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상

[중앙일보] 1인 가구 생활의 양극화

FERRIMAN 2008. 9. 9. 09:53

기사 입력시간 : 2008-09-09 오전 3:11:32
1인 가구 대한민국을 바꾼다<중>생활의 양극화-젊은 싱글, 한달 씀씀이 홀로 노인의 서너배
독신 실버 70%가 월소득 30만원 … 의료비 커
골드 미스는 건강·문화 지출 많고 미래에 투자
일과 시간 대부분을 자원봉사를 하며 보내는 서익태(76)씨가 서울 자양동 국민은행 사거리에서 교통봉사를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1인 가구는 다섯 가구 가운데 한 가구를 차지할 정도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1인 가구를 하나로 묶어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1인 가구는 크게 ^결혼을 미룬 20~30대 ^이혼했거나 사별한 30~50대 ^나이가 들어 혼자 살게 된 60~80대 노인으로 나뉜다.

미혼의 20~30대와 이혼하거나 사별한 30~50대는 대부분 돈을 버는 계층이다. 소비행태나 생활방식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혼자 사는 노인은 대부분 돈을 벌지 않고 연금이나 용돈으로 생활한다. 이들 중 70%는 월소득이 30만원도 되지 않는 극빈층이다. 직장이 있는 20~30대와 노인 1인 가구의 한 달 씀씀이는 서너 배 차이가 난다. 20~30대는 돈을 쓰면서 자기 관리를 하지만 혼자 사는 노인은 경로당이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20~30대 독신자가 많은 곳은 새로운 유형의 상품·서비스가 등장해 시장 흐름을 이끌지만 1인 가구 노인이 많은 곳의 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신 병원·요양시설 등은 북적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정책팀 정경희 박사는 “혼자 사는 노인들은 평균 소득이 적어 기본 생활 유지를 중시하고 소비에도 소극적”이라며 “연금 수급자가 많아져 생활이 안정되면 사교나 자아 계발 등 관심사가 넓어지고 소비계층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70대 노인과 30대 미혼녀의 생활을 통해 1인 가구의 삶을 들여다봤다.

◆70대 할아버지의 하루=서익태(76) 할아버지는 2년 전 할머니를 유방암으로 먼저 보낸 뒤 서울 자양동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오후 10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는 “부지런히 살다 보니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오전 5시30분 전기밥솥으로 밥을 한다. 반찬은 아들 내외가 준 김치와 나물 등 밑반찬이다. 오전 6시 아침 식사를 마친 그는 한강 둔치로 향한다. 그는 아내와 이별한 후 처음 배드민턴을 배웠다. 외로움을 달래고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다.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과 한 시간가량 배드민턴을 친 다음 오전 7시 경로당으로 간다. 잠시 다른 노인과 이야기를 하고 인터넷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오전 8시 교통봉사에 나선다. 30분 동안 교통봉사를 하고 가끔 동네 놀이터에도 가서 청소를 한다.

봉사활동을 마친 뒤 경로당에서 무료 점심 식사를 한다. 오후는 경로당 친구들과 한 시간 동안 환경봉사로 시작한다. 동네를 돌며 쓰레기 분리수거가 잘돼 있는지 등을 살피는 게 그의 일이다. 오후 3시가 되면 일부 경로당 친구들이 막걸리를 사다 먹기도 하지만 술자리에 끼지는 않는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오후 5~6시 유치원에서 신문활용교육(NIE)을 한다. 유치원생 눈높이에 맞춰 신문을 이용해 교육도 하고 신문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저녁은 집에 가서 해 먹는다. 식사 후 다시 한강 둔치로 가서 운동을 한다. 그의 ‘애마’는 조그마한 오토바이다. 한 달 연료비는 1만원이 들지 않는다. 그는 자녀에게 한 달에 50만원가량의 용돈을 받는다. 이 가운데 20만원을 병원비와 약값으로 쓰고 있다. 그는 지금 요로결석을 치료 중이다. 15만원은 교회 헌금으로 낸다. 쌀과 반찬 값으로 5만원이 들어간다. 연료비(1만원), 동호회비(1만원), 전기료·가스비(1만~2만원) 등을 제외하면 그가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5만원에 불과하다. 생활비의 40%가 의료비에 들어가고 10%만 식사비 등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30대 미혼녀의 하루=대기업에서 기획홍보 일을 하는 이주희(34)씨는 ‘독립생활’ 10년째다. 서울 삼성동의 76㎡형 빌라는 1999년 입사하면서 인천의 집에서 회사 인근으로 옮긴 후 네 번째 집이다. 이씨는 “몇 차례 이사하면서 ‘조용하며 밤에도 안전할 것’이라는 원칙을 세웠다”며 “대로변이고 주인집과 함께 있어 보안이 잘된 지금의 집을 골랐다”고 말했다. 전세금은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해결했다.

이씨는 출근 전 가벼운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인근 선릉에 조성된 산책로나 두 블록 떨어진 회사까지 출근길을 걷는 것이다. 아침식사는 과일이나 선식 등 간단한 음식으로 거르지 않고 꼭 챙긴다. 퇴근 후 일주일에 두 번은 집 근처에서 요가 수업을 받는다. 이씨는 “혼자 사는 사람에게 운동은 필수”라며 “건강이 나빠지면 업무에서도 실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요즘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이씨의 집에는 에어컨·세탁기·옷장 등 웬만한 가구가 다 갖춰져 있다. 점심은 회사에서 먹고, 저녁 약속이 잦아 주말 외에는 집에서 요리하는 일이 거의 없다. 편의점의 일인용 소포장 야채와 생활용품을 주로 이용한다. 대형마트에서 가족 단위의 물건을 샀다가 다 쓰지도 못하고 버린 경험 때문이다.

퇴근 후에는 온전히 자기 계발 시간이다. 지난 2년간 일주일에 이틀은 신문방송대학원에 다니면서 올 6월 광고학 석사 학위를 마쳤다. 여가 시간은 연극을 관람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보낸다. 사내 연극 관람 동호회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동료와 대학로를 찾고 주말에는 인터넷에서 만난 연극 동호회 회원들과 공연을 본다. 1년에 한 번 휴가철에는 싱글 친구와 동남아 리조트로 여행도 간다. 이씨는 “결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자기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이 혼자 사는 생활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씨가 생활비를 포함, 한 달에 쓰는 돈은 100만원 안팎. 월 200만원은 반드시 펀드나 적금 등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 쇼핑이나 미용을 위해 쓰는 돈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재테크와 내 집 마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김창규·김은하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