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상

[중앙일보] 세계 속의 한국, 한국의 경쟁력, 프랜차이즈, 소상공인

FERRIMAN 2022. 4. 5. 17:57

가맹점주 공동구매 늘리며 자생력 키워가야

중앙일보

입력 2022.04.05 00:36

 

프랜차이즈 시대, 자영업자 생존법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설립된 이래 수십 년간 공정거래 정책의 핵심 이슈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막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핵심 이슈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영업 시장에 기업형 사업자가 침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사업자, 플랫폼 사업자의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자영업 시장에 뛰어든 기업형 사업자라는 점이다. 이들의 자영업 시장 진입 과정에서 자영업자들과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갈등이 심해지면서 공정거래 정책의 핵심 이슈로 부상하게 됐다.

대형마트가 급격히 늘어난 2000년대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침투 문제가 이슈화했고 프랜차이즈 사업이 급속히 퍼진 2010년대에는 프랜차이즈 사업자의 갑질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근래에는 플랫폼 경제의 급속한 확산 과정에서 플랫폼 독점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자영업자와 기업형 사업자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부단한 정책적 노력이 있었고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상생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다면 자영업 시장의 상생이라는 난해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근본적 해법은 무엇일까?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프랜차이즈 시장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가맹본부는 기업형 사업자 성격
가맹점들 매출 향상엔 관심 적어

프랜차이즈 사업자의 갑질 논란
시설비·물품공급 통해 수익 올려

가맹점 옆에 또 가맹점, 갈등 커져
로열티 구조로 바꿔야 상생 가능

갈등 유발하는 프랜차이즈 구조

프랜차이즈 산업이 급성장하는 것에 비례해 기업형 사업자인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와 자영업자인 가맹점주 간의 갈등도 증폭됐다. 가맹점의 근거리 중복 출점, 가맹점 인테리어 등 시설비 및 물품 공급 가격 폭리 등 가맹점주에 대한 가맹본부의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갑질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졌고 이런 노력으로 노골적인 갑질 행위가 많이 개선되고 표면적으로는 갈등의 골도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한·미·일 프랜차이즈 가맹점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은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주 소득원이 가맹점 매출의 일정 부분을 수취하는 로열티 수입이 아니라 가맹점 시설비나 물품 유통 마진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이런 수입 구조 아래서 가맹본부의 관심이 기존 가맹점의 매출 증대보다 가맹점 수 확대에 쏠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 가맹점의 매출 감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가맹점을 바로 옆에 출점시키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그래서 한국의 프랜차이즈 시장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가맹점 수는 많고 가맹점당 매출은 아주 적은 기형적인 구조를 띠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프랜차이즈 업계의 수익 창출 구조 아래서는 가맹점과 가맹본부 간에 이해 상충이 불가피하다. 갈등을 줄일 수는 있지만, 상생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가맹본부의 물품 강매 등으로 비용절감의 길이 봉쇄된 상황에서 가맹점의 과다 출점으로 매출 규모까지 제한되니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가맹본부 입장에서도 매출 증대 노력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만드는 지금의 구조가 길게 보면 진정으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상생도 안 되고 성장도 안 되는 구조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놔둔 채 정부정책은 가맹본부의 가맹점 사기 행위와 부당한 폭리 행위를 막는 데 집중해 왔다. 정보공개제도 도입, 착한 프랜차이즈 선정 제도 등이 그런 정책들이다. 이런 정책들이 혼탁한 시장을 일정 부분 정화하는 효과를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공동의 이익 증대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근본적 한계는 여전히 남는다.

미국도 초기엔 가맹점주 착취당해

이런 우리나라 현실에서 미국의 프랜차이즈 산업 성장 역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역시 프랜차이즈 산업 발전 초기에는 지금의 우리나라와 같이 가맹본부의 주 수익원을 가맹점에 공급하는 물품 유통 마진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물품구매를 강제 또는 폭리를 취하거나 허위정보 제공 등의 가맹점 사기 행위가 만연했다.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미국 법원은 물품구매 강제가 반독점법 위반이라고 판결하는 한편 정부는 사기 방지를 위해 정보공개 제도를 의무화하는 등 환경 정비에 나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대책들이다.

미국 프랜차이즈 산업 관련 주요 사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미국 프랜차이즈 업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갔다. 가맹점들이 가맹본부로부터 물품을 직접 공급받는 데서 탈피해 별도로 공동구매 조직을 만들어 물품을 구입하는 변신을 시도했다. 가맹본부로부터 강제로 물품을 공급받을 때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해진 것은 물론이다.

가맹본부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물품 공급 역할을 줄이고 광고와 홍보 등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문에 집중해 가맹점 매출을 증대시키는 데 전념했다. 그 과정에서 물품 유통 마진에 의존하던 수익의 원천도 자연스럽게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취득하는 로열티 수입으로 전환되는 구조변화가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적으로는 물품조달 비용은 절감하고 매출은 증가함으로써 가맹점주와 가맹본부가 윈윈하는 구조로 진화 발전했다. 진정한 상생의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규제보다 시장원리가 상생 촉진

지금 우리의 현실은 미국 프랜차이즈 산업 발전의 중간 과정을 밟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장 정화 노력으로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시장도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는 환경적 발판은 마련됐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상생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 프랜차이즈 시장이 상생하면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장기능을 십분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늘리는 데 유리한 로열티 형태로 수익구조가 변화해 가야 한다.

이런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풀어내야 한다. 첫째, 로열티 구조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정책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하나의 예로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상생 발전을 유도하기 위해 제정된 ‘가맹 상생 협약 평가 기준’에서 현행 5% 내외에 불과한 로열티 구조 관련 항목 비중을 파격적으로 높여 로열티 구조를 채택할 실질적 유인을 갖게 해야 한다.

둘째, 가맹점주 단체의 역량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 가맹점주 단체가 물품 구매 권한을 갖게 되더라도 공동구매 조직이나 구매협동조합 등을 운영할 능력이 부족하면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로열티 구조 정착의 기본 조건인 가맹점 매출실적 투명화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보다 보편화한 카드 및 모바일 결제 문화, 완비된 POS(판매정보관리) 시스템 등 잘 갖추어진 거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비현금 거래 관행을 더욱 정착시켜 매출실적 투명화 정도를 높여야 한다. 한마디로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그리고 정부 등 프랜차이즈 업계 이해 관계자 모두의 공동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상생은 규제와 감독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시장경쟁 원리에 기반해 구매와 판매 등 경영 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성장을 하고 상생도 가능해진다. 물론 이런 원리는 비단 프랜차이즈 산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상생 이슈가 있는 모든 곳에 적용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자영업 더 어렵게 만들어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스태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원자재 가격 폭등 등 공급요인에 의한 물가 급등과 함께 경기침체가 몰아쳤다. 프랜차이즈 업계에 필요한 원부자재 등 물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프랜차이즈 업계도 위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미국 프랜차이즈 업계의 수익구조 전환 시도도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하겠다.

그런데 40여 년 만에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다. 공급 부문 발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재화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갈등의 골이 깊은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계는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방편으로서도 프랜차이즈 산업의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