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활동

[사이언스타임즈]영국 웨지우드 자기

FERRIMAN 2008. 4. 15. 12:41

진보와 고전 사이에서, 웨지우드 자기 영국 국립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소장 도자전 2008년 04월 11일(금)

주변을 둘러보면 다양한 형태의 자기들이 주변을 꾸미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난 명품이 있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값싸게 살 수 있는 작은 소품들도 있다.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형태나 도안이 주변과 어울리며 그 멋을 자랑하고 있는가이다. 자기의 도안이나 형태, 즉 자기의 디자인은 자기의 멋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그 시대의 문화를 말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느 누군가에게 “산업디자인은 20세기의 예술이다”라는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말 사이에 어떠한 차이를 느낄까. 예술이 디자인이고 디자인이 예술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커다란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은 구상과 제작 과정에서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받는 예술가에 의해 소량 창작된다면, 산업 제품은 어떠한 자율성도 갖지 않은 생산 체제 내에서 대량으로 생산된다. 특히 산업 제품을 장식하고 있는 디자인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결부된 자유로운 예술 활동의 산물과 거리가 멀다.

▲ 부처님께 올리는 맑은 물을 담는 병, 한국, 고려, 1150-1200. 
▲ 포클랜드 병 '초판본', 영국 스태퍼드셔, 1790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가들은 새로운 제품을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 ‘디자인’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기업가들은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제품의 기능을 한 단계 높이고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힘썼다. 특히 동일한 기능을 가진 제품의 경우에, 기업가들은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보다 새로워진 디자인으로 꾸며진 제품의 출시에 열을 올렸다. 소비자들은 디자인을 보고 소비 욕구를 느끼고, 기업가들은 소비 욕구를 자극시키는 디자인을 찾기 위해 힘썼다. 디자인이 기업가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후반 산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졌고, 사람들에 따라 그 혜택에 대한 반응 정도는 달랐다. 산업 발달이 괄목할 만한 수준에 오른 영국의 중상류층에 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진보가 유익하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이 무렵에 발명된 증기기관은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보다 새롭고 발전된 문물로서 발명된 증기기관은 제조 산업의 효율성과 교통수단의 가속화를 가져왔다. 다른 한편 숙련된 장인들이 월급 받는 노동자로 전락하고, 도시는 건강에 해로운 장소로 변하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그 모든 변화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들이 진보라는 이름 아래 수용되었다.

▲ 용무늬 납작 병, 중국 징더전, 원, 1300-1368 
▲ 이젤 앞의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 프랑스 발로리, 1954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진보는 이미 과거에 이루어졌고 인류는 발전의 정점에 도달해 있으며 현재나 미래에 더 이상의 진보는 없다”고 주장했다. 간혹 강한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새롭게 건설된 산업화된 공장들과 그 공장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 갖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 중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산업단지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곳을 둘러본 사람들은 “시골의 전통적 가치들을 모두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면직 공장들의 난립이다”라고 말하며 산업단지를 혐오했다.

사람들은 진보에 현혹되었던 것과 동시에 ‘아주 먼 과거’에 빠져들었다. 산업단지가 가져온 오염과 매연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고대 유물이나 유적지를 찾아 떠났다. 그들은 여행을 하면서 “국토가 철도로 덮이기 전에 그리고 사유화되기 전에 여행길에 나섰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라는 상념에 잠겼다. 유물에 대한 관심은 동시대인들의 취향으로 발전했고, 그러한 취향이 투영된 신고전주의 예술품들이 창작됐다.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서 신고전주의 운동은 18세기 전반기에 유행했던 로코코 스타일에서 보기 어려운 '형태와 표현의 순수성' 즉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유물들이 보여주는 어떤 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즉 신고전주의 작품들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이미지와 형태에 근대인들의 감성을 함께 아우르고 있었다.

▲ 웨지우드 가문의 도자기 전시실 광경 

유럽인의 취향을 담은 디자인으로 장식된 새로운 것들이 생산되어 선보였다. 당시에 기업가들은 성공적인 디자인을 얻기 위해 보다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을 고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다고 디자이너들이 예술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은 아니다. 제품의 디자인에 예술적 상상력이 넘쳐 났다 할지라도, 제품의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그대로 담기보다 이익 창출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작용했다. 디자인은 제품의 본질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도록 유도했고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 디자인은 그 시대의 문화를 담고 있었던 만큼 20세기의 제품에 미래지향성을 추구한 이미지가 담겨졌다면, 18세기의 제품에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고풍스러운 이미지’가 담겨졌다.

20세기에 등장한 라디오는 이상향에 대한 동경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920년대 방송이 시작되었을 무렵 라디오는 저항기와 전선 그리고 밸브가 연결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업가들은 라디오를 더 많이 팔기 위해 라디오의 외관, 즉 디자인에 신경 썼다. 그 결과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에, 무선 라디오라는 같은 기능을 가진 상품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라디오가 출시되었다. ‘옛 가구 스타일을 본 딴 캐비닛 안에 라디오를 넣은 과거지향적인 디자인’ ‘캐비닛과 전혀 상관없이 소파 같은 가구 안에 라디오를 숨긴 디자인’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캐비닛 안에 라디오를 넣은 디자인’이 있다. 이처럼 고풍스러움, 은폐하기, 미래지향성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꾸며진 라디오가 순서대로 판매되었고, 미래지향성을 강조한 라디오가 일상적인 삶에 자리 잡았다.

미래지향적 이상향을 담은 제품이 널리 판매된 것과 다르게, 과거를 담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자기’가 널리 판매됐다. 동양에서 발달한 자기가 산업혁명을 거치고 있던 유럽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판매됐다. 자기는 하나의 상품이었다. 자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상품 판매를 통한 이익 추구라는 테두리 내에서 결정됐다. 웨지우드 자기는 자기 디자인에 신고전주의 양식을 도입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에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주석 컵으로 뜨거운 액체를 마시는 대신에 도자기 컵을 이용하면서 자기 판매량이 증가했다. 또한 식민지 개척으로 해외 시장이 확대되면서 자기 판매량이 증가했다.

