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수, 이번엔 소·부·장 특허전쟁
입력 2020-09-08 00:04:01
수정 2020-09-08 00:39:01
#지난 7월 일본의 한 개인은 LG화학을 상대로 특허 등록에 대한 이의신청을 일본 법원에 제기했다. LG화학이 등록한 리튬코발트산화물을 포함한 2차 전지용 활물질(전지의 전극 반응에 관여하는 물질) 특허와 제조 방법 특허를 취소해 달라는 내용이다. 지난 3월에는 또 다른 일본인이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인 고영테크놀로지를 상대로 특허 이의신청을 냈다. 이 회사는 반도체 회로기판 검사 장비 관련 특허를 다수 갖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국이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국산화에 속도를 내자 일본이 ‘특허’를 무기로 반격에 나섰다. 특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소·부·장 국산화에 성급하게 나섰다가 일본 특허의 덫에 걸려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전히 높은 소·부·장 대일 의존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7일 글로벌 특허소송 데이터베이스인 ‘다츠 아이피’와 특허검색 사이트 ‘키워트’에 따르면, 올해 소·부·장과 관련해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소송은 6건이다. 지난해에는 4건이었다. 박승관 대한변리사회 연구관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전체 특허 분쟁이 한해 통상 50건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일본의 한 개인이 포스코를 상대로 수소·전기차에 들어가는 연료전지 분리판용 소재 특허에 대한 이의신청을 일본 법원에 제기했다. 3월에는 LG화학의 2차전지용 활물질 특허를 취소해 달라는 이의신청이 일본에서 제기됐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이 삼성SDI의 2차전지 생산 관련 특허 이의신청을 냈다.
주목할 것은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 대부분이 ‘이의신청’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의신청은 특허무효 소송이나 침해 소송에 앞서 ‘특허 자격이 없으니 등록을 취소해 달라’며 내는 소송이다. 박승관 연구관은 "이의신청은 법인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없는 개인도 낼 수 있다"며 "본격 특허 소송의 전 단계로 기업들이 자주 쓰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잇따르는 특허 이의신청이 본격적인 한·일 ‘소·부·장 특허 전쟁’의 서막이라는 얘기다.
최근 소·부·장 관련 일본의 특허 소송 사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변리사인 윤정호 키워트 대표는 "소·부·장 관련해 지난해부터 2차전지 분야에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일본의 특허 소송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의 경우 국내 기업들이 일본의 소재와 부품·장비를 여전히 많이 사용하기에 때문에 당장 눈에 띄는 특허 분쟁은 없지만, 기술 국산화 등의 변화가 생길 경우에는 2차전지 분야와 같이 특허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보여주기식 실적’에 매달려 소·부·장 정책을 밀어붙여선 곤란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최근까지 국내에서는 소·부·장 관련 핵심 특허 72건이 창출됐다. 일본이 첫 타깃으로 삼은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3대 반도체 소재 역시 국산화가 일부 진척됐다. 하지만 일본은 전통적인 소·부·장 강국이다. 한국의 대일(對日) 의존도 역시 여전히 높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산연구원에 따르면, 올 1~5월 기준 기초유분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94.8%, 반도체 제조 장비와 정밀화학 원료 의존도는 각각 86.8%, 78.1%에 달한다.
한 전자업계 임원은 "일본 수출 규제 이후, 국내에선 ‘한국 승, 일본 패’라는 평가가 많지만, 실상은 다르다"며 "특허 강국인 일본이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소·부·장 국산화가 무르익을 때를 기다린 후 특허의 허점을 노려 공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홍장원 대한변리사회 회장은 "일본의 경우 특허의 핵심 내용을 교묘하게 숨긴 채 권리 범위가 넓은 특허를 출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섣부른 특허는 일본 특허의 그물망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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