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줄은 서로가 가여워서 살고....]
우리 속담에 첫사랑 삼년은 개도 한다 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사랑이 개의 사랑과 달라지는 것은
결국 삼년이 지나고 부터인데
우리의 속담은 기나긴 자기 수행과 같은
그 과정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열 살 줄은 멋 모르고 살고
스무 줄은 아기자기하게 살고
서른 줄은 눈 코뜰 새 없어 살고.
마흔 줄은 서로 못 버려서 살고
쉰 줄은 서로가 가여워서 살고
예순 줄은 서로 고마워서 살고
일흔 줄은 등 긁어주는 맛에 산다.
이렇게 철 모르는 시절부터
남녀가 맺어져 살아가는 인생길을
이처럼 명확하고 실감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자식 기르느라 정신 없다가 오십에 들어서니
소 닭 보듯이
닭 소 보듯이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고
서로가 웬수 같은데
어느날 머리칼이 희끗해진 걸 보니 불현 듯 가여워진다.
그리고 서로 굽은 등을 내보일 때쯤이면
철없고 무심했던 지난 날을 용케 견디어준
서로에게 눈물나게 고마워질 것이다.
오십대는.....
어디를 향해서 붙잡는 이 하나도 없지만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바람부는 날이면 가슴 시리게 달려가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미친듯이
가슴이 먼저 빗속의 어딘가를 향해서 간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함께 늙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겨울의 스산한 바람에도 온몸엔 소름이 돋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육체는
그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가지만
시간을 초월한 내면의 정신은
새로운 가지처럼 어디론가로
새로운 외면의 세계를 향해서
자꾸자꾸 뻗어 오르고 싶어한다.
오십이 넘으면 하던 일 접어두고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삶에 대한 느낌은
더욱 진하게 가슴에 와 머무른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나
허지만 난 싫다.
더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난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다.
오십을 지천명의 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
그래서 젊은 날 내안의 파도를
그 출렁거림을 잠재우고 싶었기에
오십만 넘으면
더 이상의 감정의 소모 따위엔
휘청거리며 살지 않아도 되리라 믿었다.
이제 오십을 넘어
한살 한살 세월이 물들어가고 있다.
도무지 빛깔도 형체도
알 수 없는 색깔로 나를 물들이고
갈수록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의 파도는
더욱 거센 물살을 일으키고
처참히 부서져 깨어질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바람의 유혹엔
더 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지천명
아마도 그건 잘 훈련 되어진
완전한 정숙함을 가장한
삶의 이론 뿐인가보다
오십 하고도 귀가 달린 이제서야
가장 약한 나이가
오십대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도
더없이 푸른 하늘도
흘러가는 회색빛 구름도
창가에 투명하게 비치는 햇살도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코 끝의 라일락 향기도
그 모두가 다 내 품어야 할 유혹임을
끝 없는 내 마음의 반란임을....
창가에 서서 홀로 즐겨 마시던 커피도
이젠 누군가를 필요로 하면서
같이 마시고 싶고
늘 즐겨 듣던 음악도
그 누눈가와 함께 듣고 싶어진다.
사람이 그리워지고
사람이 만나고픈
그런 나이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싶다.
오십대면 사소한 것 까지도 그리움이 되어 버리고
아쉬움이 되어 버리는 거
결코 어떤 것에도 만족과 머무름으로
남을 수 없는 것이
슬픔으로 남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이제 나는 추억을 먹고 사는게 아니라
추억을 만들면서,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내 진심으로 사랑을 하면서
멋을 낼 수 있는 그런 나이로
진정 오십대를 보내고 싶다.
오십대란 지천명이 아니라
흔들리는 바람이고
끝없이 뻗어 오르는 가지이기 때문이다.
<출처 : 草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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