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장남으로 살아가기

FERRIMAN 2008. 4. 12. 10:40

수년 전 MBC방송기자인 윤영무씨가 쓴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제목부터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읽으면서 쓴 웃음 지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사람도 넉넉치 못한(빈곤하다는 말이 맞을 듯)

집안 5형제의 맏이이니, 4형제의 맏이인 나와 크게 다를 바도 없거니와 어쩌면 그렇게 생활 속에서 겪는 갈등이 같을까 신기하게 느낀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자식 여럿두신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시고 편모 모시는 집안의 장남은 더우기 어려운 것이, 자신이 바라던 바라지 않던 돌아가신 가장의 역할을 승계하여 조직의 리더 역할을 강요 받게 된다. 집안 대소사와 관련되는 의사 결정이 필요한 부분은 어머님이 장남에게 물으시고, 어머님과 관련 되는 일은 형제들이 맏형에게 의사를 결정토록 강요(?)한다. 하지만 가정 대소사의 거의 100%가 '돈과 인간관계' 와 관련되는 것이라 금방 답을 줄 수 일들이 거의 없고 생활 정도가 넉넉치 못하는 집안 이라면 서로 눈치만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유능하고 인기있는 장남은 없으리라 나는 여긴다.  

 

국가조직이던 기업이던 가정이던  조직체의 리더는 조직원으로 부터 존경과 신뢰만을 기대 할 수 없을 것 같다. 에이브럼 링컨이 대통령 재직 시절에 국민들로 부터 존경만 받고 비난은 없었을까?  직접적인 이해상관이나 대면이 없는 대부분의 국민으로 부터는 존경을 받았을지 모르나 옆에서 같이 생활하고 협의해야 할 측근으로 부터는 비난이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리더는 어쩔 수 없이 존경과 비난을 함께 받을 수 밖에 없을것 같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비난을, 멀리 있는 사람일수록 존경과 신뢰를 보낼 것이다.

즉 장남은 형제로 부터 존경과 신뢰를 기대한다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기대하는 것 만큼 부질없는 짓 일지도 모른다.

 

돈과 재물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시키는데 도움이 될수 있다면 부자집 장남들은 어려움이 한결 줄겠지만, 있는 집안 일수록 형제간에, 심지어는 부자지간에 소송하고 원수처럼 지나는 경우가 더물지 않으니  아이러니하다. 재산의 정도와 갈등의 정도가 비례하니....

 

나 역시 빈곤한 깡촌 출신 조상님 덕분(?) 에 인생의 시작이 그저그랬고 조상님들 세상 뜨시고, 나 역시 나이먹으니 시골 본적지 전답의 명의를 변경해야 할 입장이다. 1년에 한번씩 내는 재산세가 불과 수천원이니 그 시세 정도가 재산이라 부르기도 그렇지만 그 나마 조상님이 후손에게 주신 흔적이니 장남이고 장손인 내가 소중히 간직해서 나 역시 후손에게 잘 넘겨 주어야겠다 생각한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런 생각 안할 장손이 있겠냐만 집성촌 집안 조상님들이 집안 사람끼리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등기서류와 구전으로 전해내려 오는 소유자가 서로 다르고, 또 조상님 생전에 간혹 하신 말씀이 확인 불가능한 유언이 되어 후손 입장에서 명확히 정리하여 분쟁의 소지가 안생기도록 하기에는 미적분 풀기보다 어려울때도 있다.

 

장남인 내가 이 문제를 풀수 밖에 없는데, 주변의 누구와 의논하기 부터가 쉽지 않다. 아우들은 우선 이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혹시 욕심을 가지는 듯 다른 형제로 부터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고 조금만 내용 들여다 보면 간단하게 풀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골치 아파하기 싫고 바쁜 시간 쪼게기도 어렵기 때문 일게다. 어쩔 수 없이 장남 혼자서 끙끙거릴수 밖에 없는데 이 일이 진행이 되면서 행정 절차를 밟게 되고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통지를 받게 되면 비판자의 입장으로 바뀐다. 그 들의 눈에는 맏형이 재산이나 탐내는 욕심쟁이로 비치는지, 알수 없는 갈등의 싹이 돋는다.

내가 그들이 아니니 아우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지만, 나는 재산이 탐나서 챙기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아우들에게 하고, 아우들은 관심없으니 맏형 알아서 하라고 하는데 왠지 그 말 속에 들어있는 어감이나 표현이 매끄럽게 들리지 않는다.

지금이야 하찮은 산골 벽지 재산이지만 훗날 어떤 환경의 변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뀐다면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어떤 결정이 필요할 때 맏형인 나의 결정에 100% 따라 줄 것인가 다짐받고 싶다. 그때는 나도 스쿠리지 영감이 될지 모르지만....

 

정~말 다행이다 싶은 것은 내가 아들을 두지 못했으니 내가 사욕을 앞세운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을거라 기대할 뿐이다.

조직이 작던 크던 리더의 역할은 참 어려운 일이다. 형제끼리도 인간관계 유지가 어려운데 남남끼리야 오죽할까? 나는 이 사회의 리더 역할을 했던 사람이니 더욱 그 어려움을 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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