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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부 박사 | S&T FOCUS 중소기업과 퇴직과학자를 연결하는 ‘테크노닥터’ 제도가 2006년 첫 시행 이후 만 2년을 넘기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시행 첫 해 중소기업에 연결해 준 테크노닥터는 76명에 불과했지만, 그 이듬해에 83명, 올해에는 135명을 뽑았다. 이에 투입되는 예산도 2006년 15억원에서 올해에는 33억8천400만원으로 확대됐다.
테크노닥터 사업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한 중소기업에서 테크노닥터로 몸 담고 있는 강정부 박사를 만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매주 목요일 새벽 6시 반. 강정부 박사(68)는 어김없이 대전역을 출발한다. 수원역에서 내려 다시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화성에 자리한 노아화학㈜ 연구실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비록 일흔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지식을 나눌 후배들이 있어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는 그다. 대학에서 강의도 해봤지만 교단보다는 연구현장이 체질이라는 강 박사는 이곳 노아화학에서 3년째 기술고문으로 근무하고 있다.
퇴직,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또다른 기회
유기화학을 전공, 미국 필라델피아 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강 박사가 국내로 돌아온 것은 1975년. 당시 국내에 변변한 연구시설이 없어 해외에서 공부한 과학기술자들이 귀국을 하지 않아 ‘두뇌 유출’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나서서 해외과학자들을 유치했는데, 그때 영구 귀국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30년간 근무한 그는 정년퇴임 후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리고 3년간의 짧은 교수생활에서 은퇴할 무렵, 뜻밖의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테크노닥터에 응모한 것이다.
“느긋하게 쉬고 싶었어요.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스스로에게 휴식을 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지식을 사장시키지 마라고 얘기들을 하더군요. 어려운 시절에 공부해서 나라를 위해 돌아왔던 만큼, 지식과 지혜를 주변 사람과 더 나누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거였어요.”
응모서류를 접수하자 여러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노아화학(대표 김대웅)보다 매력적인 곳은 없었다. 경영주가 과학기술인(재료공학 박사)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고분자와 유기화학이 결합된 연구를 하고 있는 노아화학 역시, 강 박사의 경험이 절실히 필요했다.
노아화학은 위조방지용 코팅기술과 고급포장용 특수도료를 개발, 20여 다국적기업에 공급하는 수출 주도형 중소기업이다. 가죽제품의 표면을 고급스럽게 처리하는 재료, ID카드나 신용카드에 쓰이는 홀로그램의 재료, 화폐나 상품권의 위조방지용 재료 등과 제작기술도 노아화학이 보유한 핵심기술이다.
기술 중심 기업인 만큼 15명의 직원 중 50%가 연구원이다. 국내 고분자재료 공학 분야에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전문가로, 연구실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김대웅 대표는 일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 때문에 그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연구실에서 부딪히는 기술애로의 물꼬를 터주고, 연구원들의 개발역량을 한 단계 높여줄 동기가 절실했다. 강 박사와 노아화학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테크노닥터, 더 많은 지원과 확대 필요
강 박사가 노아화학에 출근한 지도 지난 9월로 만 2년을 넘겼다. 7명의 학사 출신 연구원들은 대학에서 공부한 화학이론을 다시 공부해야 했다. 강 박사가 직접 나서서 교재를 만들고 연구원들을 교육했다. ‘직접 실험을 해봐야 필요한 기술이 뭔지 알게 된다. 따라서 실험을 해보면서 이론을 공부해야 제 것으로 온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강 박사의 평소 생각이다. 자신이 갖고 있던 150권의 희귀 전문 기술도서를 회사에 기증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 대표는 “연구원들의 교육과 기술자문으로 실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개발완료 시기를 앞당겨 시장수요에 발맞추어 제품을 출시하고, 우리가 보유한 기술을 이론적으로 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그동안 2개의 신제품(섬유 고내열성 바인더, UV점접착제) 개발에 참여해, 2007년 매출액을 전년도 대비 28%나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말한다.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김덕진 관리이사는 “주신 도움에 비하면 급여를 너무 적게 드려 죄송할 뿐이다”며 “정부지원금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최장 3년까지만 테크노닥터를 활용할 수 있어 올해가 지나면 계약도 끝난다. 함께 진행한 연구 개발과 기술자문이 보다 큰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까지는 계약을 보장해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쉬움을 전한다.
그 같은 생각은 강 박사도 마찬가지다.
“막상 현장에 와보니 우리 중소기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실히 알게 됐어요. 고급 연구개발 인력을 유치하자니 인건비 부담이 크고, 또 기술적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딱히 의논할 곳도 마땅치 않고…. 저 같은 퇴직과학자들이 앞으로도 많은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재산, 노하우. “퇴직과학자는 노하우를 활용한 기술 전수가 가능하고, 중소기업은 남다른 경험과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는 테크노닥터가 더욱 확대됐으면 한다”는 강 박사는 국가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퇴직과학자들의 고급두뇌를 활용하는 데 더 많은 지혜와 역량을 쏟아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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