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세라믹,그리고 Ferrite

[중앙선데이] 중이온 가속기,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FERRIMAN 2008. 9. 28. 15:18

 

중앙SUNDAYSPECIAL REPORTS Print

중이온가속기,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홍승우 교수 성균관대 물리학과 | 제81호 | 20080927 입력
최근 전 세계 언론에 등장한 과학 기사가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9월 10일 인류 역사상 최대 실험장치인 강입자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가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힉스(Higgs) 입자의 탐색, 빅뱅 초기 우주 연구, 초미니 블랙홀 구현 등을 목표로 하면서 이 가속기가 미니 블랙홀을 만든다면 지구를 삼켜 버려 지구 종말이 올 것이라는 일부 주장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왜 선진국들은 약 6조원의 예산과 최고 인력을 동원해 15년 동안 이런 대형 가속기를 건설하는 것인가? 가속기란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많다.

겨우 수천 년 역사인 인류 문명이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은 사고 능력과 과학의 힘 덕분이다. 빅뱅 이후 우주는 137억 년 동안 팽창해 오고 있는데, 우주 태초의 신비를 알고자 하는 것은 단지 몇몇 과학자만이 갖는 호기심일까?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이 어떻게 빛을 내는지 궁금해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학탐구 과정의 핵심에 가속기가 있다. 예를 들어 1901년부터 지금까지 수여된 101개의 노벨 물리학상 중 약 20%에 해당하는 노벨상이 가속기와 관련돼 있다. 가속기란 입자나 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다. 가속하는 입자의 종류에 따라 가속기를 분류하면 전자가속기·양성자가속기·중이온가속기로 대별할 수 있다. 포항가속기는 전자가속기인데, 일본에는 크고 작은 전자가속기가 50대 이상 있다. 양성자를 포함한 이온가속기는 일본에 100대 이상 있다. 이것은 의학용 가속기를 제외한 숫자다. 반면 우리나라가 보유한 가속기는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니 일본에 비해 몇십 분의 1 수준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민 일인당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1.5배 정도인 것에 비하면 가속기와 같은 기초 과학시설 보유 비율은 너무도 형편없다.

국내에는 방사광 발생용 전자가속기인 포항가속기와 경주에 건설 준비 중인 양성자가속기가 대표적인 가속기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가 물리학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보니 흔히 가속기는 특정 학문에만 쓰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포항가속기만 보더라도 93년에 건설된 뒤 10여 년간 화학·생명과학·물질·반도체·재료과학 분야에 활용돼 약 6000편에 달하는 논문을 내면서 국내 핵심 연구시설로 자리매김했다.

경주에 들어설 양성자가속기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신물질, 생명과학, 국방과학, 우주산업, 의료 및 기타 산업에 활용돼 국가 중요 연구시설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그나마 전자가속기와 양성자가속기가 있지만 중이온가속기는 없는 형편이다. 일본은 2004년 이화학연구소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해 원소 번호 113번의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고, 그 원소의 이름을 Japonium으로 부르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에서는 지금까지 2000명 정도의 암환자가 중이온가속기 치료를 받았다. 인체에 칼을 대지 않고 중이온 빔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무통무혈 치료법이다. 수술을 하지 않으니 회복 기간이나 입원도 필요 없다. 또한 중이온가속기는 방사능 폐기물의 위험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연구를 통해 원자력에너지 활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처럼 가속기의 활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최근에는 가속기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의 경우 수백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가속기를 제작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타국에 상업적으로 팔고 있다. 기초과학 연구 및 원천기술 개발, 암 치료 및 산업적 이용 외에 이처럼 고가상품이 되고 먹거리 창출이 가능한 가속기 개발과 건설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Print
Copyright by sunday.joins.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