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혁의 데이터이야기]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
입력 2020-06-08 00:11:00
많은 이들이 빅데이터나 알고리즘(공식)에 기반한 의사결정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이 마치 다른 세상의 얘기인 걸로 여긴다. 실상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은 이미 알고리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일례로 우리는 운전을 할 때 대부분 내비게이션에 의지한다. 심지어 아는 장소로 갈 때도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켠다. 그것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지름길을 찾기 위해서, 혹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일 수 있다. 사람들은 쓰기 간편하면서도 실질적인 이득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런 도구에 의존하는 것이다.
내비게이션 기기를 통한 시간 절약 등의 이득은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방대한 양의 교통정보와 기존의 지도와 지역정보, 그 모든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구체적인 루트를 제시하는 알고리즘이 어우러져 실제화된다. 데이터는 알고리즘의 원료이며, 데이터가 없다면 어떤 종류의 모델링이나 공식을 통해서도 유용한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거꾸로 모델링을 통해 만들어진 알고리즘이 없다면 데이터는 단편적인 정보의 조각들로 남아있지 저절로 사람들이 원하는 답으로 변형되지 않는다.
이런 기기에 의존하는 대가는 지도만 가지고 길을 찾아가는 능력의 퇴화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우리가 단 몇 개의 전화번호도 외기 힘들어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런 퇴화과정은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만약 내비게이션뿐 아니라 자동차·전기·가스레인지 등 우리가 늘 당연히 여기던 문명의 이기들을 갑자기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별자리를 따라 방향을 찾고, 동물들을 추적하여 사냥을 하며, 성냥 없이 불을 지펴 그것을 구워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드물 것이다.
데이터이야기
도구의 발전은 분업화와 전문화로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는 현재 4차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세상으로의 변화도 과거 농업화와 산업혁명 등의 큰 변혁들과 동일 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 내비게이션의 예로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자. 만약 어느 주요 도로에 심한 정체가 생겼다고 할 때, 내비게이션 기기들을 관장하는 알고리즘이 그 길에 있던 모든 차들을 다른 대로로 안내한다면 거기서 새로운 정체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럴 경우 기계가 무작위로 누가 그 막힌 길에 남아있을 것인지를 정하여 일부만 새 길로 인도한다면?
전체적으로는 이런 결정이 이득이겠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불공정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만약에 사람이 임의적으로 그런 결정을 했다면 그로 인해 손해를 본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오히려 기계가 한 결정이 더 공정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를 따지고 보자면 과연 우리는 길을 찾아가는 본능만 잃어버린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복잡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 판단하여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주도권과 능력까지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의 변혁들은 우리로 하여금 각기 전문화된 길로 가게 했지만 결국은 인간들끼리 일을 나눠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누군가는 농경지에 남아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도시로 떠나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어 경작법을 완전히 잊게 되는 식의 분업화가 이루어졌을 따름이다. 하지만 자율주행 차가 상용화되어 직업 운전기사들이 다른 직종을 찾아야 하는 경우는 다르다. 사람들이 나눌 일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의사결정까지 기계에 의존하는 세상이 오면 그건 직업의 전문화뿐 아니라 인간의 부품화로 이어진다.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다양한 알고리즘은 유용한 데이터만 있다면 단순한 길 안내를 넘어 인생의 진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안내마저도 비판없이 따르게 될지 모른다.
이런 변화는 매사에 최적화된 효용성을 우선시하면 필연적이지만, 기계가 준 답이라고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란 걸 기억해야 한다. 기술 전문가와 사용자의 구분을 떠나 모두 인문적 소양을 갖추고 기계가 일상적으로 만들어준 간편한 답들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선별해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길은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더라도 왜, 꼭 어느 곳으로 가야 하나에 대한 결정은 언제까지나 사람 몫이다. 게다가 아직은 기계에 ‘경치 좋은 길’로 돌아가는 것의 가치를 쉽게 가르칠 수 없다.
유혁 윌로우 데이터 스트래티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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