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에너지

[중앙일보] 플라스틱, 환경오염, 공해, 쓰레기, 비닐,

FERRIMAN 2021. 2. 16. 10:26

[최준호의 사이언스&] ‘플라스틱 수프’ 세상, 벗어나려면 100년도 더 걸려

입력 2021-02-16 00:21:12

 

 

‘우리나라에서도 십여 종에 일용품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의 용도는 극히 좁은 범위에 국한되어 있다. 선진국에서는 일용품을 위시하여 전기·전자기계 부분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안 쓰이는 곳이 없다.’ 

1959년 4월 16일자 한 국내 일간지가 ‘플라스틱 공업’에 대해 쓴 기사 중 일부분이다. 기사는 플라스틱을 ‘이십세기의 총아(寵兒)’ ‘세기의 혁명’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극찬하며 서구 선진국의 가공기술을 부러워했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20세기 초 등장한 플라스틱이 ‘총아’에서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떨어지는 데는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워낙에 뛰어난 탓이다. 값싸고 튼튼한 데다, 뭐든 만들기 쉽다. 이 때문에 플라스틱 생산은 급증해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195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50만t 정도였지만, 2017년 3억5000만t으로 급증했다. 세계의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가 지금처럼 계속 증가한다면 2050년에는 340억t에 달한 것으로 전망된다. 

SKC에서 생산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땅 속에서 분해되면 물과 이산화탄소만 남는다.

뒤늦게 경각심이 확대되고 있지만, 플라스틱 사용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 인류는 플라스틱 중독에 빠졌다. 설상가상, 지난해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플라스틱 의존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집콕’ 생활에 급증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 포장, 배달음식 용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젠 필수품이 된 일회용 마스크의 주원료도 석유계 화합물인 프로필렌으로, 일종의 플라스틱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매달 세계에서 폐기되는 마스크가 1290억장에 달한다. 

버려진 플라스틱의 종착역은 바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매년 바다로 흘러드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950만t에 달한다. 그것도 2017년 기준이다. 언제부턴가 태평양에 ‘플라스틱 섬’이 생겼다는 말이 오더니 이젠 ‘플라스틱 수프’란 표현까지 등장했다. 플라스틱이 잘게 쪼개져 미세 플라스틱, 나노 플라스틱으로 변신해 식탁에까지 오르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약 2000개, 무게로 따지면 신용카드 한장에 해당하는 5g이다. 플라스틱 수프는 그냥 찝찝한 데 그치지 않는다. 경희대 동서의학연구소 박은정 교수가 지난해 5월 국제학술지 톡시콜로지 레터스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을 지속해서 섭취할 경우 임신과 출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결책은 없을까. 당장 환경오염도 심각한 문제이고, 석유가 고갈된 세상에 살아갈 후손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기술이 플라스틱을 세상에 불러냈으니, 해결도 과학기술의 몫이다. 이제 시작이라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 추이

하나는 옥수수 전분에서 얻은 폴리락틱산(PLA:poly lactic acid)으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석유계 합성물질 PBAT다. 둘 다 땅속에 묻으면 6개월 내로 생분해돼 물과 이산화탄소만 남게 된다. 둘 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건 맞지만, 석유계인 PBAT는 그 자체가 새로운 탄소화합물이란 점에서 바이오 플라스틱과는 차이가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분해’라는 특징 때문에 주로 비닐봉지 등 얇은 제품에 많이 쓰인다. 하지만 생분해성 비닐봉지는 가격이 기존보다 3배 이상 비싼 데다 ‘잘 찢어지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서구에서 상용화에 성공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제한적으로 쓰일 뿐이다. 최근 이런 단점을 극복한 연구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4월 한국화학연구원은 기존 생분해성 비닐봉투보다 인장강도가 2배 이상 향상된 PBAT 기반 생분해성 고강도 비닐봉투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이 기술은 현재 국내 대기업 SKC로 이전돼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SKC는 PBAT를 활용한 쓰레기 봉투와 일반 비닐봉지, 농업용 멀칭필름, 빨대와 같은 일회용품을 시험생산 중이다. LG화학 역시 지난해 10월 옥수수 성분 등 바이오 함량 100%의 소재로 만든 생분해성 신소재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LG 측은 향후 2~3년 내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르면 생분해성 소재 시장은 2019년 4조2000억원에서 2025년 9조70000억원 규모로 연평균 약 15% 성장할 전망이다. 김형모 SKC 친환경/반도체 기술팀장은 "현재 폐플라스틱 이슈가 되는 것은 주로 일회용으로 쓰는 것들"이라며 "생분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제품이 널리 쓰이게 되면 환경오염 문제도, 쓰레기 매립지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공언한 대로 탁월한 물성의 생분해성 소재를 시장에 내놓는다면 플라스틱 환경오염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수 있을까. 답은 ‘그래도 갈 길이 멀다’이다. 과학자들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땅에 묻거나, 강·바다에 버린다고 저절로 분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생분해 플라스틱은 섭씨 58도 이상, 미생물이 자랄 수 있는 특정 조건에서만 분해된다. 다른 쓰레기와 함께 매립지에 버린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황성연 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장은 "현재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자면 플라스틱이 대체되기까지 앞으로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며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정책적 뒷받침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