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탄소 … 섬유, 첨단에서 길을 찾다
부활하는 섬유 산업 <上> 7년간 2000여 업체 구조조정 의류 대신 산업용으로 체질 개선 작년 수출 7년 만에 증가세 반전
고유가로 유화업계 등 석유 관련 업계가 비명을 올리고 있지만 화섬을 비롯한 섬유업계는 의외로 잘 견디고 있다. 7년간 곤두박질치던 수출은 지난해 1.6% 증가세로 돌아선 데 이어 올 들어서도 5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2.6% 늘어났다. 섬유업계에선 “이제 한국 섬유는 재도약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2001년 이후 2000여 개 업체가 간판을 내리고, 올 2월 화섬업계의 구조조정이 10년 만에 마무리되는 등의 구조조정 끝에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 산업용 섬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서 활로를 찾고, 의류직물 비중은 줄고 있다. 그 결과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과의 경쟁은 줄어드는 대신 일본을 쫓아가고 있다. 첨단 산업용 섬유제품에서 일본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경북 구미 ㈜코오롱 파이버연구소엔 ‘특급 보안구역’이 있다. 외부인은 물론 연구소 사람들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다. 현재 미국이 석권하고 있는 나노섬유를 연구하는 곳이다. 노환권 연구소장은 “일반 섬유의 굵기가 지구만 하다면 나노섬유는 테니스공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워낙 촘촘해 오염물질 같은 입자가 외부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주로 쓰인다. 생화학 방호복, 붕대, 배터리 전해질 등 활용 범위가 무수하다고 한다. 2005년 연구에 착수해 이제 기초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노 소장은 “연말께 우선 의류에 적용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내 섬유업계가 기존의 의류용 직물에서 벗어나 첨단 산업용 섬유 쪽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는 현장이다. 산업용 섬유는 공업·농업·인테리어용 등 비의류 분야에 사용하는 섬유를 말한다. 일본은 비행기 동체를 섬유로 만드는 탄소섬유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국내 산업용 섬유는 아직은 전체 섬유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다. 기술 수준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70%에 불과하다. 주로 자동차용 섬유와 일회용 부직포, 인테리어용품 위주다. 고부가 산업용 섬유소재와 부품은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그렇지만 일부 품목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효성은 타이어코드 부문에서 세계 1위, 스판덱스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올해는 정부 지원을 받아 탄소섬유 개발에 나섰다. 이 섬유는 비행기 동체나 자동차 차체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소재로 관심을 모으는 아이템이다. 코오롱은 2006년 세계에서 셋째로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강도가 5배나 센 산업용 소재인 아라미드 섬유 상용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개발된 소재를 활용한 응용상품으로 새 시장을 개척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인 웰크론은 극세사 클리너 세계 1위에 올랐다. 극세사는 폴리에스테르를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로 아주 얇게 만든 실이다. 옷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이던 극세사를 청소용품과 목욕용품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마켓을 열어가고 있다. 반도체·LCD 제조에 사용하는 클린룸용 와이퍼를 만들어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대만·일본 업체에 납품하기도 한다. 지난해 수출은 2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을 넘어라= 일본은 업계 구조조정 끝에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그 발판은 고기능성 의류섬유와 첨단 섬유소재, 특수산업용 섬유였다. 변성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본부장은 “도레이는 30년간 수익도 없는 탄소섬유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 원천기술과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섬유가 3년째 수출 감소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일본은 상승세다.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 2005년 대비 지난해 수출액이 8% 정도 줄었지만 일본은 15%나 늘었다. 유럽 시장에서는 같은 기간 한국이 7% 줄어드는 동안 일본은 9% 성장했다.
최근엔 중국도 고부가 섬유산업을 강조하며, 화섬업계를 정비하고 있다. 한국이 산업용 섬유 개발에 좀 더 고삐를 죄어야 하는 이유다. 박훈 산업연구원 팀장은 “섬유산업은 기존의 박리다매형에서 기술이 좌우하는 시장으로 가고 있다”며 “독자적인 첨단 소재 등 기술개발 능력과 시장 창출 역량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선희·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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