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대답한다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위들이 '그렇다'. 사위는 '백 년 손님'이라고 한다. 자식처럼 사랑스럽지만 손님만큼이나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 말은 장모가 사위에게 하는 말이다. 장인의 입장에서 사위는 '백 년 도둑'이다. 몇 십 년간 곱게 키워온 딸을 창졸지간에 훔쳐간 도둑, 그 혐의의 주고받음으로 인해 장인과 사위는 씨암탉 정도로는 풀 수 없는 미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그것처럼 늘 어색하다.
그런 장인을 사위도 이해한다. 다만, 세상의 남자가 모두 도둑과 늑대여도 자기만은 그렇지 않음을 장인에게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사위 입장에서 장인은 너무 어려운 존재다.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찾아갔을 때부터, 말없이 술잔을 따라주며 침묵으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던 장인에게 사위는 주눅이 들었다. 결혼 후 넉살 좋게 "어머님"이라 부를 수 있는 장모와는 달리, "왔는가" 한마디로 모든 대화를 끝내버리는 장인은 그저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다.
물론 사위는 이런저런 노력도 해봤다. 애교가 부족한 탓이려니 하고, 헤헤거리고 있자면 갑자기 등장하는 장인어른에 대한 독심술. '무슨 사내놈이 이렇게 경거망동하누? 쯔쯧~.' 거꾸로 좀 듬직하게 무게를 잡고 있으면 환청으로 들려오는 장인의 목소리. '말을 해라 이놈아. 사람이 붙임성이 있어야지. 끌끌~'. 눈치없는 아내는 아버님 옆에 가서 대화 좀 하라고 거실에 밀어놓지만 사내 두 명이 앉아 있는 공간에서는 TV 소리와 상호 간에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만 천둥처럼 들릴 뿐이다.
게다가 장인 앞에서 사위는 시도 때도 없이 질투의 대마왕이 된다. 별볼일 없는 처남이 장인 사랑 독차지하는 걸 시기하고, 맏사위에게 어깨를 주지 않는 장인을 서운해하며, 아랫동서에게는 절대로 장인의 식탁 옆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한다. 여자의 질투는 드러나지만 남자를 향한 남자의 질투는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 법. 사위들이 공연히 처남들에게 유세를 한다거나 큰형님 대우를 받으려 하는 것은 장인에게 느끼는 애정결핍의 대리만족이라는 걸 장모와 아내는 알 턱이 없다.
사위가 받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자네만은 도둑이 아니었어. 자랑스런 내 아들이야. 장인표 인증마크 쾅쾅! 내일이 어버이날이다. 장인 어르신들, 그 인증도장 아껴두지 말고 이날 마음껏 찍어 주시길. 올겨울 사위가 놓아준 새 보일러가 빵빵하게 돌아갑니다.
/ 조선일보
윤용인·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