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원흉 지목된 지열발전, 잘쓰면 청정·무한 에너지
입력 2019-04-11 00:03:12
수정 2019-04-11 01:42:29
"피해를 입은 포항 시민들께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현재 중지된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은 관련 절차를 거쳐 영구 중단시키겠습니다."
지난달 20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이 원인’이라고 발표하자,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입장문이다.
정부의 발표처럼 지열(地熱) 발전은 포항지진을 계기로 앞으로 다시는 하지 못하게 될까. 정부는 왜 지열발전을 하려고 했을까. 포항지진의 원인은 밝혀졌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궁금증은 한둘이 아니다. 사이언스&이 지열발전을 둘러싼 궁금증을 팩트체크 형식으로 풀어본다.
지열 이용해 전기도 생산하고 난방도 해결
우선, 정부가 지열발전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용필 산업통상자원부 재생에너지정책과장은 중앙일보에"‘영구중단’이란 표현은 이번에 문제가 된 포항 지열발전을 중단한다는 얘기"라며 "포항 지열발전의 문제점을 잘 살펴본 뒤 추후 연구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처럼 화산지대가 없는 지역의 지열발전 이용 기술은 20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상용화를 시작한 새로운 기술"이라며 "이번 사고 때문에 지열발전 연구 자체를 접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지구는 태양열이 없어도 그 자체로 에너지 덩어리다. 땅 속 온도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올라간다. 100m마다 평균 2.5℃도 정도다. 가장 큰 이유는 지구 내부 고온의 핵이 방출하는 열 때문이다. 지구 중심의 내핵은 고체 상태이지만 온도가 6000℃에 달한다.
지열발전이란 무엇일까. 땅속은 깊이 들어갈수록 뜨거워진다. 이런 땅속의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겠다는 것이 지열발전이다. 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땅속은 100m를 내려갈수록 평균 온도가 2.5℃ 올라간다. 지열의 원천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구 내부 고온의 핵이 식으면서 방출하는 열이다. 지구는 겉을 감싸고 있는 지각(5~35㎞)과 그 아래 맨틀(2900㎞), 그리고 외핵(2900~5100㎞)과 내핵(5100~6400㎞)으로 이뤄져 있다. 고체상태로 추정되는 지구 중심 내핵의 온도는 약 6000℃에 달한다.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 속의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내는 열도 중요 땅속을 뜨겁게 만드는 열원이다.
지열발전은 이렇게 발전을 하고도 남은 뜨거운 물이나 고압의 수증기를 지역난방에 사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환경 오염이 없고, 연료가 고갈될 염려도 없기 때문에 ‘천연·청정의 무한 에너지’라 불리기도 한다.
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지열발전은 일단 설치해 놓으면, 태양광·풍력 등과 달리 비가 오거나 밤에도 상관없이 24시간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가동률이 아주 높아 여러 재생에너지원 중에서도 발전의 최우선 순위인 기저부하로 사용할 수 있는 발전방식"이라고 말했다. 그간 정부가 지열발전을 위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지열발전엔 여러 방법이 있다. 크게 보면 ▶고온 열수발전과 ▶저온 바이너리(binary) 발전, ▶인공 지열 저류층 생성기술(EGS:Enhanced Geothermal System),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고온 열수발전은 지하 2~3㎞에 있는 180℃ 이상의 고온 지열 저류층까지 시추공을 뚫고, 이를 통해 땅 위로 솟구치는 증기로 발전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일본이나 아이슬란드처럼 화산이 발달한 지역에서 주로 쓰는 방법이다. 1904년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에서 지열 증기를 이용해 전구 5개를 밝힌 것이 시초다. 전 세계 지열발전 설비 용량의 90%가 이런 고온 열수발전 방식을 이용한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북위 60℃ 이상의 추운 지역에 있지만, 국토 대부분이 화산지대 위에 올라앉아있다. 덕분에 전기 생산의 90%를 지열발전에 의지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가이저스필드 지열발전의 경우 세계 최대의 지열발전소로, 원자력발전소 1기의 발전능력을 넘어선다. 총 26개의 터빈으로 구성돼 있으며 발전용량은 1.5 GW에 달한다.
