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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멘토링, 수필, 오피니언

FERRIMAN 2020. 8. 23. 10:58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각자의 전투, 매일의 생존

입력 2020-08-14 00:33:18

 

반가운 손님이 미국에서 오셨습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열린 심리학회에서 만났던 리사 손 교수님을 한 강연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교수님이 따뜻한 인사 후에 던진 첫 질문은 제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주변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 본 적 있나요?" 그러고 보니 제 주변 지인 중 걸린 사람은 다행히도 없기에 ‘본 적 없다’ 이야기 드리니, 교수님은 미국에서 주위에 돌아가신 분들만 세 분이라는 답을 주시며 한국은 정말 안전한 곳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우리에게도 지금의 사태는 매우 심각하게 느껴지지만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나라에서 느끼는 팬데믹은 바로 죽고 사는 문제로 인식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뭔가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해온 다혈질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기에 죽음은 익숙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위험하고 생명과 연결된 염려를 겪는 것은 낯선 일입니다. 벌써 꽤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자 그동안 잘 보지 못하던 힘든 삶이 눈에 들어옵니다. 절대빈곤의 국가에서 인내하기 어려운 한계점 끝자락을 매일같이 살아가는 사람들, 정치적 문제로 고립되어 보건과 의료에서 소외되어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분쟁지역에서 포화와 공포 속에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까지, 더 힘든 삶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삶을 들여다보다 얻게 된 것은 연민이 아니라 오히려 문득 떠오른 존경의 마음이었습니다. 더 힘든 상황일수록 생명을 향한 끈질긴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잡지 ‘도무스’에서 제가 인터뷰한 분쟁지역 보도 전문가 김영미 PD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김 PD는 이라크 전쟁 때 폭격 소리에 놀라 조산하는 산모를 취재하던 중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 한 달 넘게 사는 것을 지켜보았다 합니다. 그러다 폭격에 전기가 끊겨 인큐베이터 가동이 안 되니 아이의 아빠는 공업용 산소통을 들고 와서 아이를 살리려 했습니다. 아기가 눈이 멀 우려가 있다며 사람들이 말리자 아빠는 "장님이어도 살아만 주면 좋다"며 애를 써 지켜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생명은 그 줄기를 이어나갑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시험 결과가 나쁜 사람도, 원하는 직장을 들어가지 못한 사람도,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 낙담한 사람도 모두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 날도 많을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팬데믹 사태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다시금 생을 이어가려는 인류의 분투와 노력이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정말로 그 끝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죽지 않고 ‘죽기 살기로’ 버티면 내일은 옵니다. 

또한 팬데믹 사태가 선명하게 한 것은 ‘격차’입니다. 사회적 자원이 준비되어 있거나 효율적인 시스템이 갖춰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사이의 차이는 매일같이 보여지는 통계를 통해 실감하게 됩니다. 비교적 안전한 나라인 한국 안에서도 더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생계를 위해 위험에 노출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모둠살이로 진화한 종이 각자의 성취의 공통 분모를 함께 공유할 때 생기는 필연의 경쟁은 성취를 거두는 자는 소수이고 다수는 실패를 맛보는 결과를 숙명적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침 오늘 점심 자리에서 만난 지인이 소셜미디어에서 회자되었다며 들려준 격언이 마음에 꽂힙니다. 

"친절하게 대하라. 만나는 모든 이들이 힘든 전투에서 투쟁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매일 삶 속의 전투를 치열하게 치르고 있습니다. 나뿐 아니라 상대도 각자의 링 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자신이 조금 더 어른이 되어있음을 느낍니다.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기도 하는 매일의 전투를 상처를 덜 받으며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나를 누르는 실망의 크기보다 샘솟아 키워나갈 희망의 크기에 집중해보시기 바랍니다. 더 어려운 곳에서 팬데믹 속 죽음의 그림자가 더욱 드러나게 한 것은, 지치고 절망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빛나는 의지였음을 함께 떠올려 주셨으면 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