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열두발자국] 아이에게 코딩교육을 시켜야 할까요?
입력 2019-10-01 00:26:24
궁금한 걸 알게 되면, 뇌에서 보상을 표상하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해답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는 뜻이다. 궁금해했던 걸 배우면, 그 지식은 우리 머릿속에 훨씬 더 오래 남는다. 그게 바로 진짜 공부다. 그래서 공부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공부는 원래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활동’중 하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공부는 ‘코티솔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활동’이다. 즐거움이나 보상은커녕, 스트레스 호르몬이 뇌를 흠뻑 적실 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왜 암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궁금하지 않은 지식을 억지로 머릿속에 집어넣으라고 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외운 것을 토해내야 하고, 이를 점수화해서 다른 학생들과 비교당한다. "요즘 학교 공부, 재미있니?"하고 물어보면, "어떻게 공부가 재미있어요? 말도 안 돼." 의아한 얼굴로 답한다. 대한민국의 공부는 호기심이 거세된 가짜 공부다.
학교가 12년 동안 청소년들에게 제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매우 즐거운 과정이라는 경험’, 즉 지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평생 배우고 학습하는 인간으로 살아간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점점 길어져만 가는데, 지식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20대 초반 대학에서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몇 년 공부한 것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학교에서 구겨 넣은 지식은 결국 모두 잊히겠지만, 평생 스스로 독서를 즐기고 학습을 놓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시킬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20년 후에 가장 유망한 직업이 뭔가요?"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도 없다. 20년 전 우리가 인공지능 전문가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생각하지 못했듯이, 20년 후 어떤 직업이 유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 위해, 미래 유망한 직업을 전략적으로 접근했다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교육의 목표는 세상이 아무리 바뀌고, 미래에 필요한 지식이 무엇이 되든, 그것을 배우는데 주저함이 없고, 혼자 너끈히 학습할 수 있는 평생 학습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아이들에게 코딩교육을 해야 할까요?"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일 게다. 컴퓨터 코딩이란 그저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굳이 청소년 시기에 배울 필요는 없다. 괄호 넣기 문제를 풀 듯이 학원에서 따분하게 배우는 코딩만큼 해로운 것도 없다.
코딩이란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들을 컴퓨터 안에서 실제로 구현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다. 심지어 세상에 아직 나오지 않는 것들을 상상하게 하고, 자신이 상상한 것을 온라인 안에서 실제로 존재할 수 있도록 창조하는 과정이 코딩이다. 자유롭게 상상하는 과정이 생략된다면, 그 후 무엇을 구현하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뿐이다. 자신이 상상한 것들이 컴퓨터 안에서 구현되는 즐거움을 맛본 청소년들은 ‘코딩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졸업한 청소년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교과서가 통째로 머릿속에 들어있지만, 다들 찍어내듯 똑같은 남의 생각, 칠판에 고인 지식이라 상상의 질료가 되기 어렵다. 그저 암기만 하였기에, 살아있는 지식이 되기 어렵다.
말로는 우주선도 만들 정도로 그럴듯하게 떠벌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라디오 하나, 나박김치 하나 만들 줄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 청소년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인간의 본성과 우리 사회, 그리고 시대정신을 가르치고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깊이 있는 사고, 즉 인문학과 사회과학적인 사고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 줄 알게 해야 한다.
내가 상상한 걸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과 공학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걸 만들기 위해 ‘힘과 운동’을 공부하고 2차 함수를 학습한다면, 그보다 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학습법은 없다.
어릴 때부터 예술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그저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만 찍고 오는 루브르 미술관 방문이 아니라, 우리 도시의 작은 미술관 그림 앞에서 두 시간씩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바로 이 가장 중요한 교육들만 빼고 다 가르친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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