[중앙일보] 멘토링 자료, 미세먼지

FERRIMAN 2019. 3. 24. 19:23

[시론] 유럽처럼 구속력있는 ‘미세먼지 협약’ 만들자

입력 2019-03-21 0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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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미세먼지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다. 정부의 미진한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실망을 넘어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2015년 채택된 파리 협정 이후에도 한국과 중국의 석탄 발전 비중 및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했다. 

장거리 이동성 대기오염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웃 국가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중국발 대기오염이 한국의 미세먼지 악화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를 놓고 최근 양국 정부 고위인사 및 언론 간에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이는 문제 해결에 절실한 양국의 협력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북아 역내의 이동성 대기오염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사업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주도권 행사를 위한 국가 간의 경쟁으로 인해 투자가 분산되고 우선순위가 다른 국내 부처나 연구기관 간에도 중복되는 사업이 많다. 미세먼지는 생성 물질과 합성 경로가 다양하고 계절적·기상학적 변수가 많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중국과 오염원 데이터를 공유하지 못하고 동일한 연구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 측 연구결과의 과학적 타당성과 대표성을 문제 삼아 중국이 수용하지 않는 빌미가 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국을 포함해 동북아 국가 간에 공동연구 모델과 방법, 연구 절차 및 결과 활용 방식 등 전체 과정을 담은 종합적인 거버넌스(추진체계)에 대한 합의가 연구에 선행돼야 한다. 합의를 위해 관련국 전문가와 정책 부처의 대표가 참여하는 협상이 필요하다. 협상을 지원하는 사무국 역할을 할 지역 협력기구 창설 로드맵에 대한 합의도 필요하다.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는 지역 협력체로는 동북아 환경협력프로그램 (NEASPEC)이 있다. 여러 사업 중 하나로 동북아 청정대기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파트너십을 역내 대표 사업으로 만들겠다는 참가국들의 정치적 의지가 보이지 않고, 파트너십이라는 명칭에서 보듯이 오염물질 배출 규제 목표와 연구결과를 각국의 정책에 최종 반영하는 절차가 없다. 

공동연구 결과가 나오면 역내 국가 간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구속력 있는 조약 형태의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최종단계의 협상이 필요하다. 지금 한시가 급한데 구태여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겠으나 지금까지처럼 협력 사업을 늘리는 방식으로는 한국이 원하는 성과를 얻기 어렵다. 

이동성 대기오염물질을 성공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32개 유럽국가와 미국·캐나다는 협상을 통해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 물질 감축을 위한 협약을 1979년 체결했다. 오염물질별 감축 의무를 각국에 부과하는 8개의 의정서를 순차적으로 채택했다. 초기에는 오염물질 다량 배출국인 영국과 독일이 참여에 소극적이었으나 공동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협정 체결에 동의했다. 이동성 대기오염물질의 환경과 경제에 대한 피해뿐 아니라 대응조치로 인한 혜택도 포함하는 통합적 평가모델을 사용한 연구도 공동연구의 대상에 포함했다. 이는 협정체결에 대한 참가국들의 국내적 지지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미세먼지 이동 경로에 속해있는 가능한 많은 국가를 협상에 참여시키고, 공동연구에 국제적으로 검증된 연구기관과 관련 국제기구도 폭넓게 참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미세먼지의 종합적인 대응 추진체계에 합의하기 위한 협상을 조기에 출범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한국은 역내 국가들이 협상에 참여하도록 외교적 리더십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것이다. 

손성환 전 기후변화대사·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