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강의’ 집중도 좋아졌지만…비싼 수업료에 불만도
입력 2020-11-07 00:20:03
수정 2020-11-07 10:42:00
지난 10월 핼러윈데이를 맞이해 강사와 학생들이 파티 복장으로 온라인 실시간(라이브)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크레오어학원]
"Good~. What happened to the yard?"
지난 2일 서울 대치동 크레오어학원. 영어 수업 중인 헬렌 강사가 컴퓨터 모니터 카메라를 향해 ‘엄지 척’을 보이며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화면 속 10명의 아이는 본인이 대답하겠다며 너도나도 손을 들어 ‘Me! Me!’를 외친다. 답을 한 친구에게 강사가 칭찬하자 다른 학생들도 제각각 카메라 앞에서 박수를 보낸다.
이 학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3월부터 모든 오프라인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해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 대부분이 초등학교 저학년임을 고려해 수업 집중도가 떨어지는 녹화 인강(인터넷 강의) 대신 실시간 라이브 수업 방식을 택했다. 주재훈 크레오어학원 이사는 "현장 수업에서 소극적이었던 학생도 옆 친구 눈치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라이브 강의로 학원 전체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서울 대치동 학원가가 기존 현장 수업 중심에서 벗어나 온라인 라이브 수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학원 내 집단 감염을 걱정하는 학부모와 학생을 위해 온라인 교육 콘텐트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라이브 강의는 기존 인강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문법에 맞춰 강사와 함께 호흡하며 수업을 한다는 점에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에어클래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온라인 개설 강좌 수는 직전 분기 대비 222% 증가했다. 특히 초·중·고 학생을 위한 라이브 강좌 수가 많이 증가하면서 1분기 매출은 직전 분기 대비 531% 상승했다.
초·중등 수학을 가르치는 대치동 캐슬 역시 지난 4월 실시간 라이브 수업을 위해 인터넷 설치에만 1000만원 넘게 투자했다. 코로나19로 학생들 발길이 끊기면서 고육지책으로 주말 수업 중 일부를 영상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을 이용한 게 의외로 학부모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대원 대표는 "라이브 방송은 학부모들이 학생 옆에서 직접 강사의 수업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신뢰를 주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라이브 수업의 가장 큰 매력은 ‘강의실’이란 공간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박여진(38·서울 도곡동 )씨는 "지난달 울산 여행을 가서도 아이가 숙소에서 시간 맞춰 태블릿PC로 수학 라이브 수업을 수강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지방과 해외에서도 강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고대원 대표는 "평소 서울에 위치한 학원의 강좌를 듣기 어려운 지역은 물론,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이집트의 카이로 등에서도 라이브 수업을 등록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 사는 학생이 한국 수업 시간에 맞춰 오전 1~4시까지 수업에 참여한 사례도 있다. 주재훈 이사 역시 "향후 베트남 현지 학생도 라이브 수업에 참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국내 학생과 해외 학생의 교류 장으로 발돋움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10대들은 디지털 기기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어 라이브 방송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없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유아기부터 장난감 대신 휴대전화와 태블릿PC를 익힌 세대다. 기성세대와 달리 별다른 도움 없이도 키보드와 카메라를 자유롭게 다룬다.
이정희 CMS에듀 교수·학습 개발본부장은 "수학 과목의 경우 필기가 필수인데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이지만 태블릿PC에 알아서 풀이 식을 쓰고 강사에게 전송한다"며 "오히려 부모가 아이 대신해주겠다고 나섰다가 어떻게 숙제를 전송하냐, 어느 버튼 눌러야 하냐고 학원에 문의하는 경우가 더 많을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학원 강사가 온라인 라이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을 칭찬하고 있다. 김나윤 기자
하지만 라이브 강의가 대면 수업의 효과를 대체하기엔 여전히 부족하단 시선도 있다. 수업료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 기존 현장 강의보다 20~30% 낮은 수준이지만 강의실 등이 필요 없는 점을 고려할 때 기대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학원 측에서는 강사 보수와 인프라 구축 비용 등을 생각하면 당장 확 낮아지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만 앞으로 라이브 강의가 대중화될수록 비용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학생들이 장시간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다. 개인정보 유출, 언어적 폭력 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에 따르면 학부모, 교사, 학생 총 7178명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온라인 수업으로 사이버 중독이 심화했다’는 응답이 78%에 달했다. 오프라인 수업의 경우 강사가 수업 시간 외에도 학생을 지켜보며 관리할 수 있고, 학생도 또래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며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
학원들도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CMS에듀는 지난 9월 라이브 수업을 확대하면서 기존 종이 교재 대신 온라인 교육 콘텐트를 별도로 제작했다. 수업 프로그램에 접속하면 문제 풀기부터 숙제까지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이정희 본부장은 "최근 오프라인 수업 센터와 별도로 온라인 교육 전용 시설인 ‘노이지센터’를 개관해 라이브 강의를 비롯한 각종 온라인 교육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고 말했다.
