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인공지능, 반도체

[중앙일보] 인공지능, 한국의 인공지능 기술수준, 인공지능 인재 경쟁력

FERRIMAN 2019. 12. 29. 20:39

이러니 ‘한돌’ 졌지…중국과도 격차 벌어지는 한국 AI

입력 2019-12-23 00:04:00
수정 2019-12-23 0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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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교육 로봇을 개발하는 중국 유비소프트의 한국 진출 행사가 17일 열렸다. 전민규 기자

AI 교육 로봇을 개발하는 중국 유비소프트의 한국 진출 행사가 17일 열렸다. 전민규 기자

이세돌 9단이 지난 21일 NHN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한돌’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181수 만에 아쉽게 불계패하며 총전적 1승2패로 은퇴 대국을 마감했다. 한돌은 그간 발전된 기량을 선보였지만, 경험이 부족한 2점 접바둑에서는 약점을 노출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한국 AI의 발전 가능성과 함께, 한계와 숙제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제3국에서 한돌은 패배를 당한 1국 때와는 달리 초반 불리한 형세를 차근차근 역전해갔다. NHN은 "1국에 비해 한돌이 초반을 다르게 출발했다"며 "승률이 50%를 넘긴 후 한돌의 수는 빈틈이 없었고 부드러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3국 직후 이 9단이 내린 평가는 박했다. 이 9단은 "솔직히 아직 한돌은 접바둑에서는 강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저는 부족했지만, 좋은 후배들이었다면 한돌을 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돌이 1국에서 ‘장문’을 파악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요석 3점을 내준 대‘실착’ 때문이다. 2점 접바둑 첫 실전대국에서 충분한 학습 데이터를 쌓지 못한 AI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바둑AI인 ‘절예’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주요국과 비교한 한국의 인공지능 기술수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요국과 비교한 한국의 인공지능 기술수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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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텐센트가 개발한 절예는 이미 지난해 1월  중국 최강자 커제를 상대로 2점을 접어주고 77수 만에 승리해 바둑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달부터는 덤이 없는 순수 2점 바둑으로 중국 프로기사를 격파하기 시작했다. 덤 7집 반을 챙기고 접바둑을 둔 한돌보다 한 수 위의 기력이다. 

주요국과 비교한 한국의 빅데이터 기술수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요국과 비교한 한국의 빅데이터 기술수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바둑AI ‘돌바람’을 개발한 임재범 돌바람네트웍스 대표는 "AI의 머신러닝(기계학습)에 있어 중요한 게 바로 데이터인데, 이 부분에서 한돌이 부족했던 것 같다"라며 "중국의 바둑 AI인 절예·골락시보다는 한돌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분석했다. 

한돌의 이런 모습이 국내 AI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게임이나 바둑에서는 실수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자율주행·의료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선 한 번의 실수가 심각한 사고로 이어진다. 국내 AI가 한돌처럼 학습이 부족한 환경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수준이라면 AI에 맡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AI인 알파고의 경우 업데이트를 통해 오류를 0의 수준까지 낮추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의료 분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정부 산하기관인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의 ‘ICT 기술수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인공지능 기술수준은 지난해 기준으로 1위인 미국의 81.6% 수준이다. 경쟁국인 중국·일본·유럽보다 낮다. AI 기술수준은 2017년 중국에 처음으로 역전당했고, 미국과의 기술격차는 2017년 1.8년에서 지난해 2년으로 벌어졌다. AI의 토대가 되는 빅데이터도 한국의 수준은 미국의 83.4%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미국과의 기술격차 역시 2017년 1.6년에서 지난해 1.9년으로 커졌다. 

IITP는 "한국의 AI는 성장하고 있으나 미국 중심의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 상대적 격차는 확대되는 추세"라며 "빅데이터는 수집·유통·처리 분야는 기존 선진국의 솔루션을 업그레이드하는 형태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지만, 빅데이터 분석 활용 분야의 기술수준이 낮다"고 분석했다. 

한·중·일 AI 인재 경쟁력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중·일 AI 인재 경쟁력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느린 배경으로는 우선 AI 전문 인력의 부족이 꼽힌다. 한국경제연구원이 AI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AI 인재 경쟁력을 10으로 볼 때 한·중·일 3국의 AI 인재 경쟁력 수준은 각각 5.2(한국), 6.0(일본), 8.1(중국)로 평가됐다. ‘국내에도 인력이 배출되지만, 연봉 수준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미국·유럽·중국 행을 택한다’는 게 한경연의 설명이다. 추광호 한경연 일자리전략실장은 "AI가 4차산업 시대에 새로운 성장 동력임에도 인력 부족률이 60.6%에 달해, 필요인력 10명 중 4명밖에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환경은 빈약하고, 인프라는 부족하다. AI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해외와 달리 국내 기업들이 수익성 등을 이유로 투자에 주저해왔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AI 알고리즘이나 유용한 데이터를 확보하고도 이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전 세계 3465개 유망 AI 스타트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42곳에 불과하다. (독일 아스가르드 분석) 미국이 1393개로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1위였으며, 중국이 383개로 2위, 이스라엘이 362개로 3위였다. 한국은 12위다. 

미국은 ‘AI 이니셔티브 행정명령’, 중국은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규획’ 등 경쟁국에선 국가 정상이 직접 나서 AI 발전·투자 전략을 진행한 지 오래지만, 한국은 지난 17일에야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발표하면서 AI 기술 개발과 생태계 구축을 위한 추진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이 꼽는 AI 발전의 최대의 장애물은 무엇보다 규제다. 데이터에 대한 이용 규제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민간을 중심으로 200조원 규모의 데이터 거래시장이 활성화돼 있고, 이를 바짝 뒤쫓는 중국은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자국 내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국가 주도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데이터 활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AI 기술의 사용·발전을 막는 원격의료 규제도 문제다. 

미국 인공지능학회의 ‘혁신적 인공지능 응용상’을 3차례 수상한 이경전 경희대 소셜네트워크과학과 학과장은 "우리나라에서 AI의 적용이 가장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곳이 바로 교육 분야인데, 이는 산업의 규모가 받쳐주고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기 때문"이라면서 "AI의 성장은 결국 적용되는 산업의 크기와 규제의 정도에 따라 좌우되는 만큼, AI를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AI 개발에 투입한 시간과 자원·인력 등이 차이가 나는데, 기술수준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지난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간 바둑 대결로 AI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우리의 전반적인 눈높이만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경전 학과장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토종 AI기업도 많다는 점에서, 한돌의 문제를 국내 AI 전체의 기술력의 한계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라며 "의료·교육·가전 등 한국이 앞선 산업을 중심으로 AI 기술을 집중하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손해용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