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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우리네 삶 보여주는 '그 시절 그 구호'

FERRIMAN 2008. 7. 30. 08:27
기사 입력시간 : 2008-07-30 오전 1:53:08
우리네 삶 보여주는‘그 시절 그 구호’
대전 국가기록원 1950~80년대 시대풍경전
‘갖추자 정신무장 완수하자 북진통일’ ‘너도 나도 쥐잡아 100만석의 증산보자’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지도층이 앞장서서 지켜가자 의례준칙’ ….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구호들이다. 냉전시대의 북진통일 주장, 쌀을 축내고 병균을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한 쥐 잡기 운동, 인구증가를 줄이기 위한 산아제한 운동, 과소비를 추방하기 위한 근검절약 운동 등 빛 바랜 표어들은 당시의 사회현상과 삶의 애환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가기록원은 29일 대전시 둔산동 국가기록원 기획전시관에서 ‘구호로 보는 시대풍경전’을 열었다. 11월 28일까지 계속되는 풍경전에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시대별 구호가 적힌 표어·포스터·사진·우표 등 500여 점이 전시됐다. ▶한국전쟁 ▶경제개발 ▶새마을운동 ▶가족계획 및 혼·분식 ▶50~70년대의 골목길 ▶포스터 속에 담긴 세상 등 6개 코너로 나눠져 있다.

한국전쟁 코너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간첩’을 소재로 한 이념적인 구호가 주로 등장, 50년대 남북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는 (간첩)신고하고 아빠는 잡아내자’ 등이 그것이다. 포스터에는 간첩을 빨간색으로 표시, 남북의 냉전체제 현상을 엿보게 한다. 당시 초·중·고 학생들이 달고 다녔던 ‘방공방첩’ ‘불조심’ 등 각종 리본과 명찰·배지 등의 소품과 북한이 남한에 뿌렸던 ‘삐라(북한체제를 옹호하는 선전물)’ 수백 점도 보였다.

경제개발 코너는 60∼70년대 식량증산·가족계획·공중보건 등 산업화로 넘어가는 과정의 구호들이 주종을 이룬다.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 등 가족계획 관련 슬로건과 ‘혼·분식하여 건강 찾고, 외화를 절약하자’와 같이 절미(節米)를 강조하는 표어가 많았다.

‘3월 25일 오후 7시 일제 투약으로 8000만 마리의 쥐 모두 잡자’는 농림수산부의 표어도 있다. 국가기록원 김연주 학예연구사는 “당시 잡지·신문 등 각종 자료에 쥐 잡기 운동을 위해 초·중·고생들에게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 학교에 내라는 내용의 기록이 있을 정도로 쥐 잡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있었다”고 말했다. 산업화 과정에서 ‘납세로 자립경제(담배 금관에 적힌 구호)’ ‘사람마다 분에 맞는 착실한 생활 나날이 뻗어나는 우리 경제’ 등 근검절약, 납세를 촉구하는 구호도 눈에 띈다.

국가기록원 정진철 원장은 “주제별 코너마다 시대의 주장과 외침을 담고 있는 다양한 기록물을 전시, 그 당시 사회의 고민과 방향이 담긴 시대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시관을 찾은 강현철(56·대전시 탄방동)씨는 ‘식생활은 삼할 이상 혼식으로 개선하자’는 구호를 보고 “학창시절 어머니가 拈嶽?싸 줘 도시락 검사 때 혼식을 안 했다고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반면 방학을 맞아 전시관을 찾은 초등학생들은 구호를 보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었다. 이희성(12·초등 5)군은 “교과서에서 우리의 역사를 배웠지만 구호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전=서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