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5년째 저성장 내리막길, 일본처럼 되고 있다
입력 2020-04-28 00:21:00
‘5년 1%P 하락의 법칙’에 빠진 한국경제
지난 25년간 한국 거시경제 행로를 결정해온 강력한 경제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생명력이 강해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전염병 사태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 발발 이전·이후와 상관없이 한국경제를 주도해 왔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엄청난 충격이 진정된 후에도 이 법칙은 우리 경제의 운명을 규정지을 가능성이 크다.
이 법칙은 바로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연간 성장률의 10년 이동평균으로 계산한 한국의 장기성장률이 1990년대 중반 이후 5년마다 1%포인트씩 거의 규칙적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장기성장률은 단기적 변동요인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진짜 성장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진짜 성장능력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암울한 경제법칙은 정권의 이념성향보다 강력하다. 보수정부·진보정부에 관계없이 정권마다 장기성장률이 1%포인트씩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의 6%대에서 김대중 정부 때는 5%대로, 노무현 정부 때는 4%대로, 이명박 정부 때는 3%대로 하락했다. 이 법칙에 따라 추정한 장기성장률은 박근혜 정부 때 2%대로 하락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1%대로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의 여파로 1분기에는 아예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 경험적 법칙은 정부 경제정책을 무력하게 한다. 역대 정부가 취한 어떤 경기부양책과도 상관없이 작동해 왔다. 지난 3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29%에 달하는 강력한 투자 부양책을 쓰고, 건설투자도 GDP 대비 14% 이상을 유지했다. 지난 20년간 한국은행도 실질금리 평균이 0.7%에 불과한 저금리 정책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기성장률은 법칙에 따라 5년마다 1%포인트씩 추락해 왔다.
차기 정부에서 0%대 성장 우려

그래픽=최종윤
경제성장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장기성장률의 0%대 추락이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신고전파 성장이론에 따르면, 기계와 같은 ‘물적 자본’ 축적에만 성장을 의지하는 경제에서는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라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점점 낮아져 결국 투자가 멈추게 된다. 그 결과 성장이 정지하면서 장기성장률이 0%가 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등장한 내생적 성장이론에 따르면, 근로자에 내재된 지식과 기술을 의미하는 ‘인적자본’ 축적 속도가 점점 줄어들면 0%로의 추락이 감속 없이 선형으로 일어날 수도 있게 된다.
결국 혁명적인 정책변화를 통해 이 법칙을 저지하지 못하면 차기 정부 하에서 장기성장률이 0%대로 진입해 실물경제 위기 가능성이 많이 증가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연간 성장률은 단기적 변동요인에 따라 20%의 확률로 추세적 장기성장률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값에서 결정됐다. 따라서 장기성장률이 0%에 진입하면, 연간성장률이 마이너스 1% 이하로 떨어지는 실물 위기가 20% 정도의 확률로 발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로성장 시대에 접어들면 특히 경쟁력을 잃은 한계 산업과 한계 기업, 그리고 부도기업이 급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좋은 일자리’ 창출 능력도 급격히 하락해 청년·중년·노년 일자리 문제가 동시에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나라 전체의 평균 성장률(0%)에 못 미치는 2000만~3000만명의 국민은 가계소득 감소를 경험하고, 소득 취약계층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돼 소득분배도 악화할 수 있다.
단기부양은 금융위기 초래 위험

5년 1%P 하락의 법칙
이 위협적인 법칙이 지난 30년간 한국경제를 주도해왔음에도 역대 정부들이 이 경제법칙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국민에게 알리고 이의 극복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은 미스터리다. 이 법칙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인지 소위 ‘747 정책’으로 7% 성장률을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정부도 있었지만, 이 정부의 장기성장률은 결국 3%대로 전임 정부에 비해 1%포인트 하락했다. 다른 정부들도 공약한 높은 성장률과 상관없이 전임 정부보다 1%포인트 하락한 장기성장률을 성적표로 받은 점에서 동일하다. 경제법칙이 정치공약을 이긴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한국경제에 대한 국민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지만, 한국경제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이 전염병이 아니라 5년 1%포인트 하락의 법칙에 따른 성장 추락 때문임을 인지해야 한다. 법칙에 따라 추세 장기성장률 추정치가 이미 1% 중반까지 하락했기 때문에 거기에 코로나19 같은 단기적 충격이 더해지면 마이너스 성장률도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지금이라도 ‘5년 1% 포인트 하락의 법칙’ 저지를 국가정책의 지상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 법칙에 따른 성장 추락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고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온 나라와 국민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 경험적 법칙을 깨뜨릴 수 있다. 단, 시간이 없다. 경기부양만 하다가 1%포인트 낮은 장기성장률을 차기 정부에 연이어 물려주는 관행을 깨고 이 퇴행의 법칙을 깨뜨리는 정부가 당장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 한국은 일본보다 더 규칙적으로 하락「 성장률이 계속 추락하지 않고 2~3%대 저성장에서 멈춰 더는 크게 변하지 않고 고착화하는 ‘저성장 고착화’에 한국경제가 처해 있다는 견해도 제기돼 왔다. 박근혜 정부 중반에서 문재인 정부 초반까지 연간 성장률이 2% 후반~3%에서 횡보한 것이 이 견해를 뒷받침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연간 성장률은 인위적 경기부양책을 통해 ‘진짜 성장능력’ 이상으로 높게 보일 수 있는 ‘겉보기 성장률’임에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2014년부터 ‘초이노믹스’란 이름 아래 실시된 주택건설 부양을 포함한 강력한 부양정책이 겉보기 성장률을 진짜 성장능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증가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또 무역수지 흑자가 GDP의 6%를 넘는 예외적 상황이 5~6년간 지속해 연간 성장률을 일시적으로 높여주는 힘으로 작용했다. 결국 인위적 경기부양과 일시적 무역수지 흑자에 따른 착시효과를 제거하면, 한국의 진짜 성장능력은 2% 후반~3%에 고착화하기보다는,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라 추락해 현재 1%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고도성장을 경험한 후 50년 이상 성장 추락을 경험한 일본·이탈리아에서도 장기성장률이 2~3%에서 굳어지기보다는 0%대 혹은 마이너스로까지 추락했다. 특히 일본은 80년대 후반 경기부양으로 4%대 장기성장률에 고착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버블붕괴 이후 장기성장률이 0%대까지 추락했다. 한국은 법칙에 따라 훨씬 더 규칙적인 성장 추락을 겪어왔기 때문에 장기성장률이 0%까지 하락할 개연성이 이들에 비해 낮지 않다.
요컨대 한국경제가 혁명적 정책변화 없이는 2~3%대 저성장 고착화보다는 0%대로의 성장 추락을 맞을 개연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정말 우려되는 것은 ‘저성장 고착화’가 아니라 ‘저성장 밑으로의 추락’이다.
」 ■ ◆김세직「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선임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2006년부터 서울대에서 거시경제학·화폐금융론·경제성장론·한국경제론을 가르치고 있다. 경제 성장정책, 경제위기 예방 및 대응 정책, 인적자본과 교육정책 등에 관심이 많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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