화산지대 아닌 곳도 EGS로 지열 발전 가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저온 바이너리 발전은 지열수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180℃ 아래일 때 쓰는 방법이다. 유기냉매 등 끓는 점이 낮은 냉매와 지열수의 열교환을 통해 고온 고압으로 변한 냉매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미국 알래스카에서는 74℃의 지열수로 200급 발전기 3대를 돌리고 있다.
EGS는 우리나라처럼 화산지대가 아니면서 지하에 충분한 지열수가 없을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약 4~5㎞ 깊이까지 땅에 구멍을 뚫은 뒤 물을 내려보내고 땅속에서 가열된 증기를 끌어올려 터빈을 돌리고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2017년 포항지진을 일으킨 넥스지오의 지열발전이 이 방식을 사용했다. 과거에는 굴착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이런 심부지열 발전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여겼으나, 2000년대 들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용화됐다. 포항은 예기치 못한 단층의 존재와 이상이 생겼을 때 절차에 따라 대응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결국 인공지진이라는 참사를 낳았지만,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일대 8곳에서는 이미 상용 발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왜 정부는 하필 경주지진이 일어난 바로 옆 도시인 포항을 택해 지열발전을 시도했을까. 한국지질자원연구소에 따르면 땅속 온도가 높은 전국의 후보지를 물색한 결과, 인천 석모도와 포항·제주도가 후보지로 꼽혔으며, 그중에서도 포항이 우리나라 최적의 EGS 지열발전 지역으로 결정됐다. 특히 포항 흥해읍 일대의 땅은 상부에 점토층이 있어 열 보존에 적합하고, 지하 하부의 온도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물론 경주지진(2016년)이 발생하기 전의 판단이었다.
시민단체 "지열발전 연구는 반대 안 해"
이 같은 연구조사를 바탕으로 2010년부터 넥스지오가 지열발전에 대한 실증실험에 들어갔다. 지질자원연구원은 당초 이런 프로젝트를 토대로 오는 2030년까지 전국에 10여 개의 지열발전소를 만들고 200 규모의 지열발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50년경이 되면 전 세계 지열발전은 원전 200기에 해당하는 200 GW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열발전 기술개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지진의 피해자 측이기도 한 시민단체 측에서도 부인하지 않는다. 포항시민을 대표해 정부 보상을 추진하고 있는 양만재 정부조사연구단 포항지진 시민대표 자문위원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진을 일으킨 지열발전의 절차상 문제점을 밝혀 관련자 책임을 묻고, 보상해달라는 것"이라며 "청정·무한 에너지로 불리는 지열발전 기술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열 발전은 아니지만, 지열을 이용해 냉·난방하는 방법도 있다. 지열원 히트(heat) 펌프 기술이 그것이다. 히트펌프는 낮은 온도의 열을 높은 온도로 옮겨주는 역할을 하는 기기다. 연중 일정한 땅속의 온도를 여름과 겨울에 각각 반대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여름철에는 지상의 더운 열기를 땅 아래로 내려보내 식히고 히트펌프를 이용해 건물 냉방을 한다.
겨울철에는 반대로 지상의 차가운 공기를 아래로 보내 땅속 온도를 이용해 데우고 이를 다시 히트펌프를 이용해 건물 난방을 한다. 우리나라의 대형건물이나 농촌 전원주택에서 지열을 이용한 히트펌프방식으로 냉·난방을 하고 있다. 히트펌프를 가동하기 위한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결국 지열 에너지와 기존 전기 에너지가 합을 이뤄 냉·난방을 하는 셈이다. 에어컨 역시 이런 히트펌프의 일종이지만, 땅속의 열이 아닌 바깥의 더운 공기를 끌어들여 냉매를 통과시키고 차가운 바람을 만들어 건물 안 온도를 떨어뜨리는 방식만을 쓴다는 게 차이점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관계자는 "앞으로 발전 방식이 아닌 지열 에너지 직접 이용 시장은 히트펌프 시스템이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