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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남북협력, 연도별 식량지원 현황

FERRIMAN 2019. 5. 19. 17:57

정부, 대북 식량 지원 확정했지만…넘어야 할 산 많다

입력 2019-05-18 00:55:44
수정 2019-05-18 01:53:28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7일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 원칙을 이미 확정했고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식량 문제는 안보 사항과 관련 없이 인도적 측면에서, 특히 같은 동포로서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북 식량 지원 재개→남북 정상회담→한·미 정상회담(6월 말)→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비핵화 협상 재개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당장 1단계인 대북 식량 지원 성사 여부도 불투명한 데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는 달리 유엔 대북제재 결의라는 벽이 놓여 있어서 실무적으로 따져봐야 할 대목도 만만찮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북 지원 요청 선결돼야=정 실장은 이날 "조만간 대북 식량 지원의 (시기·규모·방식 등) 구체적인 계획을 국민 여러분께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정부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북한 외무성은 지난 16일 홈페이지를 통해 "(유엔과 미국의) 제재 자체가 우리의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인 만큼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맞받아나가 짓뭉개버릴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대남 선전매체인 ‘메아리’는 지난 12일 "우리 겨레의 요구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몇 건의 인도주의 협력 사업을 놓고 호들갑을 피우는 것은 동족에 대한 예의와 도리도 없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식량 지원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2007년 마지막으로 정부의 대북 식량·비료 지원이 이뤄질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양창석 전 통일부 사회문화교류본부장은 이날 중앙SUNDAY에 "대북 쌀·비료 지원을 위해선 북한의 요청이 있고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게 정부가 그동안 지켜온 모범답안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도 최소한 장관급 회담이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한 북한의 요청이 필요한데 과연 요즘 같은 분위기에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양 전 본부장은 지원 방식과 관련, "북한이 유엔에 긴급 식량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군사 전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분배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남남 갈등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엔을 통한 지원이 낫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대북제재가 만든 새로운 벽=과거 식량·비료 지원 때 정부는 육로와 해로를 모두 이용했는데 지원 규모가 클 때는 대부분 해로를 이용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이후 미국은 2017년 9월 대북 제재 행정명령을 통해 북한 항구를 다녀온 선박은 물론 북한 선박과 물건을 바꿔 실은 선박의 미국 입항을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북한이 최근 석유와 석탄을 해상에서 선박 간 ‘바꿔치기(환적)’ 방식으로 제재를 피하려 했던 이유다. 한국도 2016년 3월 외국 선박이 북한에 기항한 뒤 180일 이내 국내에 입항하는 것을 전면 불허하는 해운 제재를 단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에 식량을 운반할 선박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선박 운항에 필수적인 보험 서비스를 제공할 보험사를 찾기도 어려울 수 있다. 또 미국 등의 제재 면제를 받기 위한 절차를 거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해 세계식량기구가 5~9월이라고 설명한 지원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

정부 소식통도 "실무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양 전 본부장은 "2007년엔 인천~남포 직항 노선이 열려 있어 선박이 각종 물자를 싣고 수시로 오갔지만 지금은 대북제재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해운 제재가 의외로 강력한 대북제재라는 사실이 이번에 재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북 추가 도발 땐 정권에 부담=대북 식량 지원의 재원은 남북협력기금에서 충당된다. 2019년도 남북협력기금은 1조1063억원인데 이중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된 구호 지원 예산은 815억원 정도다. 무상 지원이 아니라 과거 식량 지원 때 주로 이용했던 차관 형식을 쓸 경우엔 북한의 약정서 서명이 필요하다.

