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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국방, 방위산업, 무기 국산화

FERRIMAN 2021. 1. 31. 10:27

국방비 50조 시대, K-방산은 여전히 '위기' [박수찬의 軍]

박수찬 입력 2021.01.31. 06:01 수정 2021.01.31. 10:15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차량이 한화디펜스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한화디펜스 제공

52조 8401억원. 올해 국방예산 규모다. 전체 국방예산에서 군사력 건설에 투입되는 방위력개선비는 16조 9964억원에 달한다. 미화로 환산하면 150억 달러가 넘는 돈이 무기 개발 또는 구매에 쓰이는 셈이다.

이는 국내 방위산업이 해외 시장에서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K-팝에 이어 K-방산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국내 방위산업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선진국은 첨단 무기 개발로 격차를 벌리고 있고, 개발도상국들은 정부 차원의 투자를 통해 우리나라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국가에서 무기도입 사업이나 방산전시회가 취소 또는 연기되는 것도 국내 방산업계의 수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가 제작한 K-9 자주포는 북유럽과 호주 등에 수출됐다. 한화디펜스 제공

◆자주포도 잠수함도…팔 수 있는건 다 판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한국군은 군복부터 전투기에 이르는 군수품과 장비 공급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해 해결했다. 부활호, 해취호 등 국내에서 개발된 군용기들이 일부 있었지만, 대량생산에 이르지는 못했다. 미국의 군사원조가 절실했던 시기였다.

1974년에 시작된 율곡사업은 국내 방위산업을 일으킨 계기였다.

주요 무기의 국산화를 통한 첨단 국방과학 기술과 방위산업의 기반을 조기에 구축하고, 독자적인 대북 억제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1974~1996년까지 진행된 율곡사업에는 해당 기간 국방비 중 31.8%에 해당하는 34조4787억원이 투입됐다. 

F-4 전투기, 209급 잠수함 등 해외에서 들여온 무기도 많았지만 국내에서 생산된 장비도 적지 않았다. M-16과 K-1, K-2 소총, K-1 전차, 울산급 호위함 등을 개발하고 F-5 전투기를 면허 생산했다.

FA-50 경공격기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KAI 제공

이를 통해 국내 방위산업은 무기 제작과 개발에 필요한 경험을 축적했다.

그 결과 한국군의 주요 장비들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을 쓰고 있다. 방산업체들은 핵심 무기를 해외에 판매, K-방산 시대를 열었다.

한화디펜스가 제작한 K-9 자주포는 해외 시장에서 각광받는 대표적인 K-방산 아이템이다. 지난해 호주 육군이 도입을 결정했으며, 터키, 인도,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에도 수출됐다. 

K-9 자주포는 한국군이 1300여대를 운용하고 있어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다. 덕분에 대당 단가, 운영유지비가 독일 등 경쟁제품보다 낮고 한국군이 성능개량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지속적인 유지보수 및 개량이 가능하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생산하는 T-50 고등훈련기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 주로 수출됐다. 제한적이나마 지상 공격이 가능한 경공격기로도 쓰일 수 있어 개발도상국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KT-1 초등훈련기는 인도네시아, 터키, 페루, 세네갈에 판매됐다.

이밖에도 소형전술차량과 트럭, 소총 및 탄약, 현궁 대전차미사일, 호위함, 잠수함 등도 제3세계 국가에 수출됐다. 소총 등은 현지 반군이 노획하거나 암시장에서 밀거래되고 있는데, 성능이 우수해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디펜스의 레드백 장갑차는 2020년대 한국 방위산업의 기대주다. 호주 육군이 신형 장갑차 400여대를 도입하는 ‘랜드(LAND) 400 3단계 사업’에서 독일 라인메탈디펜스의 링스 장갑차와 함께 최종 후보에 포함됐다.

시제품 3대가 호주 현지에서 다음달부터 시험평가에 돌입한다. 내년 상반기쯤 기종 선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레드백은 호주 육군의 요구에 맞춰 개발된 차세대 장갑차다. 한화디펜스의 개발 역량과 호주, 이스라엘, 캐나다, 미국 등의 기술이 접목됐다. 

이스라엘 방호 전문 업체 플라산(Plasan)과의 기술 협력을 통해, 특수 방호 설계 및 강화 구조가 적용됐다. 특수 설계된 폭발 충격 완화장치를 추가로 장착했다. 복합소재 고무 궤도를 장착해 주행성능과 내구성을 높이고 진동과 소음은 줄였다.

차량 내부에서 특수 헬멧을 쓰면 고글 화면을 통해 전차 외부 360도 전 방향을 감시할 수 있는 아이언 비전(Iron Vision) 헬멧 전시 기능, 첨단 전투기 레이더로 쓰이는 다기능위상배열레이더(AESA)을 이용해 적 대전차미사일을 사전에 포착해 요격하는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능동방어 기술도 적용됐다. 

한화디펜스가 제작한 레드백 장갑차가 호주 현지에서 시험주행을 하고 있다. 한화디펜스 제공

◆추격형 전술로는 한계…발상의 전환 필요

국내 방위산업은 짧은 시간 안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위기 국면도 심화되는 모양새다.

흑표 전차 생산량이 K-1 전차보다 훨씬 적은 것처럼 한국군은 과거처럼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을 수백~수천대씩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수출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수출조차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이같은 위기는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2010년 싱가포르에 대한 T-50 수출 실패는 그 서막이었다.

