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 우주 항공

[한국일보] 상상발전소, 우주엘리베이터

FERRIMAN 2009. 3. 15. 21:39


SF, 첨단과학 이끄는 '상상력 발전소'
달착륙·로봇 등 소설서 꿈꾸던 것들 지금은 현실화
인류의 중요 테마로…엘빈 토플러 "SF는 미래의 사회학"


3일 개막하는 ‘SF 100년’ 전시회에는 지난 100년간 번역되고 창작된 SF 작품 140점을 만나볼 수 있다.

이해조의 <철세계>(왼쪽)·한낙원의 <금성탐험대>(오른쪽)

자연과학 전공자들의 문학 외도의 산물인가? 영화화를 위해 너무 일찍 태어난 장르인가?

어린시절엔 청소년용 문고판으로, 성인이 되서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공상과학(SF)에 한번쯤 접해보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다. SF가 한국에 발을 디딘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된다. 이를 기념한 전시회 이 3일~5월 9일 서울 동교동 문지문화원 '사이'(02_323_4207)에서 열린다. 4월 창간될 SF 월간지 <판타스틱>과 '사이'가 공동주최한다. 지난 100년간 SF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한국의 SF

전시회에는 국내·외 작품 140점이 일부 실물과 고색창연한 표지 포스터로 나온다. 최초의 한글 SF는 1907년 쥘 베른의 <해저 2만리그>를 번역, 일본 도쿄(東京)의 한인 유학생 회보였던 <태극학보>에 일부 연재된 <해저여행기담>으로 추정된다. 이어 1908년 쥘 베른의 <인도 왕녀의 5억 프랑(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egum)>을 번안한 이해조의 <철세계>가 나왔다. 최초의 창작 SF는 김동인의 (1929년)로 꼽힌다. 잡지 <신소설>에 발표된 단편으로, 배설물로 대체식량을 만드는 과학자 이야기다.

SF가 국내 문학계를 주름잡았던 시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이디어회관 청소년SF문고> 시리즈가 출간된 1970~80년대가 전성기에 가까웠다. 한낙원의 <금성탐험대> <잃어버린 소년> 등은 10~20년간 스테디셀러였다. 다만 국내에서는 비주류 장르문학이라는 인식이 강해 세계적 작품들이 청소년판으로만 소개되고, 주류 작가 중 SF를 쓰는 사람은 <역사 속의 나그네>의 복거일이 유일하다시피 하다.

과학과 SF의 대화

SF는 첨단 과학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다시 과학의 발전을 자극한다.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1978)에 나오는 우주 엘리베이터나 <태양에서 부는 바람>(1963)에 등장하는 태양풍 우주선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주제 중 하나다. 우주 엘리베이터는 1920년대 처음 연구논문이 나온 이래 잊혀졌지만 철보다 훨씬 강도가 센 탄소나노튜브의 개발로 가능성이 새롭게 부각됐다. 태양풍 우주선은 저비용 탐사선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검토되고 있다.

로보틱스와 로봇 SF의 대화는 가정부 로봇, 애완 로봇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로봇이라는 용어 자체가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펙의 작품 (1921)에서 나왔고, 아이작 아시모프가 <아이 로봇>(1950)에서 밝힌 '로봇은 인간을 위험에 빠트리거나 방치하지 않는다' 등 로봇공학의 3원칙은 이제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필립 딕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펼쳐 볼 수 있는 다양한 디스플레이들이 등장하는데 관련 연구자에게는 개발 비전을 제시한 교본과도 같다.

SF에는 미래가 있다

SF 작가들의 예지력은 과학자와 사회학자를 놀라게 한다. 부정할 수 없는 SF의 매력이다. SF라는 장르를 개척한 휴고 건스백의 <랄프 124C 41+>(1911)에는 화상통신, 전송신문, 태양전지, 반중력, 사체의 냉동보존 등 현실화했거나 연구중인 과학기술의 개념이 쏟아져 나온다.

러시아의 로켓 연구자인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는 달 여행 작품의 선구인 <달세계 도착!>(1916)에서 2017년 액체연료 로켓으로 달에 근접하는 타원 궤도에 진입, 착륙선을 통해 달에 안착하는 광경을 묘사했다. 진지한 로켓 이야기는 학계에서 매장당했던 때였다. 그러나 실제 달 착륙은 그의 예상보다 앞당겨졌다.

SF는 보다 넓은 시야를 제공해준다.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중력이 지구보다 훨씬 큰 세상에선 수십㎝에 불과한 턱이 위험천만한 절벽이 되고(할 클레멘트 <중력의 임무) 인간에게는 하루의 시간이 거대한 질량의 중성자별 생명체에게는 초광속 우주선을 개발할만한 시간이 될 수 있는(로버트 포워드 <용의 알>) 등이 바로 그런 세상이다.

미래와 다른 세상을 향한 열망은 곧 인류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현대 문명의 발전은 과학기술뿐 아니라 SF의 성과이기도 하다. <스타십 트루퍼스>(1959)의 원작자인 로버트 하인라인의 <주브나일> 시리즈는 나중에 NASA에서 일하게 될 과학자를 수없이 배출했고, 그들은 화성에 '하인라인 분화구'라는 지명을 헌정했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이렇게 말한다. "SF는 미래사회학이다. 어린이들은 클라크, 하인라인 등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SF는 '미래의 나'를 위해 읽혀져야만 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도움말 박상준 <판타스틱> 편집장

입력시간 : 2007/04/02 16:53:04
수정시간 : 2009/03/15 21: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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