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활동

[퍼온글] 陶瓷 란 과학과 예술, 기술이 어우러진 合位一體

FERRIMAN 2008. 8. 8. 22:49
故 이종수 '생애 마지막 인터뷰'…"난 편한 길로 가기 싫었어"
"도자란 과학과 예술, 기술이 어우러진 合位一體"



<故 이종수 도예가>

 
"고행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자갈이 깔려 있는 길로 갈래. 도자는 서둘면 서두를 수록 안되기 마련이거든. 불과 함께 나즈막히 기다리는 거지. 'Go till die'라는 말처럼 욕심없이 느긋하게 있다 갈거야. 난 편안한 길로 가기 싫었어."

6일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한 도예가 고 이종수 작가.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난 편한 길로 가기 싫었어"라고 말했다.

평생 전통 도자기 제조기법만을 고수해 계승 발전시켜왔던 한국 도예계의 거목 이종수 작가.
대전에서 출생한 고인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뒤 1976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예술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교수직을 사임하고 대전으로 내려와 30여년 가까이 도예가의 길을 걸어 왔다.

그는 예술을 빚는 시인이었다. 흙으로 도자를 빚는 것 보다 마음의 영혼을 주무를줄 알았던 고 이종수 작가가 기자에게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도자를 구울 땐, 있는 정성을 다해 처음부터 끝까지 오랜 시간 애를 써도 마지막 심판의 시간에서 허사가 될 수 있어. 결국은 내 결함 때문에 그렇게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럴 땐 그냥 웃어. 그리고 '만날 것은 반드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또 한 번 도전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그게 도자하는 사람들의 숙명이야."

고인의 자택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숲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함께 호흡한 삶이 자택에 그대로 숨쉬는듯 했다.

자택의 문을 열자 기자를 맞은 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그 안에 이 작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편안한 옷차림에 짧은 챙이 있는 모자를 눌러 쓴 그는 투박하지만 정겨운 우리네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손님을 맞았다. "어서와요. 먼 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네. 젊은 기자 양반."

이미 마지막이 되어버린 도예가와 기자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 도자란 과학과 예술, 기술이 어우러진 '合位一體'



<왼쪽은 고 이종수 도예가의 1996년도 작품 '잔설의 여운', 오른쪽은 1988년 작품인 '마음의 향'>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홀로 되는 게 없지. 특히 도자기는 기술과 과학, 예술이 서로 조화가 돼야 만들 수 있는 작품이야. 기술과 과학에 예가 주입되지 못하면 잘 나온 도자라고 부를 수 없어."

그는 과학과 예술, 기술이 어우러진 합위일체야 만이 도자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유약, 흙의 농도, 불의 세기, 원료의 강도 등 어느 하나가 잘못되면 비뚤어지기 마련이야. 아무리 나머지가 잘 조절됐다고 해도 흙의 농도가 맞지 않으면 되거나 무르지. 불의 세기도 마찬가지. 그런 면에서 예술가도 과학자라고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어렵게 구워낸 도자기들을 이 작가는 대전 지역 사람들을 위해 전시회를 갖기로 했다. 4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종수 작가의 '겨울 열매 도자전'. 그의 마지막 전시회가 됐다.

전시회가 끝난 뒤 관계자들은 모든 작품들을 정리하고 이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좋아했다'는 소식에 그는 아픈 와중에도 잠시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호평을 마음 속에 새긴 뒤 평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생전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다. "겨울에 열매가 매달릴리 없지. 겨울처럼 차디찬 때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내 마음을 겨울처럼 싸늘하게 만들었어. 그런 마음으로 열매를 만들어냈지. 그래서 겨울 열매야."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던 '잔설의 여운 도자기'와 관련해서도 그는 "얼음 얼린 것처럼 보석이 아롱아롱하듯 영롱한 문양이 간간이 한 점씩 나왔어. 노린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온다고 해도 그것과 똑같이 나오는 것이 아니거든"이라고 말했다.

아롱아롱한 결정체와 같은 우윳빛 도자기는 이 작가만의 예술 미학을 대변한다. "잔설의 여운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은 녹다 남은 눈을 보면서 생각했던 건데,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을 때 이전의 기억이 녹다 남은 눈처럼 아롱 아롱하게 추억되거든. 좋은 말로 풀이하면 이렇지만, 내가 산 속에서 작업하다 보니 볼 수 있었던 것이 잔설이었거든. 그 속에서 여운을 발견한 거였지."

◆ "전통이란, 어폐가 있는 섭리"



<기자와 만난 기념으로 사인을 해주고 있는 이 도예가>


"전통이란 소중한 것이지. 우리에겐 전통을 보호하고 그대로 이어지게 할 의무가 있어. 그러나 그 속에도 어폐가 있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해. 할아버지와 아들 사이, 그 다음 아들과 자식 사이가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연결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거든. 그런데 할아버지와 그 다음 세대의 손자가 닮을 수는 있지만 같을 수는 없잖아. 예술도 그래. 전해내려오는 것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달라져 가는 게 전통이야."

전통 그대로의 가마를 고수해 왔던 것으로 유명했던 이 작가는 "작품이 만들어 질 때에는 빚는 사람의 마음과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친다"며 "쉽게 굽는 것 보다 가마터에서 불과 함께 흙을 빚을 때 '진짜 도자기가 만들어 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선대 사람들이 만들어 온 것을 보면 지금과 같지 않아. 그러나 둘 중에 어느 것도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게 한 건 없거든. '잔설의 여운'의 경우도 형체는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틀리거든. 그렇다고 전통을 무시한 이질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우둘투둘한 도자기를 보면 우리네 생활 모습 속에서 느끼고 보아왔던 것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어. 가뭄과 산천의 소나무 껍데기 등 그 전에도 쭉 이어져 왔던 것이 조금씩 달라져 내려오는 거야. 전통은 어폐가 있는 섭리야."

그에 따르면 도자기는 마음이 청명한 날보다는 흐린날 더 잘 나온다.
"요즘 전시회를 감상하러 오는 사람들은 안목이 너무 높아. 전시회 내놓으려면 잘 만들어야지. 마음에 드는 도자기가 나올 때까지 깨지는 도자기도 많지만 예술가에게 용서란 없으니까."

그는 항상 어머지의 마음으로 도자를 굽고 아버지의 엄한 마음으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불만족스런 작품은 용서할 수 없기 때문. "그래도 깨진 도자를 다 버리는 건 아니야. 깨진 것 역시 그것만의 미를 갖고 있거든. 다 내새끼들인데 이쁜 건 당연하지."

이 작가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헤어지면서 그는 기자에게 "나중에 같이 가마터에 가봅시다. 초가집 주변에 꽃도 이쁘게 피고 아주 좋아"라고 말해주던 그의 미소가 아직도 선하다.

편안할 수 있었던 일신의 행복을 버리고 고행의 예술을 선택했던 한국 도예계 거목 고 이종수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수박과 다식. 집에서 직접 만든 다식은 자연의 맛을 그대로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