▲ 30갤런들이 물병, 영국 스태퍼드셔, 1830년경 

웨지우드(Josiah Wedgwood)는 대량생산 방식, 뛰어난 마케팅 기술, 도자기의 겉모양 즉 디자인에 역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크림유 자기(creamware shape)는 요철 장식 대신에 유약을 입히고 그 위에 손으로 도안을 그리거나 전사지를 이용해 장식했다. 그 결과 요철 장식을 하고 유약을 발라 색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바로크 풍의 초기 형태에서 단순성을 강조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바뀌었다. 1756년 샤롯데 여왕이 식기 세트 일체를 크림유 도자기로 주문하자, 웨지우드는 이름을 크림웨어에서 ‘퀸스웨어(Queensware)'로 바꿨다. 이후 웨지우드는 순수성과 단순성이라는 신고전주의적 가치관을 자기에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웨지우드는 1769년에 벤틀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신고전주의 양식을 드러내는 장식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실용적인 그릇들도 신고전주의적 경향이 강해졌다. 동업자인 토마스 벤틀리는 서인도 제도에 그릇을 수출하는 상인이자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술적 취향을 잘 아는 교양인이었다. 그들은 고전주의 스타일을 적용한 꽃병, 항아리, 작은 입상, 카메오, 도자탁상 같은 장식용 자기를 생산했다. 그들이 장식용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무렵, 영국의 장식용 자기는 바로크적이고 무거운 느낌이 강했다.

대표적으로 벤자민 웨스트의 작품 <에트루리아, 1791>는 당시에 도자기를 생산하는 웨지우드 공장을 고전시대의 풍경으로 표현했다. 웨지우드에 설립된 새 공장인 에트루리아(Etruria)는 제작 방식과 제조 과정상 분업도가 높은 곳으로 전 유럽에서 명성을 날리던 곳이었다. 작품 <에트루리아>을 보면 예술적 공예품을 배경 삼아 로마시대 여인들처럼 옷을 입고 나른한 고전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도자기 장식가들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웨지우드 공장의 실제 모습을 재현했다기보다 고대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었다.

▲ 받침대 위의 아폴로 흉상, 프랑스 루앙 니콜라 푸케이, 1730년경 

진보가 유익하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지우드는 뛰어난 자기 기술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고대의 이미지를 가져왔다. 웨지우드는 1세기경 로마시대에서 유명한 카메오 유리 꽃병이었던 포클랜드 꽃병을 복제한 <포클랜드 꽃병 복제품(1790)>을 제작했다. 그것은 원본과 똑같이 만드는 기술 자체의 복제가 아니라 당시 제조기술의 우수성과 함께 신기술의 놀라움, 즉 '자신의 기술적 승리였던 검정색 재스퍼'를 알리기 위해 고대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었다.

당시에 진품 고대 조각상이나 꽃병 등의 유물은 신고전주의 실내 장식에 적합했지만, 진품 공급이 부족해 사람들은 대용품을 찾고 있었다. 웨지우드는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포클랜드 꽃병 복제의 성공을 널리 알리기 위한 '사회적 이벤트’로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웨지우드는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평범한 도공에서 첨단 양식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게 됐다.

물론 웨지우드는 보다 좋은 자기를 생산하기 위한 기술 발명과 혁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실험노트에 기존에 자기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방법으로 유약의 효과, 자기를 굽는 온도, 흙의 선택, 가마 속에 들어가는 것들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기록되어 있다. 웨지우드는 기업 활동만큼 새로운 기술의 발명과 혁신을 중시하여 제조업자 혹은 과학실험가로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업 초기에 자신의 기술적 성과를 널리 알리는 대신에 초기에 제작된 카탈로그에 새로운 생산시스템 개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새로운 상품이 나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는 '계속되는 개발’에 대해 언급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웨지우드는 당시 사람들이 주저하던 진보적 측면을 감추기 위해 새로운 기술에 대해 선전하지 않았고, 대신에 신고전주의 양식을 디자인에 도입하여 고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 헤베 상, 덴마크 코펜하겐, 1871 

이번에 전시되는 <세계명품도자전>에 ‘포클랜드 꽃병 복제품’을 포함하여 웨지우드가의 자기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번에 전시를 담당한 영국 국립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Victoria & Albert Museum)은 영국이 세계 최초의 박람회였던 1851년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후 남은 수익금으로 만든 사우스켄싱턴박물관의 이름을 1899년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의 이름을 따서 바꾼 세계 최고의 공예박물관으로서 세계 각국의 유명한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시공을 초월하여 고대부터 20세기까지 세계 곳곳의 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대문화, 동아시아의 도자 발전, 주석 유약과 러스터: 중동에서 유럽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도자 혁신, 아시아와 서구: 교역과 상호 교류, 유럽 자기, 스태포드셔의 산업화, 과거와 자연으로부터 영감, 20세기의 도자” 등 9개의 테마로 구성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다른 대륙으로 전해지면서 초기의 모방단계에서 자기화의 과정을 거치는 동서양 도자 교류사 나아가 문화 교류사를, 이번 전시는 말해준다.

전 시 명: 세계명품도자전 - 영국 국립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 소장 도자전
전 시 장: 서울 중구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전시실(구 호암갤러리)
전시기간: 2008.3.14 - 2008. 6.23
전시문의: (02) 3789-5600, 5602~4
홈페이지: http://www.vakorea.net

공하린 객원기자

저작권자 2008.04.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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