남북협력기금을 쓸 경우 현행법상 국회 승인은 받지 않아도 되지만 사전에 보고하게 돼 있다. 최소 몇 달이 걸리는 준비 과정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로 대북 여론이 악화될 경우 정부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잖아도 북한 장마당의 쌀 1㎏의 가격이 지난해 말 5000원 선에서 올 들어 4000원 선으로 떨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북한 식량난의 심각성을 놓고서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양 전 본부장은 "2011년부터 이자조차 받지 못하는 차관 형식의 식량 지원 문제를 놓고도 여야 간 쟁점이 됐다"며 "북한이 계속 도발하는 상황에서는 식량 지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모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갤럽이 지난 14~16일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찬성 44%, 반대 47%로 찬반 여론이 팽팽했다.

차세현·백민정 기자

 

 


제재 해제 말할수록 불리한 김정은, 체제 안전 카드 내비쳐

입력 2019-05-18 00:55:03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 ’대통령의 말이 있기 전에 관료들이 주도적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모습이 안 보여 아쉽다

이종석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 ’대통령의 말이 있기 전에 관료들이 주도적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모습이 안 보여 아쉽다"면서 ’집권 3년 차인 만큼 미국과 북한에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부터 생각하지, 시끄럽다고 무조건 때리기부터 합니까."



최근 북한이 동해로 방사포와 미사일을 쏜 행위가 도발인지, 통상적 훈련인지 논란인 가운데 이종석(61) 전 통일부 장관(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강조했다. 소장 학자 시절부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역지사지(易地思之) 북한론’이다. 북한이 뭘 쏘기만 하면 무조건 도발로 규정하고, 규탄부터 할 게 아니라 북한 입장에서 면밀히 따져본 뒤 성격을 규정하고, 대응 수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식적 자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북한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15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이 전 장관을 만났다.



우리가 하면 로맨스, 북한이 하면 불륜?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사일을 쏴도 미사일이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있다. "북한의 그런 행동을 걱정하고, 우리도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이 뭘 쏠 때마다 다 도발이라고 할 건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북한이 안 하겠다고 약속한 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다. 일부에선 북한이 쏜 게 탄도미사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도 탄도미사일 시험을 하고, 발사 훈련도 한다. 언제까지 북한이 뭘 쏠 때마다 중계방송하듯 할 건가. 어디까지는 되고, 어디부터는 안 되는지 우리 나름의 기준과 대응 매뉴얼을 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말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내세우며 남북공조를 강조한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남북관계가 냉각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남북관계를 북·미 대화에 연계시키고 있는 건 북한이다. "오히려 북한이 그런 불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남한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그렇게 못 하고 있다. 또 우리는 우리 스스로 북한에 제공한 빌미는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김정은 위원장에 빙의(憑依)해 보면 한·미 연합훈련을 자신이 중단시켰다고 큰소리쳤는데, 얼마 전 한·미가 공군훈련을 했으니 아랫사람들에게 위신이 깎이지 않았겠나. 그러니 뭐라도 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로맨스고, 북한이 하는 것은 다 불륜이라는 태도는 곤란하다."

그렇게 빙의까지 해가며 북한 입장을 두둔하니 ‘종북’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군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 『손자병법』이다. 『손자병법』의 기본이 뭔가.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상대를 제대로 알아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내 입장만 신경 쓰면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자꾸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빨갱이’ 소리를 듣는다.(웃음)"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 "조건이 충족되면 할 수 있다고 본다. 김정은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다르다. 고도성장하는 ‘경제 부국(富國)’ 북한을 꿈꾸고 있다. 김정은이 추구하는 북한의 새로운 모델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핵을 포기할 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 가능한 목표로 본다는 뜻인가. "북한이 비핵화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의심할 것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 문제는 북한의 의지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미국도 북한이 원하는 걸 해준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완전한 비핵화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은 지난 9일 이스칸데르급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이동식차량에서 발사했다. [연합뉴스]

북한은 지난 9일 이스칸데르급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이동식차량에서 발사했다. [연합뉴스]

북·미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빅딜이나 선(先)비핵화는 안 된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자체 협상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달 김정은은 미국이 연말까지 북한과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온다면 한 번 더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결정을 미국에 넘긴 셈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경제제재 해제에서 체제안전 보장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모양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체제안전만 생각했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국가 모델을 지향하고 있는 김정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제재 해제다. 하노이에서 김정은은 제재 해제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약점을 간파한 트럼프가 목을 더 조여오니까 제재 해제 얘기를 할수록 불리해진다고 본 김정은이 체제안전 카드를 내비친 것이다. 이 문제가 테이블에 오르는 순간 협상은 매우 어렵고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체제안전 쪽으로 골포스트를 옮기기 전에 제재 해제 카드를 갖고 비핵화의 큰 줄기를 풀어야 한다."

