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무선 통신의 발명자?
과학기술 넘나들기(128)
최근 국내에서 상영 중인 영화 중에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 1847~1931)과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1856~1943) 간의 전류 전쟁을 다룬 영화 ‘커런트 워(Current War, 2017)’가 있다.
에디슨 역에 베네딕트 컴버배치, 테슬라 역에 니콜라스 홀트, 그리고 톰 홀랜드 등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는 데 비해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은 듯하나, 18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전력 공급 체계를 장악하기 위해 벌어진 직류 진영과 교류 진영 사이의 치열한 다툼을 나름 잘 묘사한 듯하다.
영화에도 나오듯이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진영이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서 대규모 전등 입찰 수주에 성공한 것과, 그 직후 나이아가라 폭포에 건설된 세계 최초의 수력발전소가 교류 승리의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이기도 한 나이아가라 폭포에는 테슬라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테슬라가 에디슨과의 경쟁에서 결국 승리하여 현대적인 교류 송전 체계의 확립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져 있지만, 테슬라와 관련하여 여전히 논란이 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즉 테슬라가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에 앞서서 무선 통신을 최초로 발명했는가 하면,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 1845~1923)보다 먼저 X선을 발견했고, 레이더 등 현대식 군사 기술 및 무기 등의 연구에서도 수많은 선구적인 업적들을 남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을 입증할만한 자료들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만 테슬라의 무선 통신 발명에 대해서는 특허 등 비교적 설득력 있는 증거들이 있어서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다.
즉 무선전신 자체에 대한 미국 특허 출원이 테슬라가 더 빨랐는데, 이는 다른 분쟁과 관련하여 1943년에 미국 대법원에서 사실로 인정된 바 있다. 그러나 무선 통신의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은 마르코니가 영국에 먼저 한데다, 무선 통신의 실용화에 필요한 여러 후속 특허들을 취득하고 사업화에 성공한 것은 분명 마르코니이다.
따라서 무선 통신의 발명자를 테슬라로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으며, 마르코니는 무선전신의 사업화 성공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전리층의 존재까지 발견한 공로 등으로 기술적 업적으로는 드물게 1909년도 노벨 물리학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발명의 역사에 있어서 어떤 제품이나 기술의 최초 발명자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들이 사실은 그것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결코 아닌 경우는 대단히 많다.
‘증기기관의 발명자 와트(James Watt, 1736~1819), 증기선의 풀턴(Robert Fulton, 1765~1815), 증기기관차의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6)’이 모두 다 그러한 경우이다. 우리에게 최초 발명자로 익숙한 위의 인물들은 사상 처음으로 그것을 ‘발명’했다기보다는, 그 제품의 사업화와 실용적인 보급에 성공하여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날린 경우들이다.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의 전화, 에디슨의 전구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벨의 전화 발명을 둘러싸고도 숱한 논란과 의혹 제기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벨보다 앞서서 전화를 발명한 사람들도 분명 있었고, 벨의 전화는 경쟁자였던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의 기술을 도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벨이 전화를 최초로 발명했든 아니든,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벨이 단순히 전화 발명 자체로만 명성을 얻은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 끝에 전화를 대중화하는 사업을 성공시킴으로써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는 점이다.
에디슨의 전구 발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에디슨 이전에도 전구를 발명한 사람, 혹은 백열전구와 유사한 전기 조명기구를 만든 사람이 없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발명한 전구는 수명이 불과 몇 초밖에 안되었으므로 실용화가 불가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발명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기는 했다. 하지만 에디슨이 ‘최초로’ 전구를 발명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에디슨의 전구는 실용화가 가능할 정도로 수명이 길었다는 점도 발명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사실이지만, 에디슨의 전구 발명이 인류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업적이 된 것은 그가 전구 발명에 그치지 않고 그것의 실용화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고,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시스템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일단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발전소가 필요한데, 그는 자신의 연구소를 비롯해 곳곳에 발전소를 만들었다. 또한 소켓, 퓨즈, 각종 단자 등 전기를 공급받아 전구에 불을 밝히기까지 필요한 각종 기구들도 꼭 필요한 요소들로서, 모두 에디슨이 직접 발명하여 보급한 것들이다.
그는 비록 가정에 보급하는 전기의 송전 방식으로서 직류를 끝까지 고집하는 잘못을 범하기는 하였으나, 기존의 가스등을 전구로 성공적으로 대체한 시스템의 설계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조차도, 최초의 발명이 곧 제품의 성공이나 실용적인 보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제품을 실험실에서 발명하는 데에는 일단 성공했지만, 여러 이유들로 인하여 해당 제품의 사업화에는 실패하는 사례가 여전히 숱하게 되풀이된다. 또한 신제품이나 신기술을 대중적으로 보급하여 실용화에 성공하는 데에 수십 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는 경우도 많으며, 이 경우 최초 발명자와 실용화에 성공한 인물이 전혀 다른 사람인 경우도 수두룩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 역사에 있어서 ‘최초 발명이라는 신화’에 가려져 온 진실을 보다 명확히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다 똑똑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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