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중앙일보] 내 아우가 쓴 책 '낭만아파트'(1)

FERRIMAN 2008. 7. 30. 13:34
기사 입력시간 : 2008-07-11 오후 7:24:10
[BOOK책갈피] ‘아파트’라는 이름의 욕망, 혹은 희망
1970년 4월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이 사고로 주민 33명이 숨지고 40명이 부상했다. [중앙포토]
낭만아파트
허의도 지음, 플래닛미디어
285쪽, 1만1000원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해부터 도시 민속조사를 해오고 있다. 올해에는 서울 정릉3동 스카이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그곳 주민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진단했다. 1969년 세워진 스카이 아파트는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60년대 후반은 서울에 아파트가 제법 활기 있게 들어서던 때. 당국은 산골짝에 들어선 불법 판잣집을 들어내고 그곳에 ‘성냥갑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보기에 좋도록 산 중턱에 아파트를 지었다는 믿지 못할 일화마저 있다. 그 건설 열기는 70년대 들어 후끈 달아올랐다.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중·장년층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와우아파트 붕괴다. 70년 4월 8일 서울 창전동 와우산 중턱에 있던 아파트가 삽시간에 무너졌다. 3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불과 완공 4개월 만의 참사였다. 지금까지도 부실·날림공사의 대표격으로 인용된다. ‘빨리빨리’ ‘앞으로 앞으로’를 내세웠던 속성식 근대화의 그늘을 보여주었다.

아파트-.

현재 ‘월간중앙’ 편집장, ‘이코노미스트’ 편집인으로 있는 저자는 아파트를 통해 ‘지금, 여기’의 절망과 희망을 읽는다. 아파트를 보면 우리의 모든 게 드러난다는 입장이다. 해방 이후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꼽히는 종암아파트(58년)부터 21세기 초현대식 고층아파트까지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의 전모를 살펴본다. 아파트의 경제학·사회학을 짚어본 책이 없던 건 아니지만 이 책은 풍부한 자료와 인문적 해석을 곁들인 대한민국 아파트 종합비평서쯤 될 것 같다. 등단 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감수성 넘치는 문장도 딱딱한 사회과학서의 전형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파트-.

근대 주거문화의 총체다. 요즘 한국인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서울부터 지방까지 그 잿빛 콘크리트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좁은 땅에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측면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아파트는 거대한 괴물과 같다.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로 자기들의 ‘순위’를 정하는 건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뉴타운 공약’이 수도권의 승부를 갈랐던 지난 총선처럼 아파트는 이제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정치권력’이 됐다. 강남인가, 강북인가, 순간의 선택이 이후 도저히 뒤집을 수 없는 부의 격차를 불러오기도 했다. 역대 정부는 부동산 안정에 힘을 기울였지만 정작 시장은 대부분 정부 정책과 반대로 움직였다.

사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집 문제로 고생해본 사람들에게 대부분 익숙한 편이다. 저자는 그 고통과 욕망의 정체를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아파트의 정치·문화·심리·경제·역사·지리 등등. 아파트 한 채에 희비의 쌍곡선이 그어졌던 한국인의 지난 40여 년을 돌아본다. 판잣집을 대체하는 주거공간으로 급조했던 아파트가 돈과 특권의 기호, 남보다 우월한 나를 보여주는 상징으로까지 떠오른 과정을 성찰하며 오직 돈만 알았던, 땅만 쫓아다녔던, 정말 중요한 인간을 잃어버렸던 우리의 과오를 꼬집는다.

책 제목이 재미있다. 아파트에 ‘낭만’을 붙였다. 낭만이라고는 전혀 없는 지금의 아파트에 대한 처절한 풍자이자, 낭만이 숨쉬는 미래의 아파트에 대한 절박한 소망이다. 물론 그것은 아파트의 구조·형식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게 아닐 터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반성, 즉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공감과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경제양극화를 좁혀 보려는 사회적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 그래서 더욱 요원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