#크레오어학원은 클래스킥, 플립그리드 등 다양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활용해 학생들의 집중도를 끌어내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학생의 수준에 맞는 교재와 문제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이 같은 학원가의 솔루션과 노하우를 공교육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가에서는 라이브 수업 구축에 한창이다. 지난 10월 2202개 강좌를 모두 실시간 라이브 수업으로 전환한 한국교통대는 전담 인력 15명을 신규 채용했고, 교수들에게 영상 강의 운영 교육도 한다.
한양대는 지난 1학기 중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에서 동시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하이라이브(HY―LIVE)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온라인 수업에 기존 오프라인 수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학습 패턴 읽어낼 수 있는 머신러닝, 애널리틱스 기반의 다양한 콘텐트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여행 간 학생도 온라인 수업 참여, 지각·결석 되레 줄어「
송지현(사진) 크레오어학원 부대표는 서울 대치동이 사교육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초등학교를 다닌 ‘대치동 키드’다. 중·고교를 영국에서 다니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지난해 귀국해 대치동 학원가에 라이브 수업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학원에 100% 온라인 수업을 도입하겠다는 목표에 강사도 학부모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송 부대표는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다. 개인별 맞춤 학습이 가능하고 수업의 효율성·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등 장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사교육에 온라인을 왜 도입하나. "지금 당장 필요한 교육을 제일 빠르게 제공할 수 있는 게 사교육이다. 미국도 사교육 분야가 많이 커졌다. 뉴욕 초·중·고 학생들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코딩을 배우려고 사교육을 받는다. 성인들도 업무에 필요한 기술이 다양해지자 따로 시간과 돈을 내서 배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면서 기술이 산업을 어떻게 바꾸는지 봐왔는데, 교육은 왜 바뀌지 않는지 궁금했다. 줌·구글폼·슬랙 등 다른 업계에서 당연하게 쓰던 툴을 교육에 적용하면 많은 시너지가 난다는 걸 알았다."
학부모의 반응은. "처음엔 설득이 필요했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바로 오프라인 수업은 안 하냐는 불만이 들어왔고, 일부 학생들은 학원을 그만두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부모 입장에서 자녀의 수업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등·하원 부담도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여행 가서, 차 안에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지각이나 결석도 줄었다. 8월 이후 라이브 강의에 대한 인식이 늘었고, 본격적인 홍보에 나서지 않았는데도 수도권은 물론 대전·울산·제주 등에서 문의가 온다."
온라인 수업에서 중요한 점은. "하드웨어를 갖추고 콘텐트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생님이다. 똑같이 줌을 사용해도 기능을 얼마나 다양하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수업의 질은 천지 차이다. 게임과 채팅이 전부였던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고 친구들과 협업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최은혜 기자
'과학기술 교육과 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일보] 멘토링 자료, 영재학생, 과학영재 (0) | 2020.11.20 |
---|---|
[중앙일보] 과학영재, 음악, 수학공식 (0) | 2020.11.13 |
[중앙일보] 비대면 수업, 온라인 수업, 화상수업, 원격수업 (0) | 2020.09.24 |
[중앙일보] 멘토링 자료, 코로나 백신, 절제, 배려 (0) | 2020.09.02 |
[중앙일보] 멘토링 자료, 언던 사이언스 (0) | 2020.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