사실상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닌가. "아직은 과도기다. 4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이 중재안을 만들고, 그걸 갖고 북·미가 정상회담을 하게 해야 한다. 이대로 놔두면 진짜 물 건너간다.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때라고 보는 이유다."

어떤 중재안이 가능할까. "항상 비판할 준비가 돼 있는 워싱턴 조야(朝野)를 설득은 못 해도 최소한 돌파할 수 있을 정도의 카드를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줘야 한다. 북한은 이미 영변 핵시설 전체를 다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거기에 더 얹어서 영변을 포함한 북한 전역의 핵과 ICBM 관련 시설을 전부 폐기한다는 정도면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트럼프도 김정은이 하노이에서 요구했던 수준에 버금가는 제재 해제를 선물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1단계 협상을 마무리하고, 북한이 가진 모든 핵무기와 ICBM을 반출하고 폐기하는 것은 2단계 협상으로 넘기는 것이다. 1단계의 과감한 딜을 통해 신뢰 기반이 구축되면 2단계를 진행하기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진짜 심각하다고 보나. "최근 몇 년과 비교하면 심각한 편이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지난 4~5년간 북한에 최대 압박이 가해졌고, 외부로부터 의미 있는 식량 지원이나 반입도 없었다. 그런데도 북한에서 사람이 굶어 죽었단 얘기가 안 나온 것은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이 추진해온 농업개혁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핵심은 포전담당책임제다. 개인에게 경작할 땅을 나눠주고, 거기서 할당량 이상 생산한 것은 모두 개인이 처분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농업 생산성이 올라갔다."

그렇다면 최근의 식량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지난해 폭염으로 작황이 부진했던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

최근 다시 시작된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 지원을 해야 하나. "그렇게 본다. 인도주의의 대의에 맞을 뿐더러 핵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한국의 중재 역량이 중요하다. 한·미 공조를 우선하다 보니 우리의 대북 중재 역량이 많이 떨어졌다."

인도주의적 협력 사업, 관광 등 방북 터줘야

대북 제재와 무관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인도주의적 협력 사업이나 관광이나 취재를 위한 북한 방문 정도는 터줘야 한다."

현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 아닌가. "김정은은 지금 하루 세끼를 못 먹어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지만, 김정은은 고도성장의 포부를 갖고 장기 경제발전 프로젝트를 짜고, 투자를 했다. 김정은이 다 포기하고, 하루 세끼 밥만 먹고 살기로 작정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수 있을까 의심했는데, 김정은은 이미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제재가 앞을 막고 있다. 그게 고통스러워 김정은은 비핵화 카드로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압박 수위가 되레 높아지면서 비핵화도 멀어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대북, 대미정책을 비교한다면. "정책 기조가 보완·계승되고 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북핵 문제가 결정적 협상 국면에 들어서면서 문재인 정부의 중재자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당사자이지 무슨 중재자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사자도 중재를 할 수 있다. 당사자가 세 명인 상황에서 둘이 싸우면 나머지 한 사람이 거중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 협조적인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한계는 인정하지만, 그래도 정부 관료들이 보다 주도적으로 대미 설득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말이 있을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먼저 치고 나가는 모습이 안 보여 아쉽다. 집권 3년 차인 만큼 미국과 북한에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이종석 전 장관 1993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 박사. 94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정책기획자문위원회 위원. 2002년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2006년 통일부 장관. 현재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 『통일을 보는 눈』, 『한반도 평화통일론』 등 9권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