당시 UAE는 산업협력을, 싱가포르는 비행장 등 훈련시설과 인력 등 ‘패키지’를 요구했으나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

과거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살리지 못하면서 수주 실패는 반복됐다. 2018년 9월 KAI는 18조원 규모의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미 보잉·스웨덴 사브 연합군에 패했다.

KT-1 초등훈련기 편대가 훈련을 위해 활주로에서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KAI가 개발한 수리온 헬기는 2018년 말 필리핀 헬기 사업에서 미 록히드마틴 UH-60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필리핀은 같은 해 6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방한 이후 수리온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 등에서 UH-60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필리핀 외에 다른 국가들도 수리온에 관심을 보였지만 성과는 없다. KT-1도 수주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다.

T-50과 잠수함을 도입했던 인도네시아는 한국형전투기(KF-X) 공동개발국이나 2016년 이후 지금까지 분담금을 제대로 내지 않았다. 지난달 기준 미납액 규모는 6044억원에 달한다.

인도네시아는 프랑스와 라팔 전투기, 잠수함, 초계함 등을 도입하는 방안을 놓고 협의 중이다.

K-2 전차 도입 가능성이 제기됐던 폴란드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30㎜ 기관포와 신궁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을 결합한 비호복합체계 인도 수출도 진척이 없다.

국산 훈련기를 스페인 공군이 인수할 A400M 수송기와 맞교환하는 거래는 스페인측이 훈련기 자체 개발을 선언하면서 흐지부지됐다.

이같은 상황은 예견된 것이었다. K-방산이라는 찬사 뒤에는 내실보다 외형 키우기에 급급했던, 외국의 사례를 추종하는 ‘추격형 전략’의 한계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실패로 끝난 K-11 복합소총이다. 소총과 유탄발사기를 결합한 복합소총은 미국에서 처음 개념이 등장했다. 우리 군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개발에 나섰다. 

한국형전투기(KF-X) 시제1호기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2010년부터 보급됐으나 수차례의 폭발 사고, 총기파손, 탄결함 등이 이어지면서 사용중단→원인규명→제품수정을 반복하다 2019년 퇴출됐다. ‘친구 따라 강남 갔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내 기술수준, 작전적 효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소요제기가 필요하다. 각 군 담당자들의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K-방산의 핵심 아이템은 선진국들이 개발했던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방산업체와 차별화된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수출 실적이 있는 장비들이 동남아나 중동 등 일부 국가에서 채택된 수준에 머무르는 이유다. 

인도네시아에 판매한 국산 잠수함이 추가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프랑스, 독일산과 비교해 뚜렷한 경쟁우위가 없기 때문이다.

T-50도 일부 개량을 했지만, 복합소재 적용 등 첨단 기술을 대거 투입해 비용을 절감한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밀려났다.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직원들이 항공기용 엔진을 정비하고 있다. 한화 제공

K-9 자주포는 ‘규모의 경제’와 ‘가성비’라는 장점이 주목을 받아 북유럽과 호주에 수출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미국의 차세대 자주포가 등장한 후에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이어갈 지는 미지수다. 

단순히 기존에 개발한 무기를 시장에 내놓는 것으로는 K-방산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한화디펜스의 레드백처럼 기존 장비보다 우수하고, 구매대상국의 군사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무기 도입부터 폐기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걸친 솔루션도 필요하다. 무기는 20~30년 이상 사용하므로 지속적인 성능개량과 운영유지가 보장되어야 한다.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큰 항공무기나 군함 등은 이같은 점이 더욱 중요하다.

무기 구매국이 매력을 느낄만한 성능개량, 운영유지 기법 등을 제안해야 구매국도, 국내 방산업채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도 절실하다. 많은 나라들은 무기를 살 때 자신들의 안보 현안에 대한 해결책, 전략적 관계발전, 군사협력, 금융지원, 운용체계 구축 등을 요구한다. 기업 차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과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이유다.

프랑스는 국가적 차원에서 방산수출 전략이 수행된다. 터키와 대립하는 그리스의 안보 문제를 감안, 그리스에 라팔을 수출하면서 최신 공대공미사일인 미티어와 수백㎞를 날아가는 공대지미사일 스칼프를 함께 공급하기로 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대치하는 인도네시아에는 라팔 전투기와 스콜펜급 잠수함, 고윈드급 초계함 등을 패키지로 제안하고 있다. 

국산 수리온 수송헬기가 활주로에서 대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구매국에 대한 금융지원, 옵션 제공도 다양하게 이뤄진다. 프랑스는 무기 가격을 인하하지 않는 대신 옵션을 더 많이 제공해 구매국의 수요를 충족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프랑스산 무기의 가격이 저렴하지 않은데도 수출 실적이 좋은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는 KF-X 공동개발국 인도네시아의 이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 마케팅도 어렵다. 업계의 위기감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려면 범정부적 차원에서 방산수출 전략이 추진되어야 한다. 현재의 방위산업 제도는 구매대상국들의 수요를 제대로 충족하기 어렵다.

구매대상국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갖추고, 수출 촉진을 위한 기술 개발과 국방전략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내 방산업계는 세계 시장에서 영원히 밀려날 지도 모